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고아지만 자신을 딸처럼 아껴주는 석스비 부인과 함께 지내던 수는

석스비 부인의 집에 드나들며 젠틀먼이라 불리는 남자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게 된다.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을 여자와 결혼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던 젠틀먼은 

자신과 같이 그 여자의 집에 가서 하녀 노릇을 해주면서 자신이 결혼하는 걸 도와주면 

2천 파운드를 주겠다고 하자 수는 3천 파운드를 받는 조건으로 제안을 수락한다.

그리고 부잣집 여자가 산다는 브라이어의 저택에 간신히 도착한 수는

젠틀먼이 말한 릴리 모드라는 여자를 만나 그녀의 시중을 들기 시작하는데...

 

레즈비언이 등장하는 시대극인 미스터리지만 평이 좋아서 예전에 구입해 놓았지만

무려 700페이지가 넘고 편집도 글자가 촘촘하게 되어 있는 관계로 쉽게 엄두를 못 내고 방치하고 있던  

책이었는데 오랜만에 의무방어전(?)을 치를 책들이 소진되어 큰 맘 먹고 읽기 시작했는데 

나름 재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시간이 오래걸렸다.

시대배경이 빅토리아 여왕이 재임 중이던 19세기이고 레즈비언들이 등장한다고 해서

좀 지루하거나 거북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진진한 내용이 펼쳐졌다.

 

엄청난 책들을 보유하면서 책을 쓰고 정리하는데 모든 걸 바치는 괴팍한 삼촌과 함께 외롭게 살고 있는  

릴리 모드는 수가 하녀로 오자 수를 자매처럼, 친구처럼 대하기 시작한다.

젠틀먼과 수의 음모를 모르고 천진난만한 아이같이 구는 모드의 모습에 조금씩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하던 수는 모드에게 미묘한 감정마저 느끼면서 혼란스러운 가운데 젠틀먼의 계획대로 젠틀먼과  

모드가 야반도주를 감행하게 되고 드디어 둘만의 결혼식마저 치른다.  

그리고 모드를 정신병자로 몰아 정신병원에 넣으려는 계획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마지막 순간까지 다가오지만 수는 그때서야 뭔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부잣집 여자를 속여 사기결혼을 감행하면서 벌어지는 뻔한 얘기가 펼쳐지는 줄 알았는데

수가 화자가 되어 진행한 1부가 끝나기 무섭게 심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완전히 당했다'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2부부터는 모드가 화자가 되어 모드의 입장에서 다시 얘기를 복기하기 시작하는데

사람이 자기 입장과 생각만으로 다른 사람과 사건을 판단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한 번 당했으니 더 당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고 모드의 얘기를 읽어나갔는데  

또다시 충격적인 비밀이 밝혀진다. 이 책에선 서로 속고 속이고 엄청난 비밀이 계속 빵빵 터져서  

정말 무방비상태에 있다가 깜짝놀랄 수밖에 없었다.

700페이지나 되기 때문에 당연히 어느 정도 지루하게 늘어지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내용들이 계속 펼쳐져서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매력은 19세기를 직접 본 것 같은 생생한 묘사와 독자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작가 새라 워터스의 글솜씨에 있다고 할 것이다.

아무래도 레즈비언 역사소설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할 정도로 작가의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꼼꼼한 연구가 바탕이 된 점이 이 소설을 더욱 빛나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수와 모드의 에로틱한(?) 장면들도 글로 읽으니 그다지 거부감이 느껴지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하고 애틋하지만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절제된 감정들을  

잘 표현한 것 같다. 엄청난 분량의 압박으로 쉽사리 도전하지 못했던 작품이었는데  

읽고 나니 홀가분하면서도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수와 모드 두 사람 사이의 얽히고 설킨 기막힌 운명의 장난이 주는 여운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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