왕의 한의학 -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
이상곤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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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조선 왕 독살사건'을 읽을 때 조선의 왕들이 항상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조선 왕들은 생각보다 그다지 행복한 삶을 산 것 같진 않은데

이 책에선 한의학의 관점에서 조선 왕들의 건강과 죽음에 얽힌 진실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에선 대부분의 조선 왕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들 중 대다수가 한 마디로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었다.

성군으로 불리는 세종은 전에 읽은 '세종처럼'에서 육식마니아로 알려졌지만

이 책에선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세종이 재위 초기에 건강이 많이 상한 게

국상을 연달아 치렀기 때문이라는데 3년상이 기본인 데다 효의 모범이 되어야 했던 조선 왕들은

전왕의 국상으로 임금으로서의 임무를 시작하기에 재위 시작부터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병약한 효자였던 문종이 재위 2년만에 승하한 것도

국상을 치르면서 몸이 상한 게 큰 작용을 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로만 알고 있던 조선 왕들은 격무와 여러 질병에 시달리면서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살았음을 잘 알 수 있었는데, 독살설에 휘말렸던 왕들의 죽음과

관련해선 전에 읽은 '조선 왕 독살사건'과는 완전히 상반된 입장을 제시한다.

대표적으로 독살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정조의 죽음도 인삼이 든 경옥고와

연훈방을 사용한 독살이 아닌 약화사고란 것이다. 위와 같은 처방도 한의학에 조예가 깊었던

정조 스스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독살설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고 하는데

한의학에 문외한이다 보니 저자의 주장에도 나름 일리가 있지 않을까 싶지만

전에 읽었던 책의 인상이 워낙 강렬해 뭐가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정조뿐만 아니라 경종을 비롯한 독살설 연루자들 모두가 독살이 아니라고 하니

기존에 가졌던 생각과는 너무 달라서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어떤 관점에 주목하는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을 보니 조선 왕들이 시달렸던 질병이나 건강이란 측면에서

그들의 삶을 일거수일투족 자세히 엿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왕들이 기본적으로 화증과 종기들을 갖고 있었는데 왕들마다의 특색도 있었다.

성종과 연산군은 밤의 황제이자 색골이었고, 광해군과 인조는 무속신앙에 빠졌으며

헌종과 철종을 대를 잇기 위한 종마로 사육(?)되는 신세였다.

적장자로 왕권을 무사히 이어받은 왕들은 그나마 정통성 시비는 비켜가서

스트레스를 덜 받았지만 방계승통으로 처음 왕이 된 선조를 비롯해 정통성이 약한 왕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곤 해서 당연히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무수리의 아들로 간신히 왕이 되었던

영조가 83세로 최장수 임금이 되었던 건 좀 의외였는데 인삼을 입에 달고 살면서

소식을 하는 등 건강에 편집증적으로 신경을 썼던 게 나름의 비결이 아니었나 싶다.

이외에 이 책에선 조선왕실의 진료 및 치료방법, 왕실의 사랑을 받은 명약들,

조선 왕들의 건강 비결인 식치와 온천욕 등 조선왕실과 관련된 한의학적 지식도 싣고 있어서

한의학의 관점에서 조선왕조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왕조시대에 왕의 건강은 나라의 운명과 역사의 방향을 좌지우지했는데 이 책을 통해 조선 왕들의

건강상태와 질병치료를 살펴보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역시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역사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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