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리소설 팬들의 마음을 움직일 작품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ㅣ 요시키 형사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 / 시공사 / 2011년 2월

초라한 행색의 노인이 가게에서 물건을 산 후 소비세로 12엔을 더 내라는 여주인의 요구에도

아랑곳 않고 나가는 걸 여주인이 가로막자 노인이 칼로 찔러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을 맡은 요시키 다케시 형사는 노인이 단순히 소비세 12엔 때문에 살인을 한 거라

생각하지 않고 노인이 살인까지 이르게 된 사연이 있는지 수사에 착수하는데...

'점성술 살인사건'으로 유명한 신본격의 기수 시마다 소지의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과연 어떤 내용일 펼쳐질지 궁금했는데 제목만큼이나 기발한 발상이 펼쳐지는 작품이었다.

사건의 발단이라 할 수 있는 노인의 가게 여주인 살인사건은 겉으로 드러난 정황만 보면

최근에 종종 일어나서 충격을 주는 묻지마 살인사건을 연상시킨다.

겨우 소비세 12엔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니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쉽게 납득할 수가 없는데 상부에선 동기가 어찌되었든 명백한 살인사건이니까

그냥 그걸로 끝내자고 하지만 요시키 형사는 살인을 저지른 정체불명의 노인에게

분명 사연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사건을 물고 늘어진다.

피해자의 과거에 대한 탐문수사와 노인에 대한 제보를 통해 노인이 과거에도 살인을 저질렀음을

알게 된 요시키 형사는 노인과 피해자가 특별한 관계에 있음을 짐작하나

껍질을 하나씩 벗겨도 진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데..

신본격의 기수답게 시마다 소지는 이 책에서도 기발한 트릭(?)으로 무장한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사건을 제시한다. 열차에서의 살인사건과 시체의 증발(?) 등

도무지 소설에서만 가능한(이 사건을 소재로 노인이 소설을 쓰기까지 했다) 사건이라

도대체 어떤 트릭과 결말로 독자들을 충격에 빠뜨릴까 기대를 했는데

역시나 쉽게 납득하기 힘든 기발한 발상(?)을 선보였다.

솔직히 트릭에 대한 설명이 명쾌한 느낌이 들지만 않았지만

이 작품은 본격추리소설적인 측면보다는 사회파 추리소설면이 더 와닿았다.

바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인데 일제 시대에 사할린으로

강제징용을 가서 온갖 고초를 겪고 심지어 살인 누명까지 뒤집어 쓰고 인고의 세월을 감내해야

했던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그것도 과거사에 관심도 없고 심지어 왜곡까지 일삼는 일본 사회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작가 중 한 사람인 시마다 소지가 이런 작품을 쓰다니 그에 대한 애정이 절로 샘솟았다.

사실 직접 당사자가 아닌 다음에야 다들 거론하고 싶어하지 않는 민감한 문제를 소재로 하여

자기 나라의 치부를 드러내는 작품을 쓰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인데

과감하게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작가의 용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요시키 형사가 바로 이런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었는데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상사의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노인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우리가 원하는 형사의 전형이라 할 수 있었다.

하늘을 움직일 정도의 기발한 발상을 보여준 이 작품은

특히 한국의 추리소설 팬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