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행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도쿄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해사건의 피해자 부부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책은 형식면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걸작 '이유'를 연상시켰다.

과연 피해자 부부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렇게 끔찍한 일을 당했는지 궁금했는데

그들을 아는 사람들을 한 명씩 인터뷰를 하면서 밝혀지는 진실(?)은 전혀 예상밖이라 할 수 있었다.

 

다코 부부는 겉으로 보면 모든 것을 가진 부부로 보였다.

일본의 양대 사립명문인 게이오와 와세다 출신으로 두 사람 모두 미남, 미녀이고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부부였다.

첫 번째 인터뷰 대상자의 눈에 비친 다코 부부의 모습이

바로 전형적인 이상적 부부와 가정이라 할 수 있었는데

이런 모습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아서 두 번째 인터뷰를 하는 사람부터는

부부에 대한 험담을 하나씩 늘어놓기 시작한다.

보통 죽은 사람들에 대해선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쉽게 나쁜 얘기를 안 하는 게 관례인데

다코 부부의 경우 무슨 잘못을 했는지 묘하게 비아냥대는 사람들이 많았다.

뭐가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다코 부부가 주위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었고

그들의 질투를 유발한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기에 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다코 부부를 알던 사람들이

지적하는 부부의 단점은 명백한 잘못이라 할 만한 것이기보다는

왠지 잘난 사람에 대한 시기랄까 좀 얄밉다는 그런 정도라 할 것이었는데

그들 부부를 대학시절에 알았던 친구들의 얘기는 조금은 충격적인 사실을 들려준다.

 

특히 게이오 대학교에 벌어지는 일들은 아직도 저런 일들이 실제로 있나 싶을 정도였다.

명문 사립대임에도 그들 가운데 초등학교부터 사립 명문학교 출신들인 내부생과

그냥 일반 학교들을 나온 외부생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은

정말 끼리끼리 논다는 수준을 넘어 극복할 수 없는 신분(?)간의 차이를 잘 보여주었다.

나 같으면 그냥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안 쓰고 살 것 같은데

상류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내부생들의 세계에 편입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결국 거기서 불행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

게다가 양다리를 걸치면서 여자를 갖고 놀다가 버렸다가 취업을 위해 필요하니까

다시 그 여자를 찾는 등 오로지 목적지향적인 연애관도 비난을 받기에 충분했는데

결국 밝혀지는 참혹한 일가족 살인의 동기는 정말 황당하다고 할 수 있었다.

 

피해자 부부를 아는 사람들과의 인터뷰 중간중간에

여동생이 오빠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글이 이어지는데

그다지 연결고리가 없이 마주 보고 달리는 두 개의 이야기는 결국 마지막에 극적으로 상봉하게 된다.

형식상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도 유사한 구성이라 할 수 있었는데

미스터리물답게 절묘한 구성을 통해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얘기들을

엮어내는 작가의 역량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 자체와 동기를 생각하면 정말 씁쓸하고 끔찍하기 짝이 없는데

이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아닐까 싶었다.

좌절된 욕망과 그 욕망이 부르는 또 다른 일탈은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오직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의 광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누쿠이 도쿠로와는 처음 만났는데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보통은 닌 것 같다.

사람들 속에 감춰진 모습을 끄집어내 흥미진진한 얘기로

풀어내는 능력을 보면서 그의 다른 작품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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