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
애덤 필립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흔히 광기에 대해선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심리학이나 의학에서 이 주제를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논문이나 책을 발표했으며, 인류 역사 속에서도 이 상태에 있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높다.

반면 우리가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그런 상태를 일컫는

'멀쩡함'이란 단어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광기가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반면에 멀쩡함은 별로 부각되지도 않고 관심을 받지도 못한다.

 

이 책은 멀쩡함과 광기가 과연 무엇인지를 논하고 있는데 광기가 아닌

멀쩡함에 중점을 두고 그 정체를 파헤치려고 하고 있다.

광기의 반대말로만 인식되던 멀쩡함은 그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물론 '멀쩡하다'는 단어는 광기만큼 매력적이거나 명확한 징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우리가 그만큼 '멀쩡함'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도 크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의 세상 속에서 멀쩡함이란 지배세력의 말을 잘 듣는,

세뇌된 상태의 인간을 말한다. 여기선 오히려 멀쩡함이 잘못된 것이며

멀쩡하지 않는 것이 정상인 아이러니한 상태가 된다.

우리도 해방 후 오랜 시간 동안 독재체제하에 있었는데 이런 시절에 그들에게 저항하는 세력은

광기에 휩싸인 어리석은 자들로 치부되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민주화세력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

여기서 멀쩡함에도 단순히 그 시대 질서의 측면에서 볼 때 멀쩡하다는 의미와

시대를 초월하는 멀쩡함으로 구분지을 수 있다.

이는 레잉이 '오늘날의 멀쩡함'과 '진정한 멀쩡함'으로 구분하는 관점과 동일하다.

어찌 보면 멀쩡함과 광기는 종이 한 장 차이로 어떤 관점에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일 수 있다.

'그래도 지구가 돈다'고 말한 갈릴레이도 그 당시의 관점에선 미치광이에 지나지 않았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멀쩡한 사람이었다.

광기가 만연한 곳에선 광기가 정상이고 멀쩡함이 되고, 멀쩡함이 광기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광기와 멀쩡함을 구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멀쩡함과 광기를 섹스, 자폐증, 정신분열증, 우울증의 정신질환들, 돈을 통해 논의한다.

섹스나 돈에 대해서 사람들은 각자 다른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흔히 어느 정도의 섹스나 돈에 대한 광기 내지 열정은 지극히 정상적이면서 긍정적으로 그려지지만

이를 넘어선 광기는 변태 내지 속물로 전락하고 만다.  

자폐증이나 정신분열증, 우울증도 특정적인 부분이 정상이 아닌 상태라 할 수 있다.

특히 우울증의 경우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기에

우울증이 어느 정도 있는 것은 멀쩡한 상태라 할 수 있다.

멀쩡함은 선이고 광기는 악이라는 이분법이 통하지도 않고

멀쩡함과 광기를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멀쩡함과 광기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무관심 속에 방치해 놓은 '멀쩡함'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흔히 광기와 대비되는 긍정적인 의미의 멀쩡함은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공허한 면이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 진정한 멀쩡함은 단순히 광기의 반대말이 아닌 자신만의 정체성과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무색무취의 단어였던 '멀쩡함'에 그에 걸맞는 가치를 다시 발견하고 부여해 준 것에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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