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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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 책은 상당히 파격적인 설정을 선보인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힘든 여자들이 하루에 100단어만 말할 수 있도록 통제한다는 것인데 안 그래도 남자보단 상대적으로 

말을 더 많이 하는 여자들에게 말을 제대로 못하게 만든다니 과연 가능하기는 한 일일까 싶은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정책을 시행하는 곳이 여자들에게 여러 통제를 가하는 이슬람권 국가도, 아프리카 국가도,

북한도 아닌 미국이어서 더 놀랍다. 자칭 자유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국가인 미국에서 그것도 이런 정책을

대놓고 내세운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면서 조지 오웰의 '1984'에나 나올 법한 빅 브라더에 의한 감시

사회가 시작된다. 모든 여자들의 손목에 단어 카운터가 채워지고 100단어 이상을 얘기하면 바로 충격이 

가해지며 경찰이 출동하는 세상이 되면서 여자들의 입이 강제로 채워지게 된다. 게다가 여자들은 

직업을 가질 수 없게 되면서 기존 직장 여성들이 모두 전업주부로 전락하고 마는데 당연히 이런 상황에

불만과 반기를 드는 여자들이 생기지만 정부는 어떻게든 이런 여자들을 통제하며 꿋꿋하게 자신들의 

뜻대로 정책을 추진해나간다.


이 책의 주인공인 진 매클렐렌 박사는 아들 셋, 딸 하나를 키우는 엄마이자 신경학과 언어학의 권위자로

등장하는데 당연히 정부의 황당한 정책에 반대하지만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의사인 남편 

패트릭도 정부 정책에 동조하는 듯하고 장남인 스티븐이 열렬한 순수운동의 지지자가 되자 진은

막내 딸 소니아의 삶을 걱정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 좌절하지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대통령의

형을 낫게 하기 위한 실어증 치료제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 요청을 받게 된 진은 자신과 딸 소니아의

단어 제한을 푸는 조건을 내걸고 전 동료들인 로렌조와 린과 재회하여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이 

과정에 여러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데 가장 충격적인 건 진의 불륜으로 인한 임신이었다. 갑자기 막장

드라마로 내용이 변질될 위기에 처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투쟁 대오가 흐트러지지 않고 또 다른 음모를

꾸미는 정부에 맞서 놀라운 쿠데타(?) 계획을 세우게 된다. 후반부는 사실 너무 전개가 빠른 감이 없지

않았다. 여자들의 하루 단어수 제한으로 부족해 아예 입을 틀어막으려는 계략에 맞선 저항세력의 

투쟁은 생각보다 싱거울 정도로 술술(?) 진행이 되었는데 결말도 그동안 황당한 나라를 만들었던 것에

비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쉽게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직도 극단적인 생각을 가진 집단들이

없지 않아 이 책에서의 설정이 꼭 황당무계하다고만 단정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나치도 선거를 통해 

정당하게 권력을 얻어 세상을 전쟁터로 만들었던 것처럼,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처럼 현실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감정에 쉽게 휩쓸리는 대중들을 선동해 자신들의 뜻대로 막장

정치를 할 인간이나 집단은 늘 있을 수 있으니 경계를 늦추지 않고 항상 감시를 해야 하는데 황당한

설정 자체가 과연 얘기를 어디로 끌고 갈지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작가가 여자라 

그렇지 남자가 이런 설정을 했다면 좀 시달렸을 것 같기도 한데 엉뚱한 정책으로 여자들을 억압하는

정부에 맞서 싸우는 부분에 좀 더 집중했으면 좋았겠지만 진의 부적절한 사생활이 부각되면서 초점이 

좀 흐려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게 아쉬운 점이었다. 암튼 함부로 여자의 입을 막고 통제하려 들면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를 흥미롭게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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