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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단장하는 여자와 훔쳐보는 남자 - 서양미술사의 비밀을 누설하다
파스칼 보나푸 지음,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책은 서양미술에서 여자들이 단장하는 모습을 다룬 그림들과
이를 통해 여자의 모습을 엿보는 남자의 묘한 심리를 다루고 있다.
사실 관음증이라고 하면 변태 취급을 당하기 십상인데
대놓고 여자 몸을 봐도 허용이 되는 게 바로 여자 몸을 그린 그림일 것이다.
물론 그림이라도 여자 몸을 대놓고 보는 건 민망하긴 하지만
최소한 명화를 감상한다는 그럴 듯한 핑계를 댈 수는 있기 때문에
그래도 쉽게 접할 수 없는 기회를 만끽할 수 있는 점은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여자의 누드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여자가 몸단장을 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구분하여 각 단계에 맞는 그림을 선정해
그림에 얽힌 흥미로운 얘기들을 들려준다.
사실 여자들이 몸단장하는 과정은 잘 모른다.
여러 매체를 통해 여자들이 몸단장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남자와 싸웠다는 얘긴 들어봤지만
내가 본 적도 기다려 본 적도 없어서 그런지 그다지 와닿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여자들이 몸단장하는 과정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관음증 환자처럼 훔쳐보고 싶은 생각도 없어서 사실 좀 지루하다고도 할 수 있었는데
이 책에선 몸단장 과정을 총 9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마지막 양말 한 짝을 벗는 것을 시작으로 벌거벗은 채로 있는 모습, 물에 몸을 담갔다가 몸을 말리고
머리를 빗은 후 거울을 마주하며 화장하고 옷을 입고 마지막 치장을 마치기까지
각 단계를 섬세하게 나누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에 맞는 작품들이 존재했다.
보통 서양미술의 소재로 성서와 신화 속 얘기들이 많이 사용됐는데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다룬 그림들도 적지 않았다는 게 놀라운 일이었다.
특히 여자가 몸단장하는 모습은 타인이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닌 상당히 내밀한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의 모습이라 이를 그린 그림 자체가 은밀한 생활을 훔쳐보는 느낌을 줄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누드가 아닌 그런 순간의 장면을 포착하고 모델에게 요구하여 그린
화가의 감성도 묘한 느낌을 준다. 도대체 화가는 몸단장하는 여자들의 모습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려 했던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하는데
인간의 욕망이 그림의 기원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여자의 몸단장이란 소재가 그리 어색하진 않다.
몸단장이란 것 자체가 욕망을 일으키는 수단이고 그런 은밀한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인간이라면 그림은 바로 인간의 훔쳐보기 욕망을 대리만족하게 만들어줘
욕망을 해소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여자 입장에선 훔쳐보기의 대상이 된 게 별로 유쾌하지 못한 일이라 할 수 있지만
몸단장이란 것 자체가 보여주기 위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무조건 비난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암튼 이 책엔 총 79편의 그림이 실려 있는데 거의 대부분 생소한 그림들이었다.
소재 자체가 좀 낯설다 보니 대중적인 작품들이 적게 소개되어 있다 위안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모르는 화가와 작품들이 너무 많음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여자의 몸단장하는 적나라한 과정을 비록 그림이지만 훔쳐보지 않고 뻔뻔하게 감상하면서
그 속에 담긴 여러 의미를 새겨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