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10.26.


《인어 왕자님 2》

 카즈미 유아나 글·그림/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6.7.15.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걷고 싶은 길을 걸을 적에 즐겁다. 그런데 한 가지를 따져 볼 노릇이다.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걷고 싶은 길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일을 나라나 마을이나 집에서 몇 가지로만 못박아 놓는다면 어떨까. 우리가 걸어갈 길을 몇 군데로만 묶으면 어떨까. 이때에도 우리는 하고픈 일을 하거나 걷고픈 길을 걷는다고 말할 만하려나. 《인어 왕자님》 두걸음을 읽는데, ‘사람이 되어 사랑을 하고픈 인어’뿐 아니라 ‘사람이라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막상 스스로 하고픈 일을 하는지 살짝 아리송하다. 어느 사람은 하고픈 일을 하는구나 싶지만, 어느 사람은 굳이 그 일을 해야 할까 싶은 일을 하려고 들면서 스스로 헤매고 스스로 깎아내린다. 인어가 인어답게 살아가는 길이란 뭘까? 인어는 이렇게 해야만 인어요, 사람은 저렇게 해야만 사람일까? 사내라는 몸은, 가시내라는 몸은, 저마다 어떤 몸짓과 모습이어야 할까? 우리는 참말로 삶을 지으려는 생각인지, 아니면 남들 눈에 그럭저럭 좋아 보이도록 하는 하루가 되려는 생각인지를 잘 살펴야지 싶다. 어떤 일을 해도 좋다. 활짝 웃어야지. 어떤 길을 가도 아름답다. 바람처럼 노래해야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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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10.25.


《내 꿈이 최고야》

 코랄리 소도 글·니콜라 구니 그림/김현희 옮감, 풀빛, 2013.3.15.



숲자락에 염소를 풀어놓고서 돌보는 이웃님이 있다. 이웃님네 염소는 숲자락을 마음껏 돌아다니다가 우리로 돌아와서 잠든다. 이곳에 아이들하고 마실을 다녀오는데 마침 이날 한창 염소우리를 치우시네. 석 달마다 한다는 염소우리 짚갈이를 소매 걷어붙이고 거든다. 작은아이도 씩씩하게 거든다. 손이 많으니 일손을 많이 줄인다. 아이들이 놀 적에는 그야말로 신나게 놀고, 일을 거들 적에는 또 이때대로 신나게 일하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내 꿈이 최고야》라는 그림책을 편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저마다 꿈을 한 가지씩 밝히는데 저마다 제 꿈이 가장 훌륭하다고 우쭐댄다. 아이들이란 참 귀엽게 놀지. 그런데 이런 우쭐대기가 어른 모습이라면? 그때에는 좀 볼썽사나울 수 있으리라. 티없는 마음으로 뽐낼 적하고, 뭔가 내세우고 싶어서 콧방귀를 뀔 적은 참으로 다르다. 다만, 그림책에서 두 가지쯤 아쉬운데, 하나는 아이들이 밝히는 꿈은 막상 ‘꿈’이라 하기 어렵다. 요즈음 학교에서 으레 ‘꿈 = 앞으로 돈을 벌 일(직업)’로 가르치기 일쑤라 이런 틀에 갇힌 모습만 보여준다. 둘째, 아이들이 손꼽는 훌륭한 꿈에 어머니나 아버지 되기, 숲을 껴안기, 하늘을 품기 ……처럼 수수한 삶이 없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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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수련하러 갑니다
김재덕 지음, 김태훈 그림 / 스토리닷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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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38


《나는 오늘도 수련하러 갑니다》

 김재덕 글

 김태훈 그림

 스토리닷

 2018.9.9.



매서운 골바람이 불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골굴사는 골짜기가 깊어서 추운 겨울 방 안에 있다 보면 바람이 내 방의 창문에 닫기 전에 저 멀리서 파도가 밀려오듯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14쪽)


수련할 때 품새를 연무하면서 완급, 호흡, 동작, 힘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지금 깨어 있는 연습을 하는 것과 같다. 지금 내 모습에 깨어 있지 못하고 주변 환경, 보고 있는 사람이나 지나간 동작들에 마음이 떠 있으면 내 흐름을 잃게 된다. (24쪽)


이때는 내 안에서 당혹감과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해지는데 그때 느낀 것은 내가 실천하지 않은 것들은 힘이 실리지 않아 나에게는 물론 상대에게도 공감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112쪽)


언젠가 아버지께서 겉멋 들지 말고 내면을 다지는 수련, 수련자가 되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178쪽)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듭니다. 가만히 보면 아침저녁 흐름은 늘 똑같이 흐른다 할 만할 테지만 우리 삶에서 똑같은 날이란 하루도 없습니다. 달력에 적힌 글씨는 1월 1일이나 12월 31일이 똑같을 테지만 늘 해가 다르지요. 같은 봄이라 해도 해마다 다른 봄이에요. 같은 낮이어도 날마다 다른 낮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깨어날 수 있는 몸이며 마음을 다스리는 길을 간다고 할 만합니다. 하루하루 아침저녁 밤낮으로 차분한 몸이며 마음이 되도록, 즐거운 마음이며 몸이 되도록, 꿈꾸는 몸이며 마음이 되도록, 노래하는 마음이며 몸이 되도록 다스리고 갈고닦고 추스릅니다.


  《나는 오늘도 수련하러 갑니다》(김재덕, 스토리닷, 2018)를 읽으면, 글쓴이가 걸어오는 배움길 이야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글쓴이가 어떤 무술이나 수련길을 닦는 일기로 여길 수도 있고, 날마다 똑같아 보이는 몸가꾸기를 하지만 막상 날마다 똑같지 않은 몸가꾸기를 하는 줄 차츰 알아차리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숨을 쉬어도 똑같은 숨이 없습니다. 물을 마셔도 똑같은 물이 없습니다. 같은 지붕을 바라보며 사는 사이어도 날마다 다른 숨결입니다. 같은 마루를 걷고 같은 마당을 디뎌도 어제하고 오늘이, 아침하고 낮이, 아까하고 이제가 늘 다릅니다.


  늘 다르기에 늘 새로울 수 있고, 늘 다르기에 늘 거듭날 수 있어요. 늘 다른 줄 안다면, 조금 앞서 어긋나거나 어설펐거나 엉성하거나 바보스러웠어도 이를 말끔히 털고서 신나게 다시 할 만합니다.


  배우는 길이란 언제나 고이 흐르도록 살펴서 다스리는 삶길이지 싶습니다. 더 빈틈없는 몸짓을 선보이려는 뜻이 아닌, 몸짓 하나하나에 어떤 마음이 깃들어서 삶을 짓는지 돌아보려는 뜻이지 싶습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온삶을 이루는 걸음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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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츄 1
베사메 무쵸 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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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시렁 127


《카미츄 1》

 무쵸 베사메 글

 나루코 하나하루 그림

 설은미 옮김

 학산문화사

 2010.1.25.



  아이들은 하느님 같은 얼굴로 웃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같은 얼굴로 웁니다. 우리는 모두 아기로 태어나 어린 나날을 살았으니, 모든 사람은 저마다 하느님 같은 얼굴로 웃고 울던 하루를 누렸겠지요? 비록 오늘을 살면서 이러한 지난날을 까맣게 잊었다고 하더라도 말예요. 《카미츄》 첫걸음을 읽는데, 이 만화에 나오는 아이는 좋아하는 아이를 생각하며 잠들다가 꿈을 꾸던 어느 날 문득 ‘하느님(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어떤 님(신)이 된 줄은 모르고 님이 된 줄만 깨닫습니다. 이런 일을 둘러싸고 어느 동무는 심드렁히 받아넘기고, 어느 또래는 아는 척을 안 하지만, 어느 사람들은 ‘모실 님이 우리 학교에 다니는구나’ 하고 생각해요. 저마다 다른 사람이니 저마다 다른 눈길로 바라보고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있지요, 우리도 저마다 님이 아닐까요? 우리 스스로 잊어버리고 만 님이 아닐는지요? 우리는 스스로 잊은 님인 터라, 우리 스스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길을 걸으며 어떤 꿈을 펼치려던 님인가를 알아차려서 환하게 피어나려고 살아가는 숨결이리라고 느낍니다. 다시 말해서 님이 아닌 사람은 없지 싶어요. 이를테면 시샘하는 님도, 사랑하는 님도, 힘센 님도, 여린 님도 있어, 갖은 님이 어우러지는 별입니다. ㅅㄴㄹ



“아무튼 내가 무슨 신인지 알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일단 쪽지시험 준비나 할까?” “것 봐, 안 믿잖아.”


“죄송해요! 신한테 건방진 소리를 해서!” “당신도 신인걸요, 유리에 님.” (70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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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니스 1
오시미 슈조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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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시렁 128


《해피니스 1》

 오시미 슈조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17.3.25.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어버이는 아이 한살림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 아이들 스스로 학교살림을 이야기하지 않거나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면, 어버이는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거나 겪거나 느끼거나 생각하는가를 잘못 짚을 수 있어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따돌리거나 따돌림을 받는 줄 어버이가 언제 어떻게 알아챌 수 있을까요? 이를 알아챈 뒤에 ‘따돌리는 아이’나 ‘따돌림받는 아이’를 어버이는 어떻게 돌볼까요? 《해피니스》 첫걸음에는 몇 갈래 사람이 나옵니다. 밤에 나타나 갑자기 아무한테나 뛰어들어 목을 깨물어 피를 빨아먹으면서 사는 사람, 학교에서 또래한테 따돌림받으면서 돈을 빼앗기고 맞는 아이 둘, 또래를 따돌리고 돈을 빼앗으며 때리는 아이 여럿, 따돌림질을 일삼는 아이하고 시시덕거리는 아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거나 말거나 딴청하는 아이, 학교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는 아이 ……. 하나하나 살피면 모두 기쁜 사랑을 받고 태어났을 아이입니다. 그러나 처음에 태어나는 날부터 기쁜 사랑을 못 받았을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꼬인지 모르지만, 꼬인 삶이로구나 느낀 아이는 이 생각대로 ‘꼬인 길’을 걸으며 꼬인 생각을 안 바꾸려 합니다. 그렇지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된다면 바꿀까요? ㅅㄴㄹ



“그런데, 열 받네.” “응?” “널 공격한 녀석 말이야.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거야. 용서할 수 없어.” (50쪽)


“여긴 사람이 오지 않아서, 쉬는 시간이면 늘 여기서 하늘을 보죠. 머리가 복잡할 때는, 계속 하늘을 보고 있으면 편해져요.” (144∼145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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