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지음, 예상환 외 옮김 / 현대경제연구원BOOKS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이 쓴 책이라는 점과

'미래를 말하다'라는 거창한 제목에 관심을 가졌던 책

하지만 이 책은 앨빈 토플러가 전문인 미래 예측서라기보다는

미국의 보수와 진보세력 간의 역사를 통해 과연 어느 세력이 집권하는 것이 옳은 지를 보여주고 있다.

원제는 'The Conscience of a Liberal'로 진보주의자의 양심 정도의 번역이 적절한데

번역가와 출판사는 책의 마케팅 차원에서 엉뚱하게도 '미래를 말하다'라는 제목을 지어

요즘 시중에 유행하는 자기계발서의 일종으로 교묘하게 포장하고 있다.

자기계발서인 줄 알고 구입한 사람은 그야말로 속아 산거라 할 수 있지만

책을 읽고 나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폴 크루그먼은 미국의 역사를 통해 보수와 진보의 대립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20년대 도금시대에 급속도로 성장하는 산업 속에 오히려 양극화는 극대화되었고

대공황 등을 거치면서 정치, 경제적인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때 민주당 출신의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되면서 부자들로부터 많은 세금을 거둬

적극적인 빈부격차 해소와 사회보장 정책인 뉴딜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시대는 대압착시대라 부를 정도로 빈부의 차이가 크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이 되었다.

그 후 민주당의 트루먼은 물론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등 여러 정부가

뉴딜 정책의 골간을 승계하는 정책을 이어갔다. 

하지만 1980년 공화당의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면서 뉴딜 정책을 뒤집는 정책

즉,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주는 정책을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때는 경기가 호황기라서 그다지 빈부갈등의 문제가 부각되지 않았다. 

민주당의 클린턴은 레이건의 정책들을 다시 원상회복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공화당의 부시는 감세 정책으로 다시 돌아섰다.

2000년대 이후 불황과 빈부격차의 확대가 극단으로 치닫자

결국 미국 유권자들은 다시 민주당의 오바마를 선택한다.

 

이런 일련의 역사를 살펴보는 이유는 공화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주의자와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주의자들이 어떤 정책을 펴 왔고,

그런 정책들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다.

한 마디로 민주당은 부자들에 대한 과세 강화를, 공화당은 부자들에 대한 감세를 주장했다.

의료보험으로 대표되는 사회보장정책에서도 민주당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공적보험을,

공화당은 민영보험을 주장하고 있다.

결국 정책으로만 보면 민주당은 다수인 중산층 내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당이고,

공화당은 부자들을 위한 정당이란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왜 공화당을 많이 선택했을까?

폴 크루그먼은 그 이유로 인종에 대한 편견을 들고 있다.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에 대한 거부감을 자극하는 공화당의 교묘한 전략이

가난한 백인들이 공화당을 찍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건 남부 지역이 공화당의 텃밭인 사실로 잘 알 수 있다.

과거 남북전쟁 이후 북부는 공화당, 남부는 민주당이었으나

인종문제가 불거지면서 오히려 북부는 민주당, 남부는 공화당으로 바뀌고 만다.

인종에 대한 자극이 먹히지 않으면 공화당은 안보 위협을 내세운다.

특별히 공화당이 안보 문제에 있어 민주당에 우위를 보이는 것도 아닌데

공화당은 교묘하게 민주당은 안보에 무력한 정당으로,

자신들이 안보를 책임질 정당으로 유권자들을 현혹시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번 대선을 계기로 인종 문제나 안보 문제가

더 이상 유권자들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극심한 경제불황으로 일시적으로 유권자들이 공화당 정부를 심판했을 수도 있지만

흑인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에서 폴 크루그먼이 보여주는 보수와 진보의 모습은

우리나라에 그대로 대입해도 될 정도로 유사했다.

인종이 특정 지역으로 바뀐 점 정도 빼면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진보주의자 입장에서 보수세력에 대한 공격만 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거의 논리정연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쉽게 반박하기 어려울 것 같다.

솔직히 이젠 이념 대립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니 좀 충격적이라 할 수 있었다.

보수주의자들의 교묘한 공작정치는 정말 섬뜩하다고 할 정도였다.

폴 크루그먼은 그렇다고 보수세력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젠하워 등 뉴딜정책의 가치를 존중하는 공화당의 세력은

충분히 공존하면서 서로 정책적인 경쟁을 할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속칭 '꼴통', '수구' 보수가 아닌 건전한(?) 보수세력은 충분히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는 왠지 오른쪽으로 너무 가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정부가 '종부세' 문제를 비롯해 감세정책을 지향하는 점 등은 점점 빈부격차를 확대시켜

나라를 구제불능의 길로 끌고 가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미국의 입장에서 진보가 희망임을 밝힌 폴 크루그먼의 이 책은

우리도 많이 경청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물론 미국과 우리가 완전히 동일한 상황은 아니지만 내용마다 특정 정당 등이 대입이 되어서

우리의 문제를 다룬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나마 우리가 미국보다 나은 점은 의료보험제도가 아닐까 싶다.

이 책만 읽으면 진보는 선이고, 보수는 악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진보든 보수든 잘못된 건 잘못되었다고 인정할 수 있고

이를 개선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자기 정파, 지지 정당에 따라 문제를 완전히 다르게 인식하는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우리의 미래는 과연 어떨지 하는 생각에 착잡함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이었다.

폴 크루그먼이 미국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처럼

우리의 미래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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