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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 - 8인의 시인, 8인의 화가 : 천진하게 들끓는 시절을 추억하며
김연덕 외 지음 / 미술문화 / 2022년 12월
평점 :
그림과 시는 뭔가 통하는 게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긴 하는데 이 책은 8명의 우리 시인들이 각자
선택한 8명의 화가의 작품들에 대한 자신의 얘기를 엮은 책이다. 사실 시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아서
이 책에 등장하는 8명의 시인은 모두 초면이었다. 그나마 시인들이 고른 화가들 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이어서 과연 어떤 작품들에 얽힌 흥미로운 얘기들을 들려줄지 궁금했다.
먼저 안희연 시인은 파울 클레를 선정했다. 파울 클레는 알기는 하지만 그리 친숙한 편은 아닌데 시인은
파울 클레의 작품을 시로 옮기고 싶었다고 할 정도로 자신에게 좋은 안내자가 되어 주었다고 한다.
자신이 써 놓았지만 발표하진 않은 시들이 담긴 USB를 판도라의 상자로 표현하는데, 카프카는 사후
본인의 원고를 모두 태워달라고 했음에도 부탁을 받은 친구 막스 브로트가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 우리가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지만 시인은 자신의 USB를 깊은 바닷물에 버려주거나 펄펄 끓는
물이라도 부어달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서윤후 시인은 가쓰시카 호쿠사이라는 낯선 이름의 일본
작가를 선택했는데 이름은 낯설지만 그의 우키요에 작품은 본 적이 있을 것 같다. 예술이 아주 고독하고
진귀한 혼잣말로 만들어져 왔다고 얘기하는데 잘 몰랐던 호쿠사이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오은 시인은 앙리 마티스를 소개한다. 마티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춤'과 A라는 무용수와의 사연을
얘기하는데 마티스의 '춤'이 뉴욕 현대미술관과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있는 두 개의 버전이 있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김연덕 시인은 헤몽 페네라는 화가를 선택했는데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인물이지만 내 취향에도 맞는 그림들이었다. 신미나 시인은 밀레의 '만종'을 중심으로 고등학교때
교회와 얽힌 사연을 들려주고, 이현호 시인은 조선 후기의 기인 호생관(붓으로 먹고사는 사람) 최북을
선정해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들려준다. 최재원 시인도 조금 생소한 피에르 보나르를 선택했는데
최후의 인상주의 화가라는 그의 그림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고, 박세미 시인은 이소화라는 낯선 한국
추상화가와의 인연을 들려준다. 이렇게 여러 시인들이 각자에게 영향을 주었거나 사연이 있는 화가들
작품과 흥미진진한 얘기들을 들려줘 화가와 그림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을 준 책이었는데 정작
시인들 작품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상태여서 시인과 작품을 아는 상태에서 이 책을 봤다면 훨씬 더
공감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