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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야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심지영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8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계적인 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주로 4대 비극이라는 '햄릿', '오델로', '리어왕', '맥베스'와
'로미오와 줄리엣' 등이 유명하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들이 존재해서 그의 작품들을
제대로 읽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얼마 전에 '좋으실 대로'를 읽어봐서 셰익스피어와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좋으실 대로'와 비슷한 설정이면서 홍콩 영화 제목으로도 익숙한
이 책과 만남의 기회가 생겼다.
제목인 십이야는 예수가 태어난 12월 25일로부터 12번째 날인 1월 6일을 뜻하는데,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만나러 베들레헴을 찾는 것을 기리는 축일이자, 예수가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증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한다. 왜 이런 제목이 붙었는지에 대해선 최초 상영일이
1월 6일이라서라는 견해도 있지만 옮긴이는 삶의 무수한 순간 속에서 문득 얻게 되는 깨달음의 순간과
그 깨달음을 통해 현재보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순간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멋진 해몽(?)을 내놓고 있다. 사실 전에 읽었던 '좋으실 대로'와 가장 큰 공통점은 남장여자가 주인공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난파를 당해 하나뿐인 오빠 세바스찬이 익사한 것으로 알고 남장을 하여 험한
세상을 살아나가기로 한 바이올라는 올시노 공작의 비서가 되어 올시노 공작이 구애를 하고 있는
올리비아에게 그를 대신해 마음을 전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올리비아는 올시노 공작의 청혼은
거절하면서도 세자리오란 이름으로 메신저 역할을 하러 온 남장여자 바이올라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보통은 남장여자가 등장하면 남자가 남장여자에게 끌리면서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등의 얘기가
펼쳐지기 마련인데 이 책에선 남장여자인 바이올라(세자리오)를 여자인 올리비아가 사랑하는
잘못된 관계가 가장 중심에 서서 조금은 색다른 맛이 있었다(둘이 이름이 비슷한 어감이어서 좀
헷갈렸다ㅋ). 한편 토비 경과 앤드류 경은 올리비아의 시중을 드는 마리아를 이용해 올리비아의
집사 말볼리오를 골탕 먹이는데 어리석게도 이들의 장난질에 놀아나는 말볼리오의 코믹한 모습이
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올리비아와 올시노 공작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바이올라의
상황은 그녀의 오빠 세바스찬과 그의 절친 안토니오가 등장하면서 더욱 오해의 골을 깊게 만들지만
5대 희극 작품답게 모두가 행복했다는 결말로 마무리 된다(참 말볼리오는 제외ㅎ). 남장여자로
부족해서 쌍둥이까지 등장시켜 막장 드라마(?)의 기본 골격을 잘 제시한 셰익스피어의 흥겨운
작품이라 할 수 있었는데 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결국은 결혼에 골인하는 걸
해피엔딩으로 삼는 한계가 있지 않았나 싶었다. 작품해설에서는 이 작품을 낭만희극이 아닌 문제극이나
블랙코메디에 가깝다고 본 학자들의 견해가 충분히 타당하다고 보는데 당시 결혼을 무기로 존재감을
과시하던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대한 풍자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는 것 같았다. 암튼 셰익스피어의
희극들은 말 그대로 코믹한 상황 설정들이 적지 않아 나름 재밌게 보는데 다음에는 또 어떤 작품과
만나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