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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낙하하는 저녁' 이후 오랜만의 에쿠니 가오리와의 만남
그녀의 섬세한 감정표현은 늘 보석처럼 반짝인다.
여고생들의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나를 그 옛날 학창시절로 데리고 갔다.
모두 같은 반 학생들을 각각 주인공으로 한 6개의 단편
그들은 같은 공간에서 학창시절을 보내지만 같은 듯하면서도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각자 다른 고민과 걱정을 갖고 다른 색깔의 생활을 꾸려나가는 여고생들
지하철 여자 치한(?)에게 끌리는(?) 기쿠코
다시 태어나면 초록 고양이가 되고 싶다는 에미
엄마와 넘 친하며 새로 만난 남친과의 사랑을 키워가는 유즈
사람들을 사탕으로 평가하는 사탕일기를 쓰는 카나
다카노씨라 불리며 자신의 성숙한 매력(?)을 발산하는 미요
한 교실에서 생활하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여고생들을
각각의 단편 속에서 서로 오버랩되게 구성하여
한 이야기에선 주연이었다가 다른 이야기에선 조연으로 변신하는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나의 고딩시절 기억들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해주었다.
기쿠코와 친구들이 수업 시간에 몰래 쪽지를 돌리며
의견을 주고 받는 장면을 보며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싶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인 시험
이 책에 등장하는 여학생들은 그리 시험에 목매진 않는다.
그녀들도 그 시절 나와 같이 시험 보는 날을 좋아?다. 일찍 집에 가니깐...ㅋ
3~4일씩 시험보는 기말고사기간은 그야말로 오랜만에 집에서 뒹굴거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시험공부를 해야하긴 하지만...ㅜ.ㅜ
시험 보고 집에 돌아가는 한적한 평일 오전의 거리는
정말 낯선 세상을 거니는 기분이 들어 좋았었는데...
한편 카나의 사탕일기는 정말 기발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정도에 따라 일기에 파란사탕, 은색사탕, 검정사탕을 주는 것
미워하는 사람은 독약이 든 검정사탕을 하도 많이 줘서
독살시키고도 남았을 거라는 표현이 정말 앙증맞았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읽을 때면 뭔가 낯설음을 느끼면서도 왠지 끌리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낙하하는 저녁'의 이상한(?) 삼각 관계나
그녀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도쿄타워'에서의 세월을 뛰어넘는(?) 사랑은
보편적인 정서에서 많이 벗어나고 오히려 거부감마저 들게 만들면서도
그녀의 맛깔어린 문체와 표현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만들었다.
아련한 기억속의 학창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해 준 이 책은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영원히 가슴속엔 살아 있을 소중한 시절로 나를 잠시 데려가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