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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한 빛 - 사진과 정치폭력
수지 린필드 지음, 나현영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무정한 빛>은 최근에 독서모임을 한 책이다. 이 책은 사진의 함의에 대해 다룬다. 사진 중에서도 폭력을 담은 사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고찰한 책이다.
잠깐 이 책에 대한 설명글을 보자.
이 책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전쟁, 집단학살, 잔학행위를 담은 사진들에 대한 포스트모던 비평의 과도한 비판에 맞서, 우리를 "공포와 예술이 만나는 도덕의 지뢰밭" 으로 안내하고 포토저널리즘의 위상을 성공적으로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10년 미국비평가협회상 비평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다."
폭력을 담은 사진, 잔인한 장면, 시체를 담은 사진은 분명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이 불편에 대해 과도한 비판을 쏟아내는 비평가들이 있다. 그런 사진들을 포르노그래피에 비유하기도 하고, 관음증적이라고도 비판하고 현실을 왜곡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수전 손택과 존 버거가 대표적이다.
그들의 비평에도 일리가 있다. 이 책의 저자 수지 린필드도 일부 동의한다. 나또한 그들의 의견에 일부 공감한다. 그런 잔혹한 사진을 보고 쾌락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꾸 보다보면 오히려 무감각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사진을 거부하고 회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응은 제각각이다. 과연 우리가 취해야할 올바른 반응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잔인한 사진을 보았을 때 우리는 슬픔과 동시에 무력감을 느낀다. 분노와 동시에 좌절감을 경험한다. 이미 사진은 과거의 기록이며 우리에겐 과거를 바꿀 힘이 없다. 사진 속 사람들은 이미 살해된 자들이다. 사진 속 피해자는 어쩌면 자신의 모습이 사진으로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관음증적이다.
하지만 수지 린필드가 이 책을 통해 주장하려는 것은, 그리고 로버트 카파, 제임스 낙트웨이, 질 페레스 같은 포토 저널리스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사진은 수단이다. 진실을 알리는 수단이다. 내가 보기에 아주 똑똑한 사람들조차도 수단과 목적을 혼동한다. 모든 것에는 명과 암이 있다. 칼은 과연 나쁜 것인가 좋은 것인가? 어리석은 질문이다. 좋은 목적을 위해 쓰이면 좋은 수단이 되고, 나쁜 목적을 위해 쓰이면 나쁜 수단이 된다. 물론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칼로 무 자르듯이 딱 잘라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목적을 위해 사진을 수단으로 활용해도 분명 비판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 비판의 여지 때문에 사진이라는 도구를 포기해야만 할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수전 손택과 존 버거는 사진의 어두운 면만을 봤다. 사실 이는 충분히 고찰하고 경계해야할 부분이다. 하지만 사진이 주는 극적인 효과와 기능도 크다. 사진으로 기록되지 않았더라면 묻혔을 수도 있는 어두운 역사도 많다. 글과 문서는 어느정도 통제할 수 있지만 한 장의 사진이 같는 진실성과 파급력은 어떤 독재자도 막을 수 없다.
토론할 거리가 참 많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나눌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독서모임에서는 약간 피상적으로만 다뤄져서 아쉽다. 나는 독서모임을 통해 깊이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쉽지 않다. 일단 발제자의 계획대로 모임이 진행되며 시간 또한 충분치 않다. 솔직하고 깊이있는 대화를 나누기에는 여건이 조금 부족하다. 그래서 요즘 독서모임을 한 번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든다. 혹시 같이 하실 분?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좋은 문장과 좋은 사고로 이루어진 좋은 책이다. 굳이 사진에 대해, 폭력에 대해 관심이 없더라도 읽다보면 즐겁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훌륭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