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늑대의 피
유즈키 유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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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들을 보면 대부분 정의의 화신이며 불사조같은 주인공이 등장해

비열한 악당들을 천신만고 끝에 무찌르는 얘기를 들려준다. 내가 좋아하는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나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등은 전형적인 형사 스타일에서 조금 벗어나 여러 사고들을 많이 치긴 하지만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소신껏 자신이 믿는 정의를 관철시키는 인간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캐릭터들이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69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에 빛나는 이 작품에서도 제목부터 고독한 늑대

스타일의 형사가 등장함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구레하라 동부서의 '고독한

늑대' 오가미 경사는 대놓고 야쿠자와 유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구제불능(?)의 형사였다. 이런 오가미

형사의 파트너로 신참인 히오카가 오면서 본격적인 얘기가 시작한다.

 

책 앞쪽에 등장인물 관계도가 친절하게 그려져 있는데 왼쪽에는 구레하라 동부서가, 오른쪽에는

구레하라의 폭력조직의 관계가 정리되어 있다. 이 책에서의 핵심 사건도 폭력조직간의 알력에서

비롯된 일촉즉발의 상황을 야쿠자 전문(?)인 오가미 형사가 중간에서 잘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는데 경찰서 내에서나 야쿠자들한테서나 나름의 존중을 받는 오가미 형사의 존재감은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각 장마다 특정한 날짜의 일지로 시작하는데 내용을 보면 오가미 형사의

파트너인 히오카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지만 일부 내용이 삭제되어 있다. 여기에도 무슨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나중에 드러난 사실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가코무라구미

계열 금융회사의 직원이 실종되면서 오가미와 히오카가 실종자의 행방을 찾는 와중에 양대 폭력단인

가코무라구미와 오다니구미의 조직원들 사이에 난투극이 발생하고 그 와중에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부터였다. 두 세력간의 전쟁이 일어날 심각한 상황에서 오가미 형사가 중재자 역할을 하며 겨우

잠시 진정시키는데 성공하고 오가미 형사는 특유의 정보력과 야쿠자들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하여 

실종된 직원의 시체를 찾아내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데...

 

폭력범죄 전문인 고독한 늑대 오가미 형사가 야쿠자들이 얽힌 사건들과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이 사람이 정말 형사인지 야쿠자인지 헷갈릴 정도인데 그럼에도 오가미 형사 나름의

원칙과 소신이 있어 경찰이 쉽게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을 잘 넘어가게 만든다. 이런 오가미 형사에게

반감이 있던 히오카도 차츰 그의 스타일에 적응하게 되고 오가미의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사태는 점점 심각해져 오가미 형사가 중간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기엔 벅찬 상태가 되고

결국 오가미 형사가 목숨을 건 도박에 나서게 된다. 야쿠자 조직간의 갈등과 이를 해결하는 폭력

범죄 전담 형사의 얘기라 그런지 조금은 낯선 얘기와 익숙하지 않은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상당히

실감나는 얘기가 전개되어 흡입력 있는 내용을 선보였는데 여성 작가가 이런 얘기를 썼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두 야쿠자 세력간의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오가미 형사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예상하지 못한 비장한 결말을 맞이하고 만다. 그리고 드러나는 오가미와 히오카의

진실과 에필로그는 가슴 먹먹한 진한 여운을 남겨주었는데 이 책의 고독한 늑대와 같은 경찰들이

바로 험악한 세상으로부터 시민들을 지켜내는 파수꾼들임을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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