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상복의 랑데부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54
코넬 울릿치 지음, 김종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도로시와의 약속시간에 조금 늦은 조니는
그녀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충격을 받는다.
조니는 자신의 사랑을 한순간에 없애버린 자들에게
자신과 똑같은
고통을 안겨주기 위한 처절한 복수극을 시작하는데...
윌리엄 아이리시라는 필명으로도 유명한 코넬 울리치의 이 작품은
작가 특유의 서스펜스와 스릴을 보여준다.
비행기 승객이 무심코 던진 병 하나가 모든 비극의 발단이 되었으니
'무심코 던진 돌맹이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말을 그대로 활용한 설정이었는데,
그 시절의 비행기에서나 가능한 설정이라 좀 황당하긴 하지만
그런 황당한 일을 직접 당하는 조니의 입장이라면 정말 환장할 노릇일 것 같다.
사실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분노를 터뜨릴 순 있어도 누가 그런 만행(?)을 저질렀는지
찾아낼 생각을 하거나, 실제로 찾아내기가 불가능할 것 같은데
이 책에서는 가능성 있는 용의자가 소수로 한정된다.
그래서 조니는 매년 그녀의 기일에 그들을 하나씩 찾아내어 진한 랑데부를 행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자신이 당한 고통을 용의자들에게 그대로 맛보게 해주려고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하는데 일반적인 복수의 유형을 벗어난 모습이었다.
자신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무심코 병을 던진 사람과 같은 비행기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하는 탑승객들이나 그로 인해 죽어가야 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어디 있는 싶지만 조니의 심정을 생각하면 전혀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단지 안타까운 점이라면 직접 사건을 일으킨 사람만이 아닌 엉뚱한 사람들에게까지 화풀이해서
비극을 확대 재생산했다는 점이다. 암튼 이런 엽기적인 복수극도 결국은 캐멜론 형사라는
뛰어난 형사의 활약으로 실체가 드러나는데 마지막 결말은 좀 짠한 느낌을 주었다.
어릴 때 아동용으로 봤던 '검은 옷의 신부'와 비슷한 설정이라 그 책과 같은 어이없는 반전을 보여
주는 게 아닌가 조금 걱정도 되었지만 또 다른 반전을 시도하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스런 느낌이었다.
세계 3대 추리소설 중 하나로 평가받는 '환상의 여인'을
비롯해 나름 훌륭한 작품을 많이 쓴
작가임에도 코넬 울리치에 대한 인지도나 평가는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높지 않다.
아마도 '환상의 여인' 외에는 그다지 유명한 작품이 없는 상태에다가 다른 유명 작가들처럼
전집 형식으로 완간되는 등의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도 코넬 울리치의 진가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가 '밤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그의 단편집을 만나고서야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에겐 자신의 분신처럼 내세울 명탐정이 없는 게 치명적인 약점이라 할 수 있지만
그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기발한 발상이나 서스펜스와 스릴은 어떤 작가 못지 않은 재미를
선사하기에 지금 그가 받는 대접은 상당히 야박한 편이다.
나도 그의 작품을 몇 편 읽어보지 않아 그를 평가하긴 쉽지 않지만 그의 작품들이 제대로 번역되어
전집 형식을 갖추게 된다면 분명 지금보단 나은 평가를 받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그를 재발견하여 구색을 갖춘 시리즈를 만들어낼 출판사가
아직까지 없다는 게 아쉬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