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수오 마사유키 감독, 카세 료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면접을 보러 지하철에 탔던 가네코는 치한으로 몰려 현행범으로 체포되고  

자신의 아니라고 아무리 부인해도 점점 자신에 불리하게 진행된다.  

그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가네코는 과연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죄 없는 한 사람을 처벌하지 말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영화는  

멀쩡한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치한이 되는 과정을 잘 그려내고 있다.  

유죄율 99.9%라는 현실은 헌법상의 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유죄추정의 원칙으로 바꿔놓고 말았다.

영화 속에서 가네코가 치한으로 지목당하는 순간부터 그를 당연히 유죄로 간주하는 사람들 뿐이다.  

아무리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다.  

경찰, 검찰은 빨리 자백하고 끝내라고 종용하기만 할 뿐 그의 주장을 진지하게 듣는 사람은 없다.  

그나마 운이 좋아서 적극적으로 변호를 맡겠다는 변호사를 구하지만 높은 현실의 장벽을 뚫긴 어렵다.  

한가닥 희망을 걸었던 판사마저 그가 주장과 유리한 정황들은 무시하고 그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이 영화를 보면 정말 억울한 선의의 피해자가 적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데 실수가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실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기엔 충분하다는 게 문제다.  

억울한 옥살이는 물론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그런 멍에를 평생 안고 살아야한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로 그런 취급을 받는다면 얼마나 속이 터지고 분하겠는가...

영화가 시작하면서 나온 말처럼 열 명의 범인을 놓아주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생겨서는  

안 되고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하는 것이 형사법의 대원칙이다. 

하지만 엄청난 사건 수에 시달리는 경찰, 검찰, 법원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나가기가 정말 힘겹다.  

대부분 기계적으로 사건을 처리하기 급급한 게 현실이다.  

그런 여건을 개선하지 않는 다음에는 아무리 떠들어봐야 변화가능성이 희박하다.

 

이 사건에서도 충분히 무죄판결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이미 유죄 심증이 있던 판사의 심증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마지막에 유죄판결을 받은 신 뿐만 아니라 자신도 자신이 무죄라는 사실을 안다는

가네코의 독백이 아직도 뇌리에 남는다.  

나도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할 건데 꼭 손은 내 가슴쪽으로 밀착시키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에 하나 가네코와 같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그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억울한 누명을 쓴 가네코라는 인물이 수사와 재판을 받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만든 형사사법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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