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고전 설화를 소재로 한 흥미로운 7편의 얘기

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일본 미스터리 작품들을 나름 많이 봤지만 교고쿠 나쓰히코처럼  

확실한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작가는 없었던 것 같다.  

20개월째 임신 중인 여자와 밀실에서 홀연히 사라진 남자 얘기를 그린 '우부메의 여름'과  

'망량'이란 요괴와 상자를 소재로 막장(?)의 진수를 보여준 '망량의 상자'

단 두 편밖에 읽지 못했지만 그만의 독특한 아우라는 압권이었다.

이 책도 교고쿠 나쓰히코의 전공이자 특기라 할 수 있는 일본 고전 설화에 나오는 얘기  

7가지를 엮은 책으로 책 제목대로 향간에 떠도는 기묘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 책에 실린 7편의 얘기를 읽고 있으면 저절로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우리의  

'전설의 고향'이 떠올랐다. 비 내리는 밤 계곡에서 들려오는 팥 이는 소리가 들리면 사람이 죽는다는  

'아즈키아라이', 여우사냥으로 먹고 살던 사냥꾼과 이를 막기 위해 스님으로 둔갑한 여우 이야기인  

'하쿠조스', 못 말리는 세 명의 악당이 진실도 모른 채 서로 죽고 죽이는 참극을 다룬 '마이쿠비',  

손녀를 참혹하게 잃은 노인의 말벗이 되어주려 인간으로 변신한 너구리 얘기인 '시바에몬 너구리',  

가족이 몰살당한 후 완전히 변해 말고기를 먹게 된 말장수 얘기인 '시오노 초지', 버드나무 가지에  

목이 졸려 죽은 아이와 그 가족들의 얘기인 '야나기온나', 썩은 여자 송장이 계속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가타비라가쓰지'까지 이 책에 실린 7편의 단편은 모두 기이한 전설 속 얘기 같으면서도  

그 속에는 욕망에 일그러진 인간군상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7편에는 모두 괴담 수집가이자 작가지망생인 모모스케, 인형사 오긴, 어행사 마타이치 등이 등장해  

믿을 수 없는 사건들에 숨겨진 진실을 통렬히 파헤치는데 하나같이 억울하게 죽은 한 맺힌 영혼들의  

저주가 담겨있었다. 우리의 전설이나 괴담의 필수적인 요소도 바로 '한'이라 할 수 있는데 일본도  

역시 우리와 비슷한 정서를 가진 듯하다. 우리도 분명 지방마다 전설들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있는데  

고교쿠 나쓰히코처럼 이를 제대로 된 작품으로 엮어내는 작가가 없는 게 아쉬운 현실이다.  

요즘 시대에 맞는 참신한 소재들로 쓰는 작품들도 좋지만 우리의 전래되고 있는 얘기들을 소재로  

소설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각종 괴담들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들이 매년 여름에

찾아오는 것을 생각하면 어서 그런 작업을 하는 작가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 제목이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인데 단 7편밖에 소개가 되지 않았고 속편도 나온  

상태니 아마 교고쿠 나쓰히코가 100편을 채울 때까지 시리즈를 계속 이어나가지 않을까 싶다.  

비록 일본의 전설과 괴담을 담은 시리즈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의 힘을 잘 보여준 작품이라  

후속편들도 기대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