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종말이 오다 - 종말문학 공모전 신체강탈자 문학 공모전 수상작품집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3
최경빈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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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에서는 그동안 한국 장르문학의 발전을 위해 여러 시도를 했다.

대표적인 것이 좀비문학 공모전, 종말문학 공모전,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을 개최한 것인데,

그 결과물로 이미 좀비문학 공모전 수상집이 두 권이나 나온 상태에서(1회 '섬 그리고 좀비',

2회 '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를 만나다') 이번에는 종말문학과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작을

모은 이 책을 선보이게 되었다.

 

 

종말문학이나 신체강탈자문학은 사실 책보다는 영화가 더 친숙한 게 사실이다.

물론 헐리웃 영화들은 대부분 원작 소설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에겐 소설로는 아직까지 그다지 대중적인 사랑을 받지는 못한 것 같다.

서문에서 언급되듯이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 나 코맥 매카시의 '로드' 같은 작품이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긴 했지만 여전히 장르문학의 불모지에 가까운 우리 상황에서

어찌 보면 종말문학이나 신체강탈자문학을 시도한다는 자체가 무모할지도 모르는데

이 책에 실린 일곱 작품은 그동안 우리 문학에선 결코 만나지 못한 신선한 얘기를 들려준다.

먼저 당선작으로 선정된 '10개월'은 여자가 모두 남자로 바뀌고

남자 아이만 태어나는 정말 종말(?)인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한 가지 성만 존재하는 세상이 어떨지는 상상하기도 싫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애인 등이 남자로 바뀌는 걸 막기 위해(잠자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면 된다)

발버둥치는 안쓰러운 모습이나 얼마 전까지 여자였던 아내와 엄마, 애인이 남자의 모습으로 변해

참담한 심경의 남자들, 이런 상황에서 몇 안 되는 여자들을 둘러싼 쟁탈전(심지어 임산부까지 납치를

한다) 및 남자로 변하지 않는 소녀를 신격화시키는 종교단체까지

그야말로 종말의 상황을 맞이한 여러 인물들의 얘기를 잘 엮어낸 작품이었다.

영화 '연가시'를 떠올리게 했던 '베르테르 증상', 영화 '혹성탈출'의 새로운 버전의 느낌이 든 '귀환',

돌연변이 외계인 아이들의 탄생으로 막장드라마를 연출시킨 '미래 도둑'까지

종말문학으로 선보인 작품들은 하나같이 파격적인 설정으로 종말문학의 재미를 잘 보여주었다.

 

 

신체강탈자문학은 예전에 보았던 영화 '신체 강탈자의 침입'과

리메이크작들의 기본 설정이 사용된 작품들이 많았다.

먼저 '운수 나쁜 날'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바탕으로 'B사감과 러브레터' 등을

녹여내 신체강탈자 문학과 한국 근대소설의 절묘한 결합을 시도했다.

'금연 클럽'은 요즘 추세에 맞지 않게(?) 담배가 자신의 신체강탈을 막아 주는 수단임을 잘 보여주었고,

'HOOK'는 걸그룹 전성시대에 걸맞게 여자 아이돌들의 천하임을 만방에 선언한 작품이었다.

아무래도 신체강탈자문학이 좀 더 소재에 제한을 받을 것 같았는데

나름 다양한 설정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종말문학이나 신체강탈자문학 작품들을 만나고 보니

역시 설정이 작품의 성패를 좌우함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참신한 설정으로 얘기를 잘 이끌어 나가느냐가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 같은데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천편일률적이기 쉬운 장르문학의 한계를

나름 극복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었다.

여전히 한국 장르문학의 환경은 척박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 책을 비롯한 여러 시도가 우리 장르문학계의 새싹을 틔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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