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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 독재부터 촛불까지, 대한민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ㅣ 서가명강 시리즈 8
강원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1월
평점 :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라는 '서가명강' 시리즈는 다양한 분야의 서울대 교수들의
강의를 책으로나마 만나볼 수 있어서 나름 신선한 자극을 주기 때문에 새로운 책들이 나올 때마다
기대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어쩌면 민감한 주제인 한국 정치를 다루고 있어서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궁금했다. 이 책에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강원택 교수가 한국 정치를 '대통령',
'선거', '정당', '민주화'라는 4가지 키워드로 그 역사와 바람직한 방향 등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제시한다.
먼저 1부 '대통령'에선 한국 정치의 드라마틱한 주인공인 대통령과 관련하여 대한민국이라는 민주
공화국의 탄생부터 현재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모색까지를
다룬다. 상해 임시정부가 처음에는 국무총리제를 채택해서 이승만이 국무총리로 선정되었는데
대통령제를 선호했던 이승만의 요구로 대통령제로 정체를 바꾸게 된다. 이후 다양한 정부 형태가
시도되다가 해방을 맞게 되는데 헌법 초안도 내각제를 기초로 했다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승만이 대통령제를 고집하자 어쩔 수 없이 대통령제로 바뀌게 된다. 임시정부를 비롯해 대한민국
초기 정부들은 그야말로 이승만의 입맛대로 헌법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지속되는데 이후 발췌
개헌이나 사사오입개헌 등 대한민국 헌법사 유린의 주범은 이승만이라 할 수 있었다. 이승만이
4. 19. 혁명으로 쫓겨난 뒤 잠시 내각제를 하지만 박정희의 쿠데타로 다시 대통령제로 복귀하면서
이번에는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계속된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제왕적 대통령제는 큰 틀의 변화가 없이 계속되면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여 그 대안으로 4년 중임제 등이 제시되고 있지만 저자는 권력이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대통령제의 통치 형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2부 '선거'는 요즘 정치권을 마비시키고 있는 쟁점인 선거제의 역사가 다뤄진다. 민심을 반영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인 선거제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늘 권력자가 자기에게 유리한 제도를
시행하려 하지만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격변을 예고하는 시그널을 보냈다. 저자는 국회의원 수
증가와 연동형 비례대표가 바람직하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이상론으로는 몰라도 국회의원을 줄여도
될까 말까 한데 증원한다는 건 국민 정서와는 너무 거리가 먼 얘기였다. 3부 '정당'에서는 우리나라
정당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하고 있어 이해하기 좋았는데 요즘과 같이 정당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거리 내지 광장 민주주의(?)가 횡행하는 상황에서 정당정치가 제대로 회복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마지막 4부에선 대한민국의 파란만장한 '민주화'의 역사를 다루는데 요즘 벌어지고 있는
양 진영의 극한대결의 모습을 보면 대의정치는 실종되고 자기들만 옳다는 독선만 판을 치는 게
아닌가 싶은 씁쓸한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 책을 통해 한국 현대 정치사의 큰 흐름을 네 개의
키워드를 통해 정리할 수 있었는데 단기간에 많은 걸 이뤄냈다고 볼 수도 있는 반면 여전히 많은
숙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극한대치로 일관하는 후진적 대의정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큰 틀에 있어 근본적인 정치 제도와 시민 의식의 개선이 필요함을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