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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의 상자 - 하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여러 사건들의 관계를 조사하던 교고쿠도 일행은 사이비 교주 온바코님의 정체를 알아내고
요리코가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되지만 이미 한 발 늦고 만다.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신인 환상소설가인 구보 슌코가 지목되지만
그는 경찰들을 뿌리치고 달아나는데...
가나코 실종사건과 연쇄 토막살인사건, 사이비 교주 온바코님까지 엮인 일련의 사건들은
개별적이면서도 일부분씩 연관성이 있었다.
교고쿠도가 차근차근 설명하는 가나코 살해 미수사건, 가나코 유괴 미수사건,
가나코 유괴 및 스자키 살인사건, 연쇄토막사건의 배후에는 정말 뒷맛이 좋지 않은
엄청난 사연이 숨겨져 있었다. 일그러진 영혼이 저지르는 끔찍한 만행들은
결국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와 고통만 남긴 채 씁쓸한 결말을 선사했다.
엽기와 막장에 나름 익숙한(?) 편이지만 이 책은 정말 최고 수위를 선보인다 할 수 있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천재 과학자라 할 수 있던
미마사카의 그릇된 집념이 크게 작용했다.
뇌를 제외한 인체의 다른 부분들은 얼마든지 대체하면서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는
미마사카의 파격적인 생각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각종 생체실험을 통해
생명력을 이어가다가 급기야 자신만의 연구소까지 만드는데
미마사카 연구소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인공 장기 역할을 하고 있는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미마사카의 생각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에 나오는 단편 '완전한 은둔자'처럼
뇌만 살아있으면 나머지 육체는 어떻게 돼도 상관 없다는 것인데 아무리 뇌가 생명의 중추라
할지라도 육체 없이 뇌만 살아있는 건 '완전한 은둔자'에서 본 것처럼 다른 존재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세상에 혼자 존재하는 거나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그것도 영원히 생명의 끈을 연장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회복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단순히 생명만 잠시 연장하는 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리 생명이 소중한 거라고 하지만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닌 상태보다는
차라리 영원한 안식인 죽음을 선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보면서 누구나 한 순간의 잘못으로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들 수 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암흑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는 건 결코 특별히 문제가 있는 사람만이 아닌 평범한 사람
누구나 해당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일수록 그런 유혹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매달릴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 시험에 들고 안 들고는 어떻게 보면 순전히 우연이라
할 수 있으니 세상 사는 걸 결코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마음의 상자 속에는 뭐든 담을 수 있고,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채우고 담는 건 천차만별이다. 온갖 좋은 것들로 채우려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쁜 것들로 가득 채우는 사람도 있다. 애당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떤 선택을 해서 어떤 결과를 받느냐는 자신의 몫이라 할 것이다.
이 책의 엽기적인 사건에 연루되었던 인물들이 결국 망량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도
잘못된 선택의 결과라 할 것이니 올바른 삶을 살려면 자신의 상자를 제대로 잘 관리해야 함을
엽기적이고 처절한 사건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