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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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

아버지와 함께 생일상을 받으러 서울로 올라온 엄마는 서울역 지하철에서  

아버지 손을 놓치는 바람에 행방불명이 되고만다.

자식들과 남편이 엄마를 찾아나서지만 엄마에 대해 그동안 너무 몰랐음을 깨닫는다.  

늘 곁에 있는 게 당연한 줄 알았던 엄마의 부재.

엄마의 실종을 통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엄마의 존재를 깨닫는데...

 

신경숙의 신작 '엄마를 부탁해'는 이렇게 엄마를 잃어버린 자식들과 남편,  

그리고 엄마 본인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선 워낙 많은 글과 드라마, 영화 등에서 다뤄져 

솔직히 뻔한 신파성 스토리가 펼쳐지지 않을까 싶었다.

IMF가 불어닥친 1997년에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제2의 환란이니 IMF보다 더 어렵다는 요즘 이번에는 '엄마'가 다시 부각되는 게  

그냥 시절이 힘들다 보니 마치 유행처럼 한 때 지나가는 바람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신경숙의 이 책은 단순히 우리가 알고 있던 '엄마'의 존재를

자식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시선에서 재발견하는 의미가 있었다.

 

우리에게 그동안 엄마라는 존재는 사랑과 희생의 신화적 존재였다.

마치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자식들과 가족들을 위해

오로지 헌신과 봉사를 하는 존재로 너무나 당연히 인식되곤 했다.

물론 요즘은 점차 그런 이미지의 엄마는 사라져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 세대에겐 엄마는 그런 존재였다.  

늘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도 같은 그런 존재였다.  

책 속에서도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딸이나 아들, 남편이 그녀의 존재가 얼마나 컸음을,  

그리고 자신들이 얼마나 그녀에게 무심했음을 깨닫게 된다.  

엄마가 치매 증세를 보임에도 누구 하나 제대로 병원에 데리고 갈 생각을 안 한다.

자식들은 자기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남편이란 사람은 늘 그랬왔듯이

특유의 무심함으로 그렇게 그녀의 정신과 육체가 모두 병들어가고 있음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모른 척 한 것이다. 엄마와 아내는 늘 자식들과 남편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사람으로 여긴 것이다.

그렇게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 엄마로 추정되는 사람의 행적을 따라다니게 되자  

그동안 엄마라고 불렸던 사람에 대해 자신들이 너무 모르게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너무 무관심으로 방치했음을 자책하게 된다.  

엄마도 한 사람의 인간이고, 여자였음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딸과 아들, 그리고 남편, 마지막으로 엄마 본인의 시선으로 바라 본 엄마의 인생을 통해  

우리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과연 어떤 의미였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나도 그렇지만 우리는 대부분 엄마에겐 원죄를 가지고 살아간다.  

늘 받기 것만을 당연히 여기고, 늘 투정부리고, 화풀이하는 만만한(?) 상대로 여기는  

엄마의 존재는 그 커다란 자리가 비워져야 깨닫게 되는 그런 자리인 것 같다.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늘 엄마가 없어야 아쉬움을 느끼고,  

그동안의 엄마가 베풀어준 사랑을 깨닫게 된다.

엄마의 피를 그렇게 빨아먹다가 엄마가 힘이 없어지고 우리를 필요로 할 때는 매몰차게 외면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엄마를 부탁해'라는 말이 결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 것 같다.  

그만큼 엄마란 존재가 이용만 당하고 폐기처분(?)되는 비정한 현실에 대한 고발이며  

엄중한 경고가 아닐까 싶었다.

 

에필로그는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개월째다'로 시작한다.

점점 엄마의 부재가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시점에 큰 딸은 바티칸으로 간다.  

그리고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상을 바라보며 이 세상 어딘가, 아니 다른 세상에서 헤매고 있을지 모르는  

엄마를 부탁한다는 말로 소설을 끝맺는다. 성모 마리아와 예수에 엄마와 자식을 비유하면서

좀 더 성스러운 경지로 승화시키려는 의도가 보이지만 엄마의 존재를

굳이 먼 이국땅에 가서 찾아야 할 필요가 있었는 지는 잘 모르겠다.

엄마라는 존재가 만국 공통이지만 아무래도 우리만의 특유한 의미가  

조금 희석되는 감이 들어 아쉬움이 남는 결말이었다.

아무튼 엄마의 부재를 통해 엄마의 존재감을 느끼게 되는 가족들의 얘기는  

작가의 독특한 설정으로 인해 뻔한 신파로 흘러가지 않으면서

잊고 지냈던 엄마의 의미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엄마에게 받은, 아니 지금도 받고 있는 무수한 사랑과 헌신을 잊고지냈던  

수많은 자식들의 죄책감을 콕콕 후벼파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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