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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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백색 실명증이 휩쓴 뒤 4년 뒤 다시 찾아 온 백지투표 사태

잠시 눈을 멀었던 그들이 이젠 머리가 하얗게 백지가 된 것일까...

 

주제 사라마구의 최신작인 이 책은 전작인 '눈먼 자들의 도시'로부터

4년이 지난 시점의 도시에서 발생한 백지투표 사태를 소재로 하고 있다.

 

우리는 선거를 할 때마다 최선이 아닌 어떻게든 최악은 막아야지 하며 차악을 선택하는 투표를 한다.

이 당도 맘에 안들고 저 당도 맘에 안들지만 그래도 쟤들이 집권하는 것은 막아야지

이런 생각에서 투표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눈뜬 자들의 도시민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권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바로 제3의 지대인 백지투표를 한 것이다.

 

누가 백지투표를 하자고 선동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이런 뜻밖의 사태를 접한 정부는 2차 투표를 실시하지만

결과는 더욱 악화되고 만다. 무려 83%의 백지투표.

자신들에 대한 부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백지투표에

정부는 시민 5백명을 잡아들여 그 원인을 조사하지만

도대체 그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자 정부가 꺼낸 대책은 계엄령 선포

급기야 수도인 이 도시를 버리고 야반도주를 감행해서 수도 이전을 해 버린다.

그리고 이 사태의 책임을 덮어 씌울 희생양을 만들기로 작정한다.

폭탄 테러를 저지른 후 백지투표의 주모자가 이를 배후에서 조정하고 있다는 것 

 

점점 사태는 악화일로에 있지만 시민들은 큰 혼란을 빚지 않는다.

4년 전 백색 실명증이 불어닥쳤을 때의 그 지옥과도 같은 처참한 상황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정부와 공권력이 사라졌음에도 오히려 평화로운 나날을 연출한다.

정부는 이런 당황스런 사태에 대한 책임을

4년 전에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의사의 아내에게 떠넘기며

치졸한 여론조작과 마녀사냥을 시작하는데...

 

주제 사라마구는 이번 작품을 통해 권력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오히려 무정부주의를 찬양하는 듯한 모습을 드러낸다.

전작에선 무정부의 공황상태를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원초적인 세계로 그려냈던 것에 반해

이번 작품은 오히려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어 좀 혼란스럽긴 하다.

전엔 눈이 멀었으니 그럴만도 하지만 눈 뜬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은 눈 먼 사람과 같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육체적으로 눈을 뜨고 있는 것과 눈이 먼 것도 분명 크나큰 차이임에 틀림없지만

무엇보다 마음의 눈을 뜨고 있느냐고 역시 더욱 중요한 것 같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의사의 아내의 말처럼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

그게 바로 우리의 현재 모습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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