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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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무생물의 차이점을 말하라고 하면 쉽게 생각나는 것이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그럼 생명이란 무엇이냐고 다시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은 분자생물학이 전공인 교수가 생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인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하고 있다.

 

먼저 생명을 정의하는 중요한 특징으로 자기 복제 능력을 들 수 있다.

사람의 경우만 봐도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수정란의 세포분열을 통해 하나의 완전한 인간이 되고,

일정한 나이가 될 때까지 계속 성장하면서 늘 새로운 세포들을 복제하여 만들어낸다.

하지만 단순히 생명을 자기 복제를 하는 시스템으로 부르기엔 뭔가 부족한 점이 있다.

저자는 추가적으로 생명이란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라고 말한다.

동적 평형 상태는 우리의 놀라운 신체 시스템을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늘 호흡을 하며 음식물을 섭취하고 배설하는 일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일정한 체내 산소량, 혈압, 혈당 등을 유지하며 건강을 유지한다.

물론 지나친 과식 등의 나쁜 습관으로 인해 동적 평형 상태를 잃어 고통을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상인의 경우 신체의 놀라운 기능으로 인해 항상 일정한 동적 평형 상태를 유지하면서 살아간다.

이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의 고유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단백질 분자 중 일부의 결여나 부분적 변형이

전체적인 결여보다 더 위험하다는 사실은 새롭게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광우병의 프리온 단백질도 일부에 이상이 생기면

뇌 전체가 제 기능을 못하게 되어 정상적인 기능을 못하게 만든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DNA가 이중나선구조라는 사실을 밝혀 20세기 최고의 발견 중 하나로 손꼽히는 업적을 남기고

노벨상까지 공동 수상한 왓슨, 크릭, 윌킨스에 얽힌 일화는 조금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사실 얼마 전에 읽은 '노벨상 가이드'에서도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과학계도 최초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은 직업윤리가 무색할 정도다.

사이언스나 네이처 같은 저명한 잡지에 가장 먼저 실리는 것이 최초의 지위를 선점하는 방법인데

그 과정에서 잘못하면 자신의 연구 성과나 아이디어를 경쟁자에게 도둑 맞거나 노출당해

영광스런 자리를 억울하게도 빼앗기는 경우가 종종 있곤 한다.

DNA와 관련한 업적도 사실 대부분은 로잘린드 프랭클린에게서 나왔지만

그녀는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하고 모든 영광은 그녀의 연구결과를 거저 주은 세 명의 남자에게 돌아갔다.

내가 그녀라면 분하고 억울해서라도 눈을 못 감았을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공한 사람들 중에 분명 다른 사람의 업적을 가로챈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위대한 패배자'란 책에서 자신의 연구성과를 고스란히 뺏긴 리제 마이트너와 유사한 사례였다.

 

생물과 무생물의 큰 차이점은 바로 시간이다.

무생물을 대표하는 기계의 경우 언제든지 다시 만들 수 있고 교환이 가능하다.

하지만 생물은 시간의 흐름을 다시는 거스를 수 없고 대체 불가능하다.

여기서 저자는 생물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얘기한다.

생명을 가진 생물은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하고 소중한 존재이기에

우리는 생물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흔히 인간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다른 생명체들을 도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이익을 위해 다른 생명체들의 희생이 따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순간의 유희로 다른 생명을 빼앗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될 행동일 것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선 결코 인간도 그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저지른 만행은 고스란히 인간에게로 돌아오기에

다른 생명체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분자생물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생명과학의 역사를 통해

생명의 본질을 밝히고 생명의 위대함을 말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전문적인 내용이 나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과학자답지 않은(?) 감수성 넘치는 표현력으로 생명의 가치를 잘 설명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저자 말대로 우리는 자연의 흐름 앞에 무릎 꿇고, 생명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깨닫고 다른 생명을 경시하고 오만하게 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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