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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채우는 그림 인문학
유혜선 지음 / 피톤치드 / 2020년 1월
평점 :
미술과 인문학을 함께 다루는 책들을 종종 만나다 보니 이제는 둘의 콜라보가 자연스러운 경지를 넘어
당연한 듯 여겨질 지경이다. 미술이나 인문학 하나만 다룬 책들을 읽을 때보다 이해와 재미가 배가
되는 느낌이 들어 이런 컨셉의 책들이 나오면 자연스레 눈길이 가곤 하는데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이 둘을 통해 자신을 채운다고 하니 과연 어떤 그림과 인문학을 조합시켜 자신을 충전시킬 것인지
기대가 되었다.
이 책에선 '자아', '사랑', '인생', '죽음', '행복'이라는 5가지 테마로 관련된 미술작품들을 보면서
저자가 아는 사연을 들려주며 얘기를 풀어나간다. 먼저 '자아'편에선 제임스 엔소르의 '가면에 둘러
싸인 자화상'으로 포문을 여는데 직전에 읽었던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첫 번째 키워드로 제시한
'멀티 페르소나'와도 상통하는 페르소나와 이미지 메이킹과 관련된 얘기를 들려준다. 당대의 문제작인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통해 통념을 거부하며 저항하는 여자들인 '블루스타킹'을 대표하는 시몬
드 보부아르를,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책 읽는 여자'를 통해 매혹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살롱의
여성들을 다루는 등 저자가 여성이다 보니 주로 여성들의 주체적인 삶을 언급하는 얘기들이 많았다. 에드바르트 뭉크의 '프리드리히 니체'와 '사춘기'를 통해 나쁜 남자(?) 니체에 위로받았고, 다수의
대중에 대한 강의보다 소그룹 강의가 더 힘들다는 저자의 사연을 들려준다. 사실 이 책에선 저자
본인의 얘기보다는 저자의 지인인 이니셜로 표현되는 사람들의 얘기가 훨씬 더 많이 등장하는데
저자의 지인들이 이 책을 보면 자기 얘기라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다. 암튼
구구절절한 흥미로운 실제 사연들이 아무래도 훨씬 얘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건 사실이었는데, 어디서 이런 사연들을 수집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대부분 친숙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난 작품들도 적지 않았는데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남성 나체',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오르막길', 줄 바스티엥 르파주의 '건초 만드는 사람들' 등 초면인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작년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에서 직접 봤던 프랑수아 부셰의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 등 반가운 작품도
종종 보였다. 그림들을 다룬 책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림은 역시 사연과 함께 그 의미를
알고 봐야 더 많이 보이고 훨씬 와닿는 게 많은데 이 책도 여러 사람들의 사연들과 함께 작품을 감상
하니 더 오래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