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권영주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태어날 때부터 입술이 붙어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소년은

몸집이 너무 커져 백화점 옥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된 코끼리 인디라와

벽 사이에 끼여 나올 수 없는 소녀 미라 외엔 친구가 없는 외톨이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버스 회사 독신자 숙소 잡역부로 일하는 마스터를 만나

체스를 배우게 되면서 체스의 바다에 빠지게 되는데...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제1회 일본 서점대상을 수상한 오가와 요코의 신작인 이 책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체스를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영원한 소년의 얘기를 그려내고 있다.

소년은 더 이상 자라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퍼시픽 해저 체스 클럽에서 만든 전설적인 체스 챔피언 알레힌의 인형 속에 들어가

'리틀 알레힌'으로 불리며 체스 클럽 회원들과의 대국을 벌이기 시작하는데...





어릴 때는 체스를 자주 두곤 했었는데 자라면서 체스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이젠 체스 규칙도 잘 생각이 안 날 정도인데 이 책을 보면서 체스의 세계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면이 있는 줄은 첨 알았다. 64칸의 체스판 위에서 6종류의 말 32개가 벌이는 향연은 체스를 두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그들이 체스판에 신중하게 두는 한 수 한 수가 아름다운 시가 될 수도 있고  

별 의미 없는 시간 때우기의 승부가 될 수도 있다.

상대가 고수든 초보자든 그 사람에 맞춰 가장 아름다운 기보를 만들어내려는 리틀 알레힌의 마음을  

통해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이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반성하게 만든다.

자신의 몸을 인형에 맞출 정도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보단 세상에 자신 맞추며

자신과 체스를 두는 사람들과 맞춤형 체스를 두었던 리틀 알레힌은

영원한 소년이라 할 수 있을 때묻지 않은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잘 보여주었다.

특히 리틀 알레힌이 미나와 주고받은 체스 편지 속에는 그 어떤 연애편지보다 더 많은 의미와  

감정이 담겨 있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런 심플한 편지만으로도  

서로의 맘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부러울 지경이었다.

체스를 통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맘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세계를 펼쳐 보인 이 책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영화로 봤을 때와 같은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사람을 체스 말로 이용하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체스를 통해 아름다운 시를 쓰려는 사람이 있듯이

64칸에 불과한 체스판 위에서도 누가 체스를 두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기보가 그려진다.

지금 내가 두고 있는 인생의 체스는 과연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만드는데

비록 같이 작품을 만들어 갈 사람은 없지만 혼자 두는 체스라 할지라도  

아름답고 멋진 기보를 남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영화로 봤을 때의 따뜻한 여운이 남아 있어

어느새 다가온 추위에 온통 얼어붙은 몸과 맘을 따뜻하게 해 줄 얘기를 찾았는데

요즘 세상과는 안 어울리는 동화같은 얘기가 펼쳐졌다.

외로운 생활을 하던 소년에게 마스터로부터 배운 체스는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만들어준다.

마스터의 체스판 밑에 기어들어가 고양이 폰을 끌어안고 한 수 한 수 두는 소년의 모습은

책 제목처럼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체스의 바다를 헤엄치는 거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해준 마스터가 세상을 떠나자 커지는 것의 비극을 인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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