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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ㅣ 사계절 1318 문고 91
헤르만 헤세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4년 4월
평점 :
소도시에서 독보적인 우등생인 한스 기벤라트는 온 마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헤카톰베라는
주 시험을 보러 간다. 나름 열심히 준비를 했지만 떨어지지 않을까 불안감에 시달리던 한스는
시험장에서 문제를 접하고 절망감에 빠져 힘들어하지만
예상 외로 2등으로 합격하여 걱정을 한시름 든다.
기대에 부풀어 입학한 신학교에서도 열심히 하면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지만
반항아 하일너와 친구가 되면서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하는데...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데미안'을 읽어봤는데
한 마디로 성장소설의 전형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책도 데미안과 유사한 설정과 내용이 전개되는데
오직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되어 다른 가치들은 모르고 살았던 한스가
또 다른 세상에 눈을 뜨게 되면서 겪는 고뇌와 갈등을 그리고 있다.
한스는 속칭 전형적인 모범생이라 할 수 있었다. 오직 공부밖에 모르고 신학교 진학만이
삶의 목적인 그는 왠지 우리의 대다수 학생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는 모른 채 오직 부모와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걸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맹목적인 삶을 살아가는 학생들이
여전히 많은 현실을 보면 이 책 속의 한스와 같은 비극적인 결과가 생기지 않을지 심히 걱정된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으니 남의 일같지 않았는데 차라리 그냥 이게 내 운명이니 하고 받아들이고
살았으면 그래도 그렇게 처참하게 망가지진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각지에서 선발된 최고 수재들만 모여 경쟁을 벌이는 신학교에서
한스는 차츰 적응을 해나가면서 모범생으로서의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하일너와 친해지면서 자신이 알던 좁은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과
다른 가치들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한스는 혼란에 빠진다.
학교에서도 문제아로 찍힌 하일너와 잠시 거리를 두고 외면해 보지만
한 번 눈 뜬 새로운 세상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결국 다시 하일너와 절친이 되면서 한스는 공부도 소홀히 하고 점점 반항적인 학생이 된다.
마침내 하일너가 학교에서 갑자기 사라지면서 한스도 의욕을 완전히 잃고 퇴학을 당하고 만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는 예전의 영웅대접에서 달라진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지만
예전에 느꼈던 압박감이나 부담에서 벗어나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기술을 배울 생각까지 한다.
사랑도 알게 되고 술도 마시게 되지만 이미 정해진 궤도에서 이탈한 한스는
결국 비극적인 죽음으로 삶을 마감하고 만다.
아직도 공부 외에 또 다른 삶을 추구하는 건 무모한 행위로 취급되고 있다.
학교나 세상은 오직 공부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고,
사회도 여전히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공부를 잘하는 소수의 사람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도 별로 없고
제대로 된 인간대접도 못 받는 상황이 되면서 소외된 사람들은 좌절감 속에 살아야 한다.
이 책 속의 한스도 무작정 공부만 하다가 차츰 자신이 왜 공부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서 점점 공부에 대한 열정을 잃기 시작하고 우등생만 대우하는 분위기 속에
서서히 수레바퀴 아래서 망가지기 시작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일들을 해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필요함에도 한 가지 방향만 제시하는
현재의 교육제도나 사회분위기는 한스와 같은 희생자들을 계속 만들어낸다.
학생들이 각자의 개성을 얼마든지 발휘하며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고 차별 없이
존중받을 수 있을 때 수레바퀴 아래서 짓밟히는 사람 없이
모두 같이 수레를 타고 편안히 갈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