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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 ㅣ 창비세계문학 19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송승철 옮김 / 창비 / 2013년 10월
평점 :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대중문화의 인기 있는 상품 중의 하나로
책으로는 물론 영화, 연극 등 각종 장르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그 기본적인 줄거리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지만
원작을 제대로 읽어 본 사람 역시 거의 없을 것 같다.
낮에는 지킬 박사, 밤에는 하이드씨로 이중생활(?)을 하는 이중인격의 대명사로 알고 있지만
도대체 그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역시 원작을 읽어야만 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번에 창비에서 새로 세계문학전집을 발간하면서 이 책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보물섬'으로 유명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이 책은 추리소설의 형식으로
선와 악의 양면성을 가진 인간의 고뇌를 잘 표현하고 있다.
사실 누구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가 동일 인물임을 알고 있는 상태라
하이드씨의 정체가 밝혀질 때의 충격적인 반전을 느낄 사람은 없겠지만
처음에 이 책이 나왔을 때는 아마도 영화 '식스 센스'급의 반전이었지 않나 싶다.
요즘은 워낙 반전을 다룬 책이나 영화를 많이 접하다 보니 이런저런 반전을 추측할 수 있지만
이 책이 나온 19세기 후반쯤에는 선량한 과학자와 악마같은 범죄자가 동일 인물이란 설정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해서 큰 성공을 거둔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은 것 같다.
사람이면 누구나 선과 악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 한쪽만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 책에서 지킬 박사는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하이드라는 또 다른 정체성으로 표출시키면서
분출하는데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도 억압받던 당시를 감안하면 그가 만들어낸 하이드씨는
위선적인 사회에 대한 반발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역자가 작품해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문제만 제기하고 정면대결을 회피하는 아쉬운 점이 있지만
이성으로 대표되는 지킬 박사와 욕망으로 대표되는 하이드씨는 인간이 가진 양면으로
모두 존중받아야 할 것임에도 욕망을 금기시하고 평가절하함으로써 욕망이 양지에서 건전하게
발현되지 못하고 음지에 서식하며 잔인하고 폭력적인 형태로 드러나게 만들었다.
분명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하이드씨와 그의 일그러진 범행을 전적으로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외면하는 지킬 박사는 어쩌면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면서도 이를 일그러진 방식으로 충족시키려는
인간의 위선과 사회의 편견이 같이 작용한 산물이라 할 수 있었다.
하이드씨일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는 지킬 박사의 고백은 욕망에 솔직한 자신에게
더 만족함을 인정한 것이니 욕망을 얼마나 적절하게 해소하고 이를 어느 선까지
사회적으로 용인할 것인지가 언제나 어려운 문제였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 책에서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외에 '마크 하임'과 '시체 도굴꾼'이라는
두 편의 단편이 더 실려 있는데 둘 다 선과 악의 두 갈래 길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며칠 전에 읽은 '에코 파크'에서 마음 속에 착한 개를 키울지 못된 개를 키울지에 따라
인생이 완전히 달라짐을 알 수 있었는데, 이 책의 세 편의 작품은 선과 악의 기로에서 번민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결국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당장의 이익과 욕망에서 자유로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 선한 길을 선택하면 당장 손해를 보고 심지어 험한 가시밭길을 가야하는 경우도 많기에
그 길을 가기 위해선 굳건한 의지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
세상을 보면 꼭 선한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응분의 보상을 받거나
악한 길을 선택한 자들이 충분한 대가를 치르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선택이 더욱 어려운데,
이 책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권선징악적인 결말을 선보이는 것은
그런 어려움 속에서 선을 선택해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나마 희망이 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지켜며 살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전이라 일컫는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고전은 역시 원전의 텍스트를 읽어야 제맛을 알 수 있는 것 같다.
막연히 피상적으로 줄거리만 띄엄띄엄 아는 것과
그 내면 속에 깊숙이 숨겨져 있는 정수를 직접 느껴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그런 점에서 창비에서 새롭게 시작한 '창비세계문학'이 그동안 진흙 속에 묻혀서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보석 같은 작품들을 많이 발굴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 진가를 발견하게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