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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거리에서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2권에선 유이치와 아이들의 과거 행적과 유이치의 죽음에 대한 조사 과정이 번갈아 진행되면서
진실이 과연 무엇인지에 조금씩 접근한다.
먼저 나구라 유이치와 그를 둘러싼 아이들의 모습은 살벌한 중학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린이라 할 수 있는 초등학생을 지나 중학생이 되면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에 들어가게 된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성장의 과정 속에서 더 이상 어른의 직접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동물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 그대로 노출된다.
자기보다 약한 아이를 왕따로 만들어 괴롭히는 것도 지극히 유치한 행동이지만
이들에겐 눈곱만큼의 죄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이치에 대한 아이들의 괴롭힘도
일응 무책임한 아이들의 유치한 행동의 발로라 할 수 있었지만
2권에선 유이치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음을 보여준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응석받이로 자란 탓에 전혀 사회성도 없고 눈치도 없는 아이인데다
가만 있으면 동정이라도 받을 텐데 허세에 굳이 사서 매를 버는 짓을 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아이들이 유이치를 싫어하고 따돌리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내가 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어도 유이치는 상대하기 싫은, 짜증나는 스타일일 것 같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부당한 행동을 하는 게 정당화되진 않는다.
날라리들이 괴롭히는 것은 물론 그나마 유이치를 도와주려 하던 에이스케와 겐타마저
유이치의 고자질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등을 돌리게 되고
그런 상황에도 굴하지 않던 유이치에게 결국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살벌한 학교의 상황도 그렇지만 각자의 입장에 따라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이는 어른들의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누구나 남의 커다란 고통과 상처보단 자기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법이지만
가족 이기주의 아래 건전한 상식과 양심은 발붙이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자기 애들이 다칠까봐 그렇게 전전긍긍하면서 남의 아이의 죽음은 뒷전이고 자기들에게 불똥이
튈까봐 걱정하는 모습은 단순히 부모니까 라는 면죄부를 주기엔 씁쓸한 면이 없지 않았다.
품 안의 아이라고 아이가 학교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모르는 부모와
학생들이 뭔 짓을 저지르는지 전혀 눈치도 못채는 한심한 교사,
그리고 인간이 아닌 짐승에 불과한 잔인한 아이들의 모습은
만약 내가 아이가 있다면 학교라는 곳에 아이를 보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물론 극단적인 가정이라 할 수 있겠지만 종종 언론 등을 통해 접하는 학교의 현실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그런 일들이 없진 않았지만
점점 정도가 심해진다고 느끼는 건 나만의 기우라고 치부하기엔 훨씬 심각한 상황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 책에서 피해자 부모와 가해자 부모, 그 중간에 낀 학교나 언론 등의 계속되는
줄다리기를 보면서 정말 이럴 수밖에 없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자기 입장이 우선이고 자기가 양보해서 남을 배려하긴 쉽지 않지만
자기 입장만 상대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서로 사이좋게 어울려 산다는 게
진짜 어려운 일임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자칫 심각해질 수 있는 왕따와 학생의 죽음을 여러 입장의 사람들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이 책은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유머는 별로 없지만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으로
심각한 사회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점에서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