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새하고 사귀는 첫걸음 : 새하고 사귀는 첫걸음은 먼저 새를 가만히 바라보기. 다음은 새가 가까이 내려앉을 적에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서 기다리기. 사진기를 먼저 쥐어서 찍으려 하기보다는 두 눈으로 오래오래 지켜보면서 마음으로 담고, 마음으로 말을 걸기. 이러고 나서 새 도감을 펼쳐서 이름을 알아보기도 하고, 그림을 그린다면 한결 가까이 지낼 수 있다. 2019.11.14.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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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 전쟁무기나 군대 아닌 무엇으로 평화를 지키거나 가꾸냐고 물을 적에 언제나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 같이 모여 뜨개질을 하고, 함께 모여 그림을 그리고, 서로 모여 맨손으로 숲을 거닐거나 밭을 일구고, 이렇게 하는 동안 시나브로 평화를 이루리라. 2019.11.1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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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 : 학교에서는 글을 그냥 읽지 말라고, ‘행간(行間)’을 읽으라 가르치더라. 그러면 행간이 뭔가? 이 일본스러운 한자말은 무엇을 알려줄까? 아마 그 어느 것도 알려주지 못하리라. 우리가 쓰는 말이 아니라, 일본스러운 지식을 펴는 말일 수밖에 없으니까. 바탕뜻은 “줄 사이”인 행간일 텐데, 둘쨋뜻은 “숨은 뜻”이라고 한다. “줄 사이”이든 “숨은 뜻”이든 뭔 소리일까? 겉으로 적힌 글씨에 휘둘리거나 속거나 눈을 두지 말라는 소리이다. 그러면 뭘 읽으라는 소리일까? 오직 하나, 글씨에 담은 글쓴이 마음이며 생각이며 삶이며 살림이며 사랑이며 숨결이며 넋이며 빛이며 어둠이며 시샘이며 미움이며 바보짓이며 기쁨이며 슬픔이며 노래이며 멍울이며 생채기이며 아픔이며 신바람이며 꿈이며, 이런 여러 가지를 읽으라는 소리이다. 그러면 왜 처음부터 이렇게 말을 않고 ‘행간’이라는 일본스러운 말을 버젓이 쓸까? 사람들이 누구나 ‘읽기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쉽게 바로 알아차리면, 온누리를 휘감은 거짓껍데기가 이내 들통이 나겠지. 그렇다고 아예 안 짚거나 안 가르칠 수는 없으니, 학교교육과 독서교육이란 틀에서는 살짝 맛보기처럼 짚고서 지나가고 만다. 이러면서 학교교육이나 독서교육이 뭘 하는가? 학교교육에서는 시험을 치르면서 ‘속읽기(행간 읽기)’하고 동떨어진 길을 간다. 독서교육에서는 ‘독후감 쓰기’란 이름으로 그저 줄거리만 줄줄 꿰도록 내몬다. 글마다 서린 속내는 다 다르게 읽을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시험점수로 평가를 하고 독후감으로 잘라낼 수 있을까? 우리 삶터는 ‘행간·학교교육·독서교육’, 여기에 ‘신문기자·출판평론가·인터넷서점MD’까지 얽힌 거짓수렁에 단단히 잠겨서 못 헤어나오는 꼴이라 할 만하다. 행간이란 말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으나, 이런 말은 그만 내려놓아도 된다. ‘속읽기’를 하면 될 뿐이다. 2005.12.2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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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독법 : 모든 속독법은 거짓말이다. 모든 속독법은 책읽기하고 동떨어진다. 책은 빨리 읽을 까닭도 없지만 느리게 읽을 까닭도 없다. 책을 손에 쥐어서 무언가 얻고 싶다면 ‘줄거리 아닌 사랑’을 얻으면 될 뿐이다. 속독법은 뭔가? 속독법은 책에 흐르는 사랑이 아닌 한낱 줄거리만 빨리 받아먹도록 이끈다. 자, 생각해 보라. 속독법, 이른바 ‘빨리읽기·빨리훑기’를 해내어 백 권이나 천 권이나 만 권에 이르는 책이 어떤 줄거리인가를 알아내면 무엇이 달라질까? 무엇을 배울까? 이렇게 줄거리를 얻은 삶은 어떻게 나아지거나 달라지거나 좋아질까? 자, 스스로 보라. 빨리빨리 읽어내어 줄거리를 꿰찬 이들은 딱히 안 나아지거나 안 달라지거나 안 좋아진다. ‘사랑 아닌 줄거리’를 꿰찼으니까. 그렇다면 느리게 읽어야 하는가? 아니다. 굳이 느릿느릿 읽어야 할 까닭이 없다. 속이 빈 책은 느리게 읽을 수도 없을 만큼 허술하기에 몇 쪽만 넘겨도 모조리 꿰뚫을 수 있다. 텅텅 빈 속을 감추려고 겉을 꾸미거나 글멋을 부리거나 껍데기를 반짝반짝 꾸민 책이라면 더더구나 알맹이가 없기 마련이라, 이런 책은 애써 넘기거나 사지 않더라도 ‘텅 빈 속살’이자 ‘사랑 없이 맹물인 가슴’을 환히 들여다볼 수 있다. 마음을 읽으면 다 알아낸다. 사랑을 읽으려 하면 다 보인다. 마음을 읽으려고 책을 펴 보라. 마음이 없는 책이라면 끝 쪽까지 그냥 후루룩 넘기다가 끝이 난다. 사랑이 없는 책도 이와 같으니, 구태여 속독법 따위를 배우려 하지 말고, 빠르게도 느리게도 읽을 까닭조차 없다. 오직 온마음을 다해서 마주한 다음 그저 마음을 읽고 사랑을 읽으려 하면 된다. 1998.1.6.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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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눈감고 읽자 : 눈을 뜨지 못하면 책을 읽지 못한다고 여기겠지. 맞는 소리이다. 그런데 몸눈만 뜬대서 책을 읽지는 못한다. 마음눈을 떠야 비로소 책을 읽는다. 생각해 보라. ‘글씨읽기 = 책읽기’인가? 아니다. 글씨에 적힌 마음을 읽어야 비로소 책읽기이다. 다시 말해 ‘글씨읽기 ≠ 책읽기’요, ‘마음읽기 = 책읽기’인 얼개이다. 우리는 글쓴이 이름이나 펴낸곳 이름에 안 매이면서 오로지 마음을 읽어야 할 뿐이다. 글쓴이나 펴낸곳 이름이 아무리 높든 낮든 따지지 말 노릇이다. 그저 글씨마다 깃든 속내를 읽고 속뜻을 살피며 속길을 느껴서 우리 살림자리로 받아들이면 넉넉하다. 다시 말해 ‘몸눈은 감고서 책을 읽을’ 수 있다. 두 눈을 살며시 감고서 손바닥에 책을 얹어 보자. 마음눈을 뜨고서 이 책에 서린 기운을 읽어 보자. 몸눈은 가만히 감은 다음, 마음눈을 뜨고서 책을 한 쪽씩 넘겨 보자. 감은 눈으로도 마음을 볼 수 있겠는가? 감은 눈에서 어떤 마음을 느낄 수 있겠는가? 2002.9.1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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