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고르 [1813.5.5~1855.11.11]

 

요약
덴마크의 철학자. 그는 대중의 비자주성과 위선적 신앙을 엄하게 비판하였다. 다른 한편에서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단독자()로서의 신()을 탐구하는 종교적 실존의 존재방식을 《죽음에 이르는 병》등의 저작을 통해 추구하였다.
원어명 Søren Aabye Kierkegaard
국적 덴마크
활동분야 철학
출생지 덴마크 코펜하겐
주요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1849)

본문

코펜하겐 출생. 아버지는 비천한 신분에서 입신한 모직물 상인으로 경건한 그리스도교인이었고, 어머니는 그의 하녀에서 후처가 된 여인이었다. 7형제의 막내로, 태어날 때부터 허약한 체질이었으나, 비범한 정신적 재능은 특출하였으며 이것이 특이한 교육으로 배양되어 풍부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변증()의 재능이 되었다. 소년시절부터 아버지에게 그리스도교의 엄한 수련을 받았고, 청년시절에는 코펜하겐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연구하여 1841년에 논문 《이로니의 개념에 대하여》로 학위를 받았다.

그 동안에, 1837년경 그가 스스로 ‘대지진()’이라고 부른 심각한 체험을 하였다. 그 내용은 아버지가 소년시절에 유틀란트의 광야에서 너무나 허기지고 추운 나머지 하느님을 저주한 사실이 있었다는 것과, 바로 자기자신이 결혼 전에 아이를 밴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것 등을 안 사실로 죄의식이 심화되었고, 인생을 보는 눈과 그리스도교를 보는 눈에 근본적인 변혁이 생겼다.

한편, 1837년 당시 14세의 소녀 레기네 올센을 알게 되자 곧 사랑의 포로가 되어 약혼까지 하였으나, 애정의 상극과 내면의 죄의식 때문에 1841년 가을에 약혼을 파기하였다. 이른바 레기네 사건이며, 이 때에 체험한 정신적인 갈등이 훗날 미적 저작의 주제가 되었다. 그 후 한때 베를린에 나가 당시 명성을 떨치던 철학자 F.W.셸링의 강의를 듣기도 하고, 《돈 죠반니》 《파우스트》 등 많은 오페라를 관람하기도 하다가 이듬해인 1842년에 귀국하여 저술을 시작하였다.

그의 활동은 활발하여 1843~1846년의 짧은 기간에 《이것이냐 저것이냐 Enten-Eller》(1843), 《반복 Gjentagelsen》(1843), 《공포와 전율 Frygt og Baeven》(1843), 《불안의 개념 Begrebet Angest》(1844), 《인생행로의 여러 단계 Stadier paa Livets vei》(1845) 등과 같은 이른바 미적 저작과 《철학적 단편 Philosophiske Smuler》(1844), 《철학적 단편을 위한 결말의 비학문적 후서() Afsulttende uvidenskabelig Efterskrift til de Philosophiske Smuler》(1846) 등의 철학적 저작을 모두 익명으로 출판하였고, 이 밖에도 그리스도교에 관한 많은 교화적인 강화()를 발표하였다.

그 후 저술에 싫증이 난 그는 시골의 목사가 되어 조용한 생활을 보내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이 때에 풍자신문 《코르사르》에 그의 작품과 인물에 대하여 오해에 찬 비평이 실려, 그것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논쟁하는 사이에, 또 다시 그리스도교도로서의 새로운 정신활동과 저술을 향한 의욕이 용솟음쳤다. 그는 신문의 무책임한 비평과 세간의 비웃음에도 굴복하지 않고, 한편에서는 대중의 비자주성과 위선적 신앙을 엄하게 비판하였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단독자()로서의 신()을 탐구하는 종교적 실존의 존재방식을 《죽음에 이르는 병 Sygdommen ti1 Dø den》(1849), 《그리스도교의 수련 Indoevelse i Christendom》(1850) 가운데에서 추구하였다.

그는 기성 그리스도교와 교회까지도 비판하였으며 《순간》 등의 팸플릿을 통한 공격은 매우 격렬하였다. 그런 와중인 1855년 10월 갑자기 노상에서 졸도한 후 다음달 병원에서 죽었다. G.W.F.헤겔의 범논리주의를 배제하여 불안과 절망 속에 개인의 주체적 진리를 탐구한 그의 사상은 20세기에 들어설 때까지 국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909년부터 독일에서 C.슈램프가 키르케고르의 번역집을 내어 당시 신진이었던 P.바르트, J.H.하이데거, K.야스퍼스 등의 변증법 신학자와 실존주의자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그로부터 그의 명성은 현대 그리스도교 사상과 실존사상의 선구자로서 세계에 알려졌다. 1995년 기독교한국루터회가 뽑은 ‘세계를 빛낸 10인의 루터란’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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