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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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의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성에 색깔이 들어가 있던 아카마쓰, 오우미, 시라네, 구로노

네 명의 친구들과 단짝으로 지내던 다자키 쓰쿠루는 혼자서 도쿄로 진학한 후

방학 때 등에 고향인 나고야로 돌아가 돈독한 우정을 계속 유지해나간다.

하지만 2학년 여름 방학때 나고야로 돌아온 다자키 쓰쿠루가 친구들 집에 전화를 하자

모두들 전화를 피하고 급기야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는 얘기를 듣게 되는데...

 

 '1Q84'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작품은

긴 제목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주었다. '색채가 없는'이란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어이없게도 5명의 단짝 친구들 중 다자키 쓰쿠루 본인만 이름에 색깔이 안 들어가서였는데,

물론 그런 의미 외에도 개성이 없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그렇게 절친했던 친구들 중에 난데없이 혼자만 왕따가 되어 그룹에서 쫓겨나야 했던 다자키 쓰쿠루.

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그가 그런 당한 일을 당하고도 그 이유를 제대로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통 사람같으면 억울해서라도 이유를 따지고 물었을 것인데

다자키 쓰쿠루는 그냥 네 명의 친구들이 자신을 따돌리는 이유를 묻지도 않고 그냥 받아들인다. 

그리고 죽음을 생각하며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다가 시간이 약이라는 진리에 따라

차츰 그의 상처도 아물어가고 좋아하던 역 설계를 하면서 자기 나름의 삶을 살아나간다.

한참 시간이 흘러 서른 여섯 살이 된 다자키 쓰쿠루는 사라라는 연상의 여자를 만나면서

자신의 숨겨진 상처를 드러내보이고 사라는 쓰쿠루에게 그 친구들을 만나 자신에게 왜 그렇게

했는지를 물어볼 것을 충고하고 쓰쿠루는 용기를 내어 친구들을 찾아가 진실과 직면하게 되는데...

 

도대체 다자키 쓰쿠루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친구들에게서 외면을 받아야 했는지 정말 궁금했는데

친구들을 만나 밝혀진 사실은 정말 뜻밖이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단순히 왕따시킬 문제가

아니라 형사처벌은 물론 사회적으로 매장시켜야 할 중대한 사건이지만

뭔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결국 다자키 쓰쿠루는 핀란드까지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황당한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쓰쿠루 입장이었으면 정말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이유로 고통받아 왔음에 치를 떨었겠지만

쓰쿠루는 자신에 대한 오해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음을 이해하고 스스로도 상처를 치유하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준다. 세상을 살다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고

남을 엉뚱하게 오해할 때도 있지만, 다자키 쓰쿠루가 겪는 일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지만 그 희생양이 되어야 했던 다자키 쓰쿠루는 뭐란 말인가.

만약 그가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했다면 네 명의 친구들은 살인자에 진배없었다.

결과적으로는 다자키 쓰쿠루의 순례는 자신을 괴롭히던 일들의 실체를 알려주고

마음의 짐을 벗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다자키 쓰쿠루를 보면서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나도 다자키 쓰쿠루와 비슷한 '색채가 없는' 인간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냥 그런대로 살아오긴 했지만 거북한 진실을 마주하기보단 회피하는 스타일이고

뚜렷한 색채를 드러내기보단 진면목을 감추는 걸 더 선호하기 때문에

쓰쿠루와 뭔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그가 겪는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은 것도 다 그런 이유인 것

같았는데 그래도 사라의 도움으로 용기를 낸 순례가 나름의 성과가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그가 미스터리에 상당히 재능이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거기에 특유의 감수성과 함께 전작에 이어 라자르 베르만의 '순례의 해' 등 음악까지

적절히 배경에 깔아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늘 화제를 모으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작품도 그런 무라카미 하루키의 긴 여정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만한 작품이 될 것 같다.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 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

역사는 지울 수도 다시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거야. 그건 당신이라는 존재를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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