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코 서점
슈카와 미나토 지음, 박영난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 등 자칭 장르소설 마니아인 나에게 여름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장르소설의 대목이라 좋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점이다.

출판사들이 여름 시즌을 겨냥해서 준비하고 있는 책들을 한꺼번에 내놓기 때문에

도대체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이 책도 죽은 자들이 머무는 마을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맘에 들어 읽게 되었다.

 

사치코 서점을 중심으로 한 도쿄의 작은 동네인 아카시아 상점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7편의 단편을 담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공포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오히려 가슴 찡한 여운을 주는 가족소설들이 많았다.

첫 단편인 '수국이 필 무렵'에서는 희락정이라는 식당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소재가 되는데

사건 현장을 맴도는 남자의 정체는 아내와 어린 딸을 남겨두고 떠난 피해자였다.

가족을 두고 차마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남자의 맘이 잘 묻어난 단편이었다.

다음 단편인 '여름날의 낙서'는 형제간의 우애를 그리고 있다.

동생이 여름을 못 넘기게 될까봐 정체 불명의 존재에 맞서다 사라진

형의 모습은 나쁜(?) 형인 나를 부끄럽게 할 정도로 가슴뭉클했다.

'사랑의 책갈피'는 사치코 서점에서 헌 책에 쪽지를 끼워넣어 서로 맘을 전하는 로맨스 단편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의 기본 컨셉을 충실히 지켜 예상 밖의 반전을 보여준다.

역시 책을 통한 감정 표현은 상대를 정확히 알고 신중해야 함을 잘 알려주었다.ㅋ

 

폭력적인 남편이 급사한 후에도 남편이 찾아온다던 아내가 저지르는 끔찍한 비극을 다룬 '여자의 마음',

사람이 아닌 고양이 영혼이 등장하는 '빛나는 고양이',

죽을 사람의 징조를 미리 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남자의 얘기인 '따오기의 징조'를 거쳐

모든 단편에 등장하는 사치코 서점의 주인 노인의 슬픈 사연을 담고 있는 마지막 단편 '마른 잎  

천사'까지 죽음과 관련된 7편의 단편들이 미스터리를 읽는 재미와 함께  

가슴 한 구석이 멍해지는 그런 느낌을 주었다. 

 

현실에서 죽음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고 이미 죽은 존재와 만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일 것이지만

이 책의 단편들에서 만나게 되는 죽은 존재들은 그다지 공포스럽지 않았다.

(참 '여름날의 낙서'에 등장해서 낙서를 해대는 정체불명의 소년은 충분히 공포스러웠다.ㅋ)

오히려 헤어지는 게 아쉬운 느낌을 주는 가족이거나 안타까운 맘이 들게 하는 존재들이어서  

애틋한 맘이 들게 했다.

이 책에 나오는 것과 같이 이미 이 세상을 떠나버린 보고싶은 존재들을 만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는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그런 곳이 실제 있다면 귀신 나온다고 난리겠지만 말이다.ㅋ

세상을 떠났지만 이승에 머물 수밖에 없는 자들과 세상을 떠난 자들을 그리워하는 자들이

서로 소통하는 미스터리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단편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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