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문단의 대표작가 중 한 명인 박경리 하면 그녀의 인생의 역작인 '토지'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무려 20권이 넘는 대작이라서 과연 제대로 읽은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고전은 누구나 한 번은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읽은 사람이 없는 책’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누구나 아는 명작이지만 감히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토지'는

일단 나중으로 미루고 그나마 만만한(?) 이 책으로 박경리 작가와의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드라마로 얼핏 본 기억이 있는 이 작품은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걸쳐

통영의 딸부잣집인 김약국 집안이 몰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있듯이 딸 다섯 명을 둔

김약국네 집은 딸들의 기구한 운명 앞에 무기력하게 쓰러져 간다.

김약국의 모친이 불륜을 의심하는 남편 때문에 자살했고, 부친은 아내를 찾아 온 남자를 죽인 뒤

집을 떠나 생사불명인 상태여서 이미 비극의 씨앗은 뿌려진 상태였다.

다섯 명의 딸들은 하나같이 불행을 몰고 다니는데,

특히 그 중심에는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셋째 용란이 있었다.

그리고 능력도, 관심도 없이 어장사업을 벌이다 점점 가세가 몰락하게 만든

냉정한 김약국도 집안 몰락에 한몫한다.

김약국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울화통이 터질 것 같은데,

부모 노릇을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무자식이 상팔자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님을 잘 보여줬다.

작년 겨울에 오랜만에 통영을 갔었는데 박경리 문학관이 있어서 왜 여기에 있지 싶었는데

이 책의 무대가 통영이라 통영시에서 만든 게 아닌가 싶었다.

구한말에서 일제시대에 걸쳐 서서히 몰락해가는 김약국 집안은

야말로 조선의 현실을 대변해준다고 할 수 있었다.

세상이 변하는 것도 모르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 시련이 닥치는 것은 어찌 보면

사필귀정이라 할 수 있는데, 를 슬기롭게 극복하기에는 김약국네 사람들의 개성이 너무 강했다.

끊이지 않는 악재 속에서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의 끈을 이어가는 건 둘째 딸 용빈이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교육을 받은 신여성이라 할 수 있는 용빈은 집안의 몰락을 막지는 못했지만

새로 집안을 재건할 기둥임이 분명했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남자에 좌지우지되는 삶을 살았던 시절과는 달리

용빈은 나름 독립적인 삶을 살아나가서 집안의 몰락에서 한 발 비껴나갈 수 있었다.

비극으로 점철된 김약국네를 보면서 안타까운 맘도 들었지만, 마치 그리스 비극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듯 우리의 '한'의 정서를 잘 대변하면서 소설의 재미를 잘 살린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박경리 작가의 대표작인 '토지'는 함부로 도전할 책이 아니어서

일단은 이 책으로 첫 만남을 가진 게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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