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에서 47일동안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역사소설의 대표주자인 김훈의 신작

그의 대표작인 '칼의 노래'는 아직 읽어 보지 않았지만

'현의 노래'를 통해 그의 매력은 이미 맛 보았다.

그의 글은 군더더기가 없고 담백한 장점이 있는 것 같다.

극중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을 묘하게 가로막고

조금은 객관적이게 만드는 그의 문체는 좀 더 냉철한 시각을 갖게 만들어 준다.

 

남한산성에서의 47일간의 기록을 담은 이 책은

죽음과 삶, 명분과 치욕의 갈림길에 선 풍전등화의 당시 상황을 잘 그려냈다.

남한산성에 갇혀 나가지도, 버티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엄동설한에 한정된 식량으로 겨우겨우 연명해 나가는

그야말로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 준다.

 

임진왜란으로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중국의 정권교체기가 되자 또다시 조선은 소용돌이에 내몰린다.

국제정세에 밝았던 현실주의자인 광해군과 북인 세력이 인조반정으로 축출당한 후 

인조와 서인정권은 명과 청사이에서 지는 해인 명에 대한 의리를 내세운다.

그것은 결국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게 만든다.

늘 위정자들의 헛된 명분에 백성들만 죽어난다.

 

그래서 그들이 남한산성에 갇힌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인조와 서인정권은 강화도로 향할 생각이었지만

만일 그들이 남쪽으로 도망쳤다면

또다시 전국이 청나라에 짓밟히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다.

남한산성에 갇힘으로써 백성들의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남한산성에 갇혀서도 최명길의 주화파와 김상헌의 척화파의 갈등은 계속된다.

일전불사를 주장하는 김상헌의 척화파와 청에 대한 굴욕을 받아들이자는 주화파

그들은 모두 이것이 살길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방법론은 너무나 달랐다.

우리의 정치 현실이 늘 그랬다.

목적은 동일하지만(?) 수단이 늘 극과 극이었다.

명에 대한 사대나 청에 대한 사대가 다를 것 없다 보면

목숨을 걸고 지킬만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치욕을 당하느니 죽는게 나은지, 치욕을 감수하며 사는게 나은지

어느 편이 옳다고는 쉽게 단정지어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죽음을 택해서 후세에 영원히 기억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음을 피하려다 후세까지 치욕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

작가의 말대로 죽어서 살 수도 있고, 살아서 죽을 수도 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김상헌이나 최명길이나 모두 죽기를 각오하고

진심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방법론이 극과 극이었지만

그들의 진심어린 충정만은 인정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친절하게도 부록으로 남한산성 지도나 낱말풀이 등

책을 읽는데 필요한 정보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게다가 '또 하나의 이야기'라는 별책부록(?)까지 줘서

이 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찾아서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현대인의 습성을 깨뚫어 본 것 같다.ㅋ

그리고 각종 사료들과 답사를 통한 철저한 자료 수집과 연구를

통해 이 책을 집필한 작가 김훈의 역량에 경의를 표한다.

 

남한산성에서의 고통스런 47일과 삼전도의 굴욕을

우리 세대가 다시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