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본 한국사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거부터 지속되어 온 일본의 역사왜곡과 최근 불거진 중국의 동북공정,  

그리고 가끔씩 전해지는 외국 교과서에 잘못 실린 한국의 역사를 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왜 저들은 남의 역사는 조작하고 자신들의 역사는 미화하는지 짜증날 때가 많은데  

한편으로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정말 진실일까,

아니 진실 여부는 몰라도 최소한 조작해낸 역사는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국사가 기본적으로 '안에서 본 개념'이기에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자기네 역사를 좀 더 그럴 듯하게 치장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우리의 시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밖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한국사 전공이 아닌 동양사 전공자인 저자가 우리 역사를 우리의 시선이 아닌  

중국, 일본 등의 주변 국가를 비롯한 나름 객관적 시선으로 새롭게 바라 본 내용들을 담고 있다.

 

가장 와 닿는 내용은 우리가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를 간직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중국의 정복왕조의 사례를 든 것이다.

한나라로 대표되는 한족의 정통왕조가 아닌 요, 금, 원, 청 등 정복왕조들은 중국 전체를 지배했지만  

결국 중국 문화와 체제에 수용되어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고구려를 비롯해 각종 북벌 계획이 설령 성공해서 만주나 더 나아가 중국 본토를 우리가 점령했어도  

과연 우리 고유의 문화를 지키며 중국 본토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싶다.  

중국을 정복한 여러 오랑캐들처럼 중국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들어가  

중국인으로 살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우리만의 문화와 영토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을 저자는 화이부동이라고 한다.  

우리보다 앞선 중국문명을 수용하면서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어갔기 때문에 중국화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이 외세의 힘을 빌린 것이지만 한반도라는 우리만의 공간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간직할 수 있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흔히 우리가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다면' 하는 희망 섞인 가정법의 역사를  

상상하곤 하지만 그 결과가 꼭 우리가 상상하는 바와 같지는 않을 것임을 이 책은 말해 준다.

그리고 우리가 중국의 다른 변방 국가들과는 달리 나름 독자적인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에 버금가는(?) 문화수준을 가진 나라였기 때문이다. 원나라를 비롯해 명나라, 청나라 등이  

우리와 조공관계를 맺었지만 우리를 완전히 지배하지는 않았다.  

그냥 자기들을 대국으로 섬기기만 하면 그냥 너희들끼리 맘대로 살아라고 놔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이민족들을 철저하게 정복했던 것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점이라 할 수 있었다.

중국에 대한 사대가 오늘날에는 미국에 대한 사대로 변모해 계속 유지되는 면이 있지만  

그것이 꼭 나쁘게만 볼 것이 아니었다. 작은 나라로서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큰 나라의 발전된 문화를 흡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바로 사대정책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대주의를 비판하며 만국공법의 원리를 주장한 세력이  

오히려 일제를 비롯한 제국주의 세력으로 전형적인 힘의 논리를 관철시켰다.

 

이 책은 한국사 전체를 개략적으로 살펴보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배웠던 시각과는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여 역사를 바라보게 해 주었다.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계는 민족주의 사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성 내지 훌륭함만 강조하는 경향이어서 우리는 늘 선량하지만 주변의 

나쁜 강대국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였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어찌 보면 반도의 약소한 나라로서 주체적인 문화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 강국과의 적절한 관계설정에 있었을 지도 모른다.  

화이부동이라는 단어가 바로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닐까 싶다.  

무한경쟁의 세계화의 시대에서 우리가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면서도  

다른 나라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이 바로 화이부동에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