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독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부잣집 딸과 결혼한 후 장인 회사 사보팀에서 편집을 맡으며

평화로운 삶을 살던 스기무라 사부로

늘 말썽을 부리던 아르바이트생 겐다 이즈미가

회사에서 해고되자 그녀의 끈질긴 복수(?)가 시작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립탐정을 찾아갔다가

연쇄 독살사건의 피해자의 손녀 미치카와 얽히게 되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책

그녀의 책은 '스텝파더스텝'과 '이유'를 읽었는데

'스텝파더스텝'이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었다면

'이유'는 수많은 사건 관련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사회의 병폐를 유감없이 드러낸 수작이었다.

 

이 책은 제목과 같이 '이름 없는 독'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먼저 '이름 있는' 독인 청산가리를 이용한 연쇄 무차별 독살사건과

거짓말을 일삼고 독기를 내뿜는 사람 속의 독

그리고 새집증후군과 토양 오염 등 환경 오염에 존재하는

우리가 모르는 자연의 독 등 세가지 종류의 독에 대해 얘기한다.

세가지 독 중 특히 무차별 독살사건과 독기를 내뿜는 사람이

주인공 스기무라에게 얽히면서 사건이 전개되는데

요즘 뉴스 등을 통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

더욱 사건이 현실감있게 느껴지고 몰입할 수 있었다. 

 

한편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는 스기무라 사부로라는

새로운 모습의 탐정(?)이 등장하는 것이다.

아직 안 읽어 봤지만 '누군가'를 통해 데뷔한 그가

이젠 본격적으로 탐정 역할을 수행해 나가기 시작했고

미미 여사는 결말에서 그가 탐정으로 전업할 것임을 암시한다.

막대한 재산을 가진 아내와 결혼해 여유로운 남자가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탐정으로 나선다는 설정은

기존에 존재하는 많은 탐정들과는 조금은 색다른 케이스다.

 

일본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미미여사에게는

다른 유명작가와는 달리 그녀를 대표하는 탐정이 없었다.

셜록 홈즈, 에르큘 포아로, 엘러리 퀸, 파일러 번스 등

이름만 들으면 떠오르는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탐정이 그녀에겐 아직 없었다.

이 책을 통해 두번째 활약을 보인 스기무라 사부로가

앞으로 계속 맹활약을 펼친다면 미미여사의 탐정은 그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스기무라 사부로에겐 다른 뛰어난 탐정들처럼

회색 뇌세포도, 번뜩이는 머리와 민첩한 활동성도 없었다. 

부잣집 딸과 결혼해서 여유로운(?) 삶을 누리며

장인의 회사에서 소박하지만 행복한 생활을 하는

평범한, 아니 좀 소심한 가장에 불과하다.

자신의 가족을 괴롭힌 겐다 이즈미를 응징할 수도 있지만

맘 약한 그는 차마 때리지도 못한다.  

어찌 보면 탐정의 생명인(?) 카리스마가 부족하지만

오히려 우리의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아저씨라 훨씬 더 인간적이지 않나 싶다.

 

이 책은 새로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독'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독들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형체가 불분명해 우리를 공포로 몰아가는 이러한 독들에게

이름을 붙임으로써 형체를 확인하는 것이 독을 없애는 길임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마치 김춘수의 '꽃'에서 한갓 몸짓에 지나지 않던 꽃에

이름을 붙여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처럼

 

모든 독의 근원은 결국 사람인 것이다.

사람의 몸과 맘에 존재하는 '이름 없는 독'들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외부로 분출되면서 이 세상은 점점 삭막해지고 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소유한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분노는

결국 미국에서 흔해진 총기난사사건 등의 원인이며

이러한 '이름 없는 독'을 치유하는 것만이 

우리가 서로 어울려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 절실히 깨닫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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