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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유형 ㅣ 고전 아틀리에 1
루스 베네딕트 지음, 박종일 옮김 / 인간사랑 / 2022년 4월
평점 :
'가깝지만 먼 나라'라고 불리며 여전히 냉랭한 관계인 일본에 대해선 여러 책들이 다룬 적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책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책인 '국화와 칼'일 것이다. 명성은 익히 들어왔던 책인데
그동안 기회가 없다가 이번에 드디어 읽어보게 되었는데 서양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담겨 있었다.
먼저 이 책이 미국 정부의 연구용역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은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시점에 미국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일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같은 서양권 국가인 독일과 달리 일본은 뭔가 독특한 면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처리방법에 대한 접근을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었고 그 당시 각광받기 시작하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그 임무를 맡게 되어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전쟁 중인 상황이어서 현지조사가
불가능한 가운데 미국 내 일본인들을 통해 이를 대신하고, 일본에 관한 각종 문헌과 자료들을 토대로
이 책을 내놓게 된다. 먼저 전쟁 중에 보여준 일본인들의 모습, 가마카제특공대처럼 죽음도 불사하는
맹목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일본군이 있는가 하면 포로가 된 후 적극 협력하는 모순된 태도를
이해하기 위해 '각자의 합당한 위치'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계층제 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에
맞는 행동을 요구받고 그에 맞는 대우를 받기를 원하는 일본인에게 이와 다른 상황은 견디기 어렵고
특히 '온(恩)'을 입는 것을 상당히 꺼려한다고 본다. 이 책에선 한자어를 일본식으로 표현하여 고유
명사처럼 사용하는데, 공인된 사회적, 인적 관계에서 '온'이 내포하고 있는 거대한 채무감이 일본인이
전력을 다해 '온'을 상환하려는 동력이 되는 한편 채무자가 되는 건 힘든 일이어서 반감도 생긴다고
한다. 나츠메 소세키의 '보짱(도련님)'의 일부분을 인용하고 있는데 '온'에 대한 일본인의 모순된
감정을 잘 보여줬다. 여기서 '기리(의리)'라는 중요한 단어가 등장하는데 '기리'는 시혜자로부터 받은
만큼만 상환해도 되고 시간적인 제한도 있는 부채로, 사회에 대한 '기리'와 자신의 이름에 대한 '기리'로
나눠진다. 특히 '추(충성)'나 '코(효)'와 달리 '기리'는 일본인이 가장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그중
자신의 이름에 대한 '기리'는 자신의 명성에 오점을 남기지 않아야 하는 의무로 모욕을 당하면 이를
받드시 벗어야 했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일본인의 기본적인 세계관을 파고들어가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는데 직접 일본에서 생활해보지도 않은 서양인이 일본인을 이렇게 자세히 파악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책이 나오자 일본에서도 큰 반향이 일어났는데 일본 군인 등을 일본인 전체로 성급하게
일반화했다는 비판 등이 있기는 했지만 여러 제약 속에서 일본인의 모습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분석
했다는 찬사가 많았다. 이 책에서 그린 일본과 일본인의 모습이 일본의 실제 모습과 완전히 일치하진
않겠지만 일본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책임은 분명한 것 같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한일관계를
보면 왜 일본이 저러는지를 이해하는 데도 나름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