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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의 레퀴엠 ㅣ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3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8월
평점 :
한국적 블루오션호가 침몰하던 도중에 20대 여성을 폭행해 구명조끼를 빼앗아 목숨을 건진 도치노는
폭행죄로 기소되지만 긴급피난을 적용받아 무죄 선고를 받는다. 10년이 지난 후 사이타마현의
'백락원'이란 특별 요양원에서 입소자가 요양보호사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피의자가 자신을
갱생의 길로 이끌어준 이나미란 사실을 알게 된 미코시바는 이미 다른 변호사가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된 사건을 손을 써서 자신이 변호를 맡는데...
나카야마 시치리는 근래에 내가 가장 자주 만난 작가라 할 수 있다. 최근에 그의 작품이 계속 소개되고
있기도 하지만 그의 여러 시리즈들이 모두 상당한 수준의 작품들이라 신간이 나오면 즉시 만남의 자리를
만들기 때문이기도 한데 다른 작품에서 보기 힘든 '시체배달부'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를 주인공으로 한
'속죄의 소나타'와 '추억의 야상곡'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들이라 세 번째 작품인 이 책도 기대가
되었다. 시작부터 왠지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키는 한국 여객선 침몰사건이 등장해 좀 거북한 느낌도
들었는데 형법 공부할 때 나오는 긴급피난이 적용되는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사건이 등장한다. 뜬금없는
사건 이후 미코시바의 은인이라 할 수 있는 이나미가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미코시바가 술수를 부려 사건을 맡는데 얼마 전 읽었던 '테미스의 검'의 주연 와타세 경부가
힌트를 줘서 이나미가 죽인 요양보호사가 바로 블루오션호 침몰사건에서 여자의 구명조끼를 빼앗아
입고 긴급피난을 적용받아 무죄로 풀려났던 도치노였음을 알게 된다. 사람을 죽게 만들고도 무죄
방면을 받았던 사람이 피해자가 된 얄궂은 사건에서 살의를 갖고 살해했음을 자백한 이나미를 위해
무죄임을 입증하려는 미코시바의 힘겨운 투쟁이 시작된다. 보통의 의뢰인들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무죄나 감형을 받으려고 하는 반면 이나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죄값을 달게 받곘다며 미코시바의
변호를 방해하지만 미코시바는 꿋꿋이 요양원을 조사하며 그곳에서 요양보호사들이 입소자들에게
상습학대를 하였음을 밝혀낸다. 이를 바탕으로 이나미가 다른 입소자가 폭행당하는 걸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치노를 살해했다며 긴급피난을 주장하는데 긴급피난으로 형벌을 받지 않았던 도치노가
이번에는 긴급피난의 희생자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해 유죄로
쉽게 결론이 날 것으로 보였던 사건이 미코시바의 노력으로 점점 무죄 분위기로 흘러가지만
여전히 자신을 처벌해달라고 막무가내인 피고인 이나미의 태도로 인해 결과를 섣불리 예측하기가
어려웠는데 그 사이에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앞선 두 작품에서 놀라운 반전들이
계속되어 이번에도 전혀 뜻밖의 진실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닌가 만반의 대비를 했지만 예상 외로
싱겁게 끝났다고 할 수도 있었는데 미코시바의 패배가 가장 큰 반전이 아닐까도 싶었다. 블루오션
침몰 사건이나 고 이수현씨를 생각나게 하는 지하철 선로에 추락한 승객을 구하다 사망한 이나미의
아들까지 왠지 우리와 관련된 사건들에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인 것 같았는데 이번 사건으로 인해
변호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던 미코시바가 전작에서 만났던 쓰다 아키코의 딸 쓰다 린코의 편지를
받고 다시 힘을 내어 그만의 속죄를 계속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