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의 여름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추지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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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저지른 만행은 워낙 강렬해서 이후 수많은 문화 콘텐츠의 소재가 되었는데

조금은 거리가 있는 나라의 작가들도 그 대열에 합류한 경우도 없지 않다. 이 책도 일본인 작가가 2차

대전 전후의 베를린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을 겪은 아우구스테라는 한 소녀와 그 주위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죽음의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저자의 '전쟁터의 요리사들'이란 작품도

2차대전 당시 미군들을 다뤘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저자가 2차대전의 전문가인가 보다.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 앞서 '작가의 말'에 이 책의 원제가 '베를린은 맑은가'이고 자신의 모국인 일본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침략과 학살을 자행했던 나라임을 기억하라는 뜻도 담았다고 하는데 일본의 만행을 그린

작품을 쓰지 않고 굳이 다른 나라와 다른 나라 사람들을 등장시키는 작품을 쓰는 건 좀 의아했다.


암튼 내용은 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7월 이미 항복한 베를린에서 부모를 잃고 혼자 생존한

아우구스테가 미군 식당에서 일하다가 소련의 NKVD에 연행되어 조사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유력 인사인

크리스토프 로렌츠가 양치질을 하다가 청산가리가 있는 치약을 사용해 죽었고 그의 아내가 아우구스테를

언급했기 때문인데 이들 부부는 부모를 잃고 오갈 데 없던 아우구스테를 보살펴준 인연이 있었다. 

아우구스테는 심문을 받은 후 로렌츠의 아내 프리데리카를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조카였던 에리히가  

가출한 후 다른 부부에게 입양된 사실을 알게 되고 크리스토프가 죽기 전 에리히를 만난 게 아닌가

의심한다. 결국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해오던 책 '에밀과 탐정들'을 훔쳐간 유대인 카프카와 얽히면서

에리히를 찾아가는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중간중간에 '막간'이라며 아우구스테가 태어날 때부터의

가족들 얘기를 들려주는데 나치가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공산주의자였던 아우구스테의 아빠 데틀레프와

아내 마리아가 겪게 되는 일들을 통해 나치가 장악해나가는 독일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시간을 넘나들며 아우구스테의 파란만장한 삶을 보여주는데 2차대전 당시 나치에 유린당한 많은 

사람들의 얘기들을 접할 수 있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같은 독일인들도 나치에 동조하지 않던 사람들

에겐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든 끔찍한 나날이 이어졌는데 패망 이후 소련이 점령한 곳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에 있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에리히 찾기 과정에서 여러 진실들이 드러나고 우여곡절 끝에 에리히를

만나지만 엉뚱하게도 그동안 벌어진 일들이 모두 큰 그림(?)의 일환임이 밝혀진다. 크리스토프의 죽음의

진실은 마지막에야 알 수 있었는데 뭔가 개운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냉혹한 역사의 순간들을 살아간

사람들이 겪은 일들을 미스터리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작가의 능력이 돋보인 작품이었는데 일본을

배경으로 하거나 일본의 만행을 다뤘다면 훨씬 더 실감나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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