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작가인 나는 도서관에 갔다가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다 나를 덴카이치 탐정이라며 마중 나온 미도리라는 소녀를 만난다. 미도리의 안내로 그녀의 아버지인 시장이 있는 시청에 간 덴카이치는 마을을 처음 찾아 온 크리에이터의 집인 기념관 지하실에서 미라가 발견된 후 뭘 훔쳐갔는지 알 수 없이 구멍을 메운 흔적만 남긴 이상한 도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의뢰받게 된다. 낯선 곳에서 졸지에 탐정이 되어 버린 덴카이치. 기묘한 도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그가 가는 곳마다 또 다른 사건이 끊이지 않는데... '명탐정의 규칙'을 통해 추리소설에 사용되는 다양한 기법들을 신랄하게 풍자했던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번에는 구닥다리 유물처럼 세상에서 사라질지 모르는 본격 추리소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사실 추리소설의 여러 장르가 있겠지만 본격 추리소설만큼 문제풀이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장르도 없을 것이다. 작가가 만들어놓은 설정과 트릭 속에서 과연 누가 범인인지 알아맞추는 작가와 독자간의 흥미진진한 대결은 본격 추리소설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런 본격 추리소설이 일본에서도 사회파 추리소설들에 밀려 한때 찬밥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본격 추리소설로 데뷔했던 히가시노 게이고마저 이 책의 전작이라 할 수 있는 '명탐정의 규칙'에서 본격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각종 트릭들을 은근히 비꼬는 듯한 뉘앙스를 풍겨서 안타까움(?)을 줬는데 이 책에선 다시 본격 추리소설이 무미건조한 세상에 활력소(?) 역할을 하며 중독성 강한 매력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도굴 사건을 의뢰받은 덴카이치가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하자 제목과 같이 그가 가는 곳마다 연이어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기념관 보존 위원회 멤버인 자산가의 집을 방문하자 자산가는 책장으로 가로막혀 출입이 불가능한 밀실에서 죽은 채 발견되는데 정말 기막힌 밀실 트릭을 선보였다. 곧 이어 또 다른 위원회 멤버인 소설가를 찾아가지만 그 역시 귀신이 곡할 정도의 트릭으로 살해당하고 만다. 본격 추리의 존재조차도 몰랐던 마을에 연이어 기발한 트릭이 사용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모두 도난된 물건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 덴카이치는 남아 있는 위원회 멤버 5명과 함께 시장의 별장이라 할 수 있는 곳에 모이지만 또 다른 연쇄살인사건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 책에서 본격 추리소설은 금단의 책으로 조용하던 한 마을을 살인의 광기로 몰아넣을 정도의 엄청난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미스터리 마니아에게 걸작 본격 추리소설은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자 그런 작품과 만나는 것과 나아가 그런 작품을 직접 쓰는 것은 가장 큰 로망이라 할 것이다. 나도 능력만 된다면 충격적인 작품을 하나 남기고 싶지만 워낙 수많은 트릭들을 접하다 보니 기존 작품들에 사용되지 않은 신선한 트릭을 구사하는 본격 추리소설을 만들어내긴 내 능력으로선 불가능하지 않나 싶다. 히가시노 게이고조차 초기의 본격 추리소설 스타일에서 사회파 추리소설로 바꿔 탄 이후로는 본격 추리소설은 거의 쓰지 않은 걸로 안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주인공의 입을 통해 본격 추리소설을 다시 쓰면 좋겠다고 한 것도 작가 본인의 희망사항인 것 같은데 그 이후로 그다지 본격 추리소설을 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 너무 아쉽다. 늘 기본은 하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자신의 역량을 쏟은 본격 추리소설을 선보인다면 분명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 같은데 명탐정의 저주에 걸렸는지 본격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가 다시 본격에 심취해 본격 추리소설을 쏟아내는 날이 오면 미스터리 마니아들이 살맛 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