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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타벅스에서 그리스신화를 마신다 - 세이렌은 어떻게 당신의 취향을 저격해 왔는가
이경덕 지음 / 어바웃어북 / 2024년 8월
평점 :
그동안 그리스신화와 관련한 책들은 무수히 읽어서 사실 웬만한 책은 이미 알던 내용들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신화를 다루는 책은 복습용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책은
그리스신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할 수 있는 현재 우리 시대의 것들을 살펴봐서 그동안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줄 거라 기대가 되었다.
이 책에선 총 4개 챕터에서 걸쳐 각 10가지씩 그리스신화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먼저
인간에게 불을 전해 준 프로메테우스의 얘기로 시작하는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의
원작이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로 핵폭탄을 인간에 전해 준 오펜하이머를 프로메테우스에 빗대었으나
핵폭탄을 불과 비교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싶다. 책 표지에도 사용되었지만 스타벅스의 로고는 세이렌을
형상화한 것인데 원래 새의 몸통에 여인의 얼굴을 했던 세이렌이 북유럽 신화, 기독교적 세계관과
결합하면서 인어로 변했다고 한다. 메두사, 페르세포네 등 친숙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관련된 그림이나
조각들도 보여줘서 미술책으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했다. 올해 의대증원 문제로 계속 시끄러운데 대한
의사협회가 1947년 처음 로고를 제정할 때부터 지팡이를 감고 있는 뱀을 두 마리로 해서 저승사자(?)인
헤르메스의 지팡이 케리케이온으로 잘못 표시한 것은 정말 황당한 얘기였다. 뱀 한 마리여야 WHO의
로고와 같이 그들이 표시하고 싶었던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인데 그리스신화를 제대로 몰라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도 적지 않은데 아폴론에게 강간당한
크레우사와 그녀가 낳은 아들 이온의 얘기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할 권리를 인정한 판례를 폐기한
사건과 연결시켰고, 너무 유명한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헬레네는 제우스가 싫다고 도망치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를 겁탈해서 또는 백조로 변신해서 낳은 딸인데 그 이유가 세상에 영웅이 너무
많아 전쟁으로 없애기 위해서였다는 흥미로운 견해를 들려줬다. 이렇게 기존에 알았던 내용은 물론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까지 그리스신화를 보는 관점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면서 여러 분야를 통섭하여
바라볼 수 있게 해줘서 그리스신화의 매력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