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의 축제>를 다시 읽었습니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리 오래된 것 같진 않습니다. 처음에 읽었을때는 별점 5개만큼이나 재미있었는데, 다시 읽으니 텀이 짧아서 그런가 감흥이 조금 떨어지네요.

 

 이 책은 실존주의 소설로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보는 시각조차 무의미합니다. 이 소설은 모든 '무의미' 에 대해 이야기 하는 소설입니다. 존재의 무의미를 넘어, 농담, 장난, 거짓말, 배꼽 등 모든 무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저는 의미에 집착하는 편입니다. 무엇이든 원인을 찾으려고 하고,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려고 합니다. 무의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의미없음', '비생산적', '비효율적', 이런 것들이 가끔씩 신경에 거슬립니다. 제가 멍때리는 것을 못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시간을 의미없이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깨에 힘을 빼고, 조금만 무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면, 광대한 우주의 시각에서 저를 보면, 슬프도록 무의미해집니다. 제가 겪은 슬픔, 시련, 절망, 스트레스, 욕심 등이 너무나 작고 무의미해보입니다. 무의미를 인정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밀란 쿤데라는 무의미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 역설적으로 그것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렵지만 어렴풋이 알 것도 같습니다. 무의미, 사랑. 길가에 핀 꽃 한송이는 제게는 무의미한 존재입니다. 그 꽃이 제게 의미가 있지 않더라도 그 꽃을 사랑할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일 것 같습니다. 거기서부터 '무의미의 축제' 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것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순간. 삶은 축제가 되는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저도 무의미한 오늘 하루부터 사랑해보겠습니다.

 

“오래전부터 말해 주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죠. (중략)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 작품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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