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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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인류를 멸종시킬 신종 생물이 등장했다는 보고를 받은 미 대통령 번즈는

조너선 예거 등 용병들을 투입해 신종 생물과 같이 있는 원주민들을 처치하려는 계획을 승인한다.

한편 아버지의 갑작스런 장례를 치룬 고가 겐토는 아버지로부터 이상한 메일을 받고

아버지가 남긴 수수께끼를 풀기 시작하는데...

 

 

2012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2011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위,

2012 일본 서점대상 2위라는 화려한 훈장들로 도배한 이 책은

'13계단'으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던 다카노 가즈야키의 최신작으로

단순한 미스터리물을 넘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적나라한 치부를 고발하며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아프리카, 일본, 미국을 넘나드는 엄청난 스케일의 작품답게 이 책이 담고 있는 담론은

인류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라 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선 인류를 멸종시킬 원인을 분석한 '하이즈먼 리포트'를 통해 5가지 위험요소를 열거한다.

우주적인 규모의 화재, 지구적인 규모의 환경 변동, 핵전쟁, 바이러스 위협 및 생물병기와

이 책의 소재라 할 수 있는 인류의 진화인데 앞의 네 가지 이유는 익숙한 편이지만

마지막 사유인 인류가 진화하면서 새로운 인종의 출현으로 인해

현재의 인류가 멸종할 수 있다는 사실은 좀 낯설면서도 충격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란 종의 역사를 보면 이를 근거 없는 억측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며 살인의 역사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같은 종끼라 제노사이드를 저지르는 유일한 종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진화 단계로 볼 때 현생 인류의 이전 단계인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것도

바로 현생 인류에 의해서인데 인간성이 곧 잔학성이라는 말이 결코 인간을 비하하는 말은 아닐 것 같다.

따라서 현생 인류는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을 유전자에 담고 있기 때문에 자신보다 진화한

새로운 인류의 출현에 두려움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이 책에선 새로운 인류가 출현한 것으로 보이자 자칭 지구사령관인 미 대통령은

그 존재와의 소통(?)을 시도하기 보단 제거를 선택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즐겼던 전임 전쟁광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을 보면서 소름이 돋을 것 같았는데

그런 인물들 사이에도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인물이 존재해 그들의 폭주를 저지하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신 인류를 처치하기 위해 투입되었던 조너선 예거 등 용병 팀도 자신들이 버리는 카드임을 알고는

아직 어린 아이나 다른 없는 신 인류 아키리를 구출하기 위해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는데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아프리카의 참혹한 현실은 과연 우리가 같은 지구 상에 살고 있는

동일한 인종인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특히 그들에게 도움을 못 줄 망정 서로를 죽고 죽이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게 부추키는 강대국들의 위선은 역겨울 정도였다.

겉으론 온갖 미사여구를 사용해 도덕군자처럼 행사하면서

뒤에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온갖 짓을 다 저지르는 모습을 보면

인류가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이 책에는 고가 겐토를 도와주는 친구로 이정훈이라는 한국 유학생이 등장해 더욱 친밀감을 주었다.

사실 한일관계는 여전히 뿌리 깊은 악연을 끊어내지 못해 불편한 관계라 할 수 있는데

과거 일본의 만행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나 고 이수현씨를 비롯해

이정훈이라는 한국인을 중요한 동반자로 그리고 있는 점 등을 보면

뉴스를 통해 접한 말도 안 되는 억지와 추태를 부리는 일본 우익들만 있는 건 아니란 사실을 보여줬다.

시마다 소지의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일본에도 양심적인 작가들이 존재함을 잘 보여주었다.

다카노 가즈야키의 작품은 항상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과 서스펜스를 제공해주는데

전에 읽었던 '그레이브 디거'처럼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도록 하는 박진감 넘치는 전개를 선보였다.

진화론적으로 신 인류의 탄생이 조만간 가능한 것인진 의문이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아키라와 같이 현재 인류보다 월등한 능력을 지닌 존재가 등장한다면

분명 그들을 없애려고 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모르는 타인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인간 종족 자체의 잔인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그래도 이 책의 결말처럼 본성(?)에 반하는 선함을 간직한 사람들도 적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완전히 희망을 포기하기엔 아직 이른 게 아닌가 싶다.

무려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대작임에도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는데

다카노 가즈야키라는

 

작가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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