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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ㅣ 현대지성 클래식 33
토머스 모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1월
평점 :
흔히 이상향을 의미하는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의 작품인데 고전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책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은 무수하지만 실제 읽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나도 실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궁금했는데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다녀왔다는 라파엘 히틀로다이오라는 사람에게서 들은 얘기를 기록한 형식의
이 책은 아무래도 시대에 앞서 가는 사상이 담겨 있다 보니 마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처럼 토머스 모어 자신이 직접 주장하지 못하고 누군가로부터 들은 얘기라며 유토피아에
대해 얘기한다. 당시 영국에서도 헨리 8세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절대왕정의 시대여서
공화국을 기본으로 하는 유토피아는 충분히 불온서적으로 여겨질 수 있었을 것 같다. 최초의 평민 출신
대법관까지 역임한 토머스 모어는 결국 헨리 8세와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 및 헨리 8세가 영국 국교회
수장이 되는 수장령에 반대하다가 참수당하고 마는데 이 책을 발표한 걸 보면 그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인물임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유토피아는 원래 섬이 아니었는데 양쪽 모퉁이에 수로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섬이 되었다. 섬 안에는 54개의 도시가 있고 정중앙에 수도라 할 수 있는 아마우로스라는 도시가
있다. 유토피아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실패한 공산주의와
유사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농업에 의무 종사(기본 2년)해야 했다. 왕이나 상설 의회는
없고 30가구를 한 단위로 해서 시포그란토르라는 대표자를 선출하여 200명의 시포그란토르로 구성된
의회가 구성되면 의회에서 시장을 선출해서 독재를 한다는 의심을 받지 않는 한 종신 근무하도록 했다.
모든 것을 공동 소유하고 남는 것만 수출하며 외국을 침략해서 영토 확장을 꿈꾸지도 않는 유토피아
시민들은 욕망으로 가득한 인간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사유재산제도를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본 것 같은데 자본주의 체제가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주의
체제로 간다는 건 그야말로 희망사항을 얘기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당시 일도 안 하고 온갖
부를 누리는 귀족, 지주들에 비해 먹고 살기 힘들어 절도를 해야 했던 농민들은 사형에 처했던 당시의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측면은 확실히 의미가 있었다. 유토피아라는 나라에 흥미로운 부분들이
적지 않았는데 다른 나라와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하게 되면 다른 나라 왕의 암살에 현상금을 걸어 전쟁을
가급적 피하면서 승리하는 방식을 선호했고, 노예도 있긴 했는데 전쟁 포로나 범죄를 저질러 강등된
시민이었다. 이혼이나 재혼은 아주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등 가부장적인 체제여서 과연 유토피아가
진짜 유토피아인지 의심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았는데 현재의 기준으로 볼 때는 그리 이상향인지는
잘 모르겠다. 유토피아와 관련된 서신과 시까지 망라해 제대로 된 완역본이라 할 수 있었는데 그동안
막연히 상상했던 유토피아의 모습과는 좀 달랐지만 당시 상황으로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세상을 그려
(물론 현재로서도 현실화되긴 어렵겠지만) 말 그대로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을 제시한 시대를
앞선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