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패배자 - 한 권으로 읽는 인간 패배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을유문화사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 역사는 1등만을 기억한다는 광고가 있었다.

그리고 흔히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고들 말한다.

이렇게 늘 승자만 각광받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이다.

하지만 누구나 승자가 되길 원해도 늘 승자는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럼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은 패배자란 말인가

저자의 말처럼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패배자일 수밖에 없다.

물론 세상에는 1등만 필요한게 아니라 2등부터 꼴찌까지 다 필요하다.

자신의 능력에 맞게 여러 분야에서 각자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해야

이 세상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기왕이면 승자가 되고 싶은게 인간의 욕망이다.



이 책에서는 역사상 패배자들을 다양하게 분류하고 있다.

비참한 패배자, 영광스러운 패배자, 승리를 사기당한 패배자,

왕좌에서 쫓겨난 패배자,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몰린 패배자,

끝없이 추락한 패배자, 세계적인 명성을 도둑질당한 패배자,

더 큰 영광의 시간을 박탈당한 패배자, 살아서는 인정받지 못한 패배자,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인생들까지 다양한 패배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패배자로 제시하고 있는 인물들 중에는

이 사람을 과연 패배자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인물들도 꽤 있었다.

특히 마지막 장의 오뚝이 인생들인 처칠과 덩샤오핑을 실패자라 부르기엔
그들이 성취한게 너무나 많다.

그들마저 실패자라 한다면 실패자가 아닌 사람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싶다.



실패를 했기에 더욱 영웅이 된 인물로는 체 게바라를 들 수 있다.

냉정하기 짝이 없지만 순수한 열정 그 자체였던 그는

혁명이 필요한 곳엔 어디든지 달려갔다가 결국 최후를 맞고 만다.

하지만 그러한 그의 극적인 삶이 오히려 지금 그를 신화적 영웅으로 만들었다.



이 책의 패배자들 중에는 이 책을 통해 첨 알게 된 사람들도 많았다.

아들에게 가려졌던 요한 슈트라우스나 동생에게 짓밟힌 하인리히 만,

자신의 연구성과를 동료에게 고스란히 빼앗긴 리제 마이트너나

암호 해독으로 영국의 승리를 도운 앨런 튜링,

요절하여 자신의 재능을 꽃 피우지 못한 게오르크 뷔히너와 이사크 바벨

노벨상까지 수상했지만 말년에 나치를 찬양해 명성에 먹칠해

우리의 이광수 등 친일파 작가들을 연상시킨 크누트 함순 등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불행한 패배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잘 알던 인물들도 패배자로 분류되었는데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로 동구권 개방의 주역이었던 고르바초프는

견고했던 철의 장막을 무너뜨리며 동유럽의 자유화를 이끌었지만 이는 소련연방의 해체를 야기시켰고

결국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지극히 미미한 득표율로 망신을 당한 후

강의나 행사의 얼굴마담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2000년 대선에서 부시에게 억울하게(?) 대통령 자리를 빼앗긴 앨 고어,

마침 혁명기에 왕의 자리에 있어 단두대에 올라야 했던

사랑스러운(?) 루이 16세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하게 되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할 수밖에 없었던 리처드 닉슨이나

살아 생전 단 한 작품밖에 팔지 못했던 비운의 화가 고흐

동성애로 인해 사교계의 스타에서 한순간에 몰락한 오스카 와일드 등

패배자라 하지만 역사의 한 순간을 장식한 인물들이 꽤 많았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괴테와 연관된 인물이 두명이나 등장한다는 점

괴테에게 짓밟힌 렌츠와 그를 능가할뻔한 게오르크 뷔히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여기서 괴테는 비열하기 짝이 없고 야비한 인물로 그려진다.

대문학가로 추앙받는 괴테의 진면목이 정말 그럴까 싶기도 하지만

그가 그런 위치에 서기까지는 분명 뭔가(?)가 있었을 것 같다.

(승리자에 대한 편견과 질투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모짜르트를 질투한 살리에르가 빠졌다는 사실이 좀 의문이다. ㅋ



승리자들이 승리를 위해선 어떤 것도 불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패배자들은 대부분 승리나 계산에 밝지 못하는 순진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인간적으로는 냉혹한(?) 승리자보다

인간미 넘치는 패배자들을 우리가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소홀히 지나쳤을 패배자들의 삶을

다시 한번 조명하고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인물 중에 진정한 패배자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인물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은

오직 승자만을 인정하는 세상의 고정관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승자가 역사가 인정하는 승자일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

단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저자가 유럽인이라 그런지 서양의 패배자들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동양의 패배자들, 특히 우리나라의 패배자들까지 다루었다면

보다 구색을 갖추고 훨씬 흥미롭지 않았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