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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마음으로 알았을까 : 마음으로 알았으면 스스로 넉넉하면서 포근한 기운이 돌기 마련이다. 이 마음빛은 몸으로도 조용히 퍼지면서 몸에서 넉넉하면서 포근한 숨결을 깨어나도록 이끈다. 마음으로 알지 않거나 못한다면 스스로 넉넉하면서 포근한 기운이 마음으로 다가와도 못 받아들인다. 마음을 안 열거나 못 열기에 마음빛이 퍼지지 않고, 이러면서 몸은 몸대로 새롭게 깨어나는 길하고 멀어진다. 마음이 먼저 나서지 않고 몸으로만 바란다면 마음은 외려 더 단단히 잠긴다. 몸이 먼저 나서기 앞서까지는 그냥 잠긴 채라 한다면, 몸이 자꾸 먼저 나서려 들면 마음은 단단히 잠길 뿐 아니라, 쇠사슬로 친친 감기기까지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마음으로 무엇을 보고 느끼며 받아들여야 즐거울까? 누가 해줘야 하는 삶일까? 누가 도와줘야 낫는 몸일까?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스스로 일으켜서 깨울 마음빛이 있다. 우리는 참말로 스스로 돕고 스스로 가꾸고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빛이 있다. 초에 불을 당기듯, 그동안 스스로 닫고 잠가 둔 마음을 열면 된다. 스스로 열면 스스로 빛난다. 그리고 스스로 고요하게 긴긴 잠에서 깨어나 활짝 날갯짓을 한다. 보라, 새는 어떻게 날아다니는가? 나비는 어떻게 깨어나는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오로지 스스로 사랑으로 일깨운 몸짓이 되기에 바람을 가른다. 2019.10.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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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돌개바람하고 놀기 : “너, 곧 이 나라에 온다며?” “응? 넌 어느 나라에 사는 누구야?” “난 한국이란 나라에서 사는 숲노래라고 해. 오늘은 고흥 아닌 다른 고장에 나왔어.” “그래, 반갑구나. 네가 사는 나라에서 나한테 말 건 사람은 꽤 오랜만인데?” “어. 내가 고흥을 비운 사이에 네 동무가 찾아와서 비를 흠뻑 뿌렸다더라. 이레쯤 뒤에 네가 온다고 해서 너랑 이야기하고 싶어서 찾아왔어.” “그래? 무슨 일인데?” “넌 네 이름을 어떻게 생각해?” “무슨 이름?” “왜, 사람들이 네가 찾아오면 ‘물폭탄’을 내린다고들 하잖아?” “아, 그 짜증나는 이름! 어쩜 너희는 그러니? 내가 어떻게 폭탄이니? 너희가 나를 폭탄으로 여기니까 너희한테는 그저 폭탄이 되어 줄 수밖에 없어. 그렇잖아? 너희가 나더러 폭탄이 되기를 바라니 나는 기꺼이 폭탄이 되어 주겠다는 말씀이야.” “그렇구나. 그래서 난 너를 그런 이름으로 부르지 않아.” “그래? 그럼 넌 어떻게 부르는데?” “이 나라에는 예부터 함박꽃이라는 꽃이 있어. 그 함박꽃은 매우 크고 아름답고 향긋한데, 겨울에 오는 눈을 놓고서 함박눈이라고도 해.” “그 이름 좋네.” “그래서 나는 네가 이끌고 잔뜩 베푸는 비를 놓고서 ‘함박비’라는 이름을 붙여서 이야기하고 싶어.” “아, 함박비! 좋은걸!” “그렇지만, 난 네가 이레 뒤에 찾아올 적에 네가 베풀 함박비 말고 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 “뭘?” “나는 돌개바람, 또는 회오리바람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는 네가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멋진 구름인 줄 알아.” “그래, 우리가 구름으로 그림을 멋지게 그리지. 그런데 너희들은 내가 아무리 하늘에 멋지게 구름 그림을 그려도 안 쳐다보더라.” “다른 사람은 이야기하지 말아 주지 않겠니? 난 너랑 이야기하는걸.” “아차, 그렇지. 미안해.”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너하고 이야기할 줄 다 알았는데 다 잊었을 뿐이야,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아니 아니. 그런데 넌 어디에 사니?” “아까 말했을 텐데? 난 고흥이란 고장에 살고, 우리 집에서 살아.” “그 ‘우리 집’이 어디야?” “고흥에서 도화면이란 데가 있고, 동백마을이란 데에서도 후박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란, 또 뒤꼍에 뽕나무랑 모과나무랑 매화나무랑 유자나무랑 석류나무랑 감나무랑 흰민들레랑 온갖 푸나무가 어우러진 조그마한 보금자리이지.” “그래, 너희 보금자리를 잘 알아두겠어. 고마워.” “그런데, 내가 너한테 말을 건 까닭은 하나야. 난 너한테 마음으로 찾아가서 말을 걸 수 있고, 참말로 말을 걸고 싶어. 네가 비를 뿌리고 싶다면 비를, 네가 바람을 날리고 싶다면 바람을, 네가 구름을 그리고 싶다면 구름을, 모두 오롯이 마주하고 싶어. 다만, 내가 고흥에 있을 때 그렇게 해주면 좋겠어.” “그래그래. 그러면 너한테는 구름 그림을 보여주지.” “그래도 될까?” “뭐 어때. 그리고 너희 보금자리 언저리만 그럴 테고, 다른 곳은 그러지 않겠어.” “왜?” “왜냐니? 너도 듣잖아?” “뭘?” “네가 사는 그 마을에도 방송이 나오더군. 내(태풍)가 찾아가면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고 방송이 흐르던데?” “아, 군청이란 데에서 날마다 숱하게 내보내는 그 방송?” “그래. 그 방송대로 너희 보금자리를 뺀 다른 곳에는 너희들 사람이 바라는 그 말대로 ‘막대한 피해’를 입혀 주지. 그리고 네가 사는 그곳에는 구름 그림을 보여주고.” “왜? 왜 그렇게 가르는데?” “왜냐니? 너희가 나한테 그걸 바라잖아? 넌 나한테 구름 그림을 바라고, 딴 녀석은 물폭탄을 바라고, 딴 녀석은 막대한 피해를 바라지. 나한테 바라는 그대로 주고 싶을 뿐이야.” “아, 그래. 그렇구나. 알았어. 아무튼 난 네가 보여줄 엄청난 구름 그림을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볼게.” 2019.10.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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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이야 장난 : 곁님이 읽고 싶다는 책이 있어서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살 수 없다. 그러나 요새는 ‘아마존’이 있다. 나는 우리 곁님 ‘때문’에 아마존에서 책을 사는 길을 익혔다. 매우 즐겁게 영어를 배우는 길이기도 했다. 아무튼, 아마존에서 영어로 이모저모 읽고 훑으며 영어로 된 책을 한 자락 장만하려 하는데, 이 책을 파는 곳에 있다는 다른 책이 눈에 뜨여서 네 자락쯤 같이 시켰다. 그런데 막상 ‘곁님이 읽고 싶다’고 해서 시킨 책은 안 올 뿐 아니라, 같은 책집에서 네 가지 책을 다 다른 날에 하나씩 따로 보내었다. 왜? 아니 왜? 하나로 묶어서 보내면 되지 않아? 왜 이래야 해? 정작 시킨 책은 아직도 안 오는데, 문득 마음으로 어떤 소리가 흐른다. “킬킬킬.” “뭐야? 왜 웃어?” “장난이야, 장난.” “무슨 장난?” “네가 바라고 기다리는 책이 안 오는 그거.” “뭣?” “그러니까 장난이라고.” “아아, 왜 장난을 치는데?” “그냥. 장난을 치고 싶으니 장난을 치지, 뭐.” “…….” “장난을 치는데 무슨 까닭이 있나? 그냥 놀려고 장난을 치지.” 으그그그, 장난이요 놀이라고 하는데 무슨 할 말이 더 있나. 그러려니 하고 여기면서 마음소리를 뚝 끊는다. 2019.10.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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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대로 : 누구나 그이 눈높이(수준)대로 잘한다. 그리고 누구나 그이 눈높이대로 못한다. 언뜻 보면 잘하는 듯도 하고 못하는 듯도 하지만,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모습이다. 늘 그이 눈높이대로 할 뿐이다. 그러니 누구나 하는, ‘우리 눈높이대로 하면서 나아가는 삶’을 보다가 옆에서 북치거나 장구치거나 할 까닭은 없다. 더 잘하지도 않도 더 못하지도 않으니까. 2019.9.2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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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장 또는 자격증 : 졸업장을 따니까 다른 졸업장을 따려고 학교에 더 들어간다. 자격증을 따니까 새로운 자격증을 따려고 학원에 더 들어간다. 졸업장으로 돈을 벌거나 이름을 얻기에, 새로운 졸업장을 얻어서 돈이나 이름을 더 얻으려고 한다. 자격증으로 돈이며 이름을 누리기에, 새로운 자격증을 보태어 돈이며 이름이며 더 보태려고 한다. 이러한 길, 졸업장 길이나 자격증 길은 나쁘지 않다. 그저 졸업장이나 자격증으로 여기에 있는 모습일 뿐이다.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코앞에 둔 자리에서 생각해 볼 노릇이다. 배우려고 학교에 다녔는가? 일을 하려고 솜씨를 갈고닦았는가? 졸업장을 밝히면서 살기에 잘 배운 티가 나는가? 자격증을 드러내며 일하기에 솜씨가 빛나는가? 아이들이 슬기롭게 배우기를 바라면서 학교에 넣는가, 아니면 아이가 졸업장을 거머쥐어 이 졸업장 힘으로 돈이랑 이름을 얻기를 바라는가? 아이들이 솜씨좋게 제 길을 찾기를 바라면서 자격증을 따라 이끄는가, 아니면 아이가 자격증을 내세우며 이 자격증 힘으로 돈하고 이름을 가볍게 거두기를 바라는가? 학교를 잘 다녀야 하지 않는다. 연수모임이나 배움마당을 잘 마쳐야 하지 않는다. 예배나 기도를 잘 해야 하지 않는다. 격식이나 예의를 차려야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새해에 하는 절도 대단히 엉성하지만, 마음으로 절을 하기에 아이들한테서 절을 받는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함박웃음을 짓고 기쁨을 스스로 일으킨다. 아이가 빈틈없이 절을 하거나, 아이가 띄어쓰기하고 맞춤법을 빈틈없이 맞추어 글월을 적어야 할머니 할아버지가 반길까? 격식하고 예의를 차린 아이를 마주하기에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함박웃음을 피울까? 온통 졸업장 판에 자격증 물결로 이 나라를 뒤덮는다면, 고작 대학 졸업장하고 기술 자격증으로 일자리하고 돈벌이를 가른다면, 우리 스스로 배우거나 익히거나 살아내거나 살림하거나 사랑하는 길하고는 차츰 등지는 셈이다. 빼어난 스승 곁에 있었기에 춤을 잘 추거나 노래를 잘 부르거나 명상을 잘 하지 않는다.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익혀서 스스로 살아내고 스스로 살림을 짓는 걸음으로 스스로 사랑하니 무엇이든 스스로 즐겁게 하는 동안 어느새 솜씨가 꽃으로 피어난다. 아이한테 졸업장이 아닌 마음을 두 손에 담도록 이야기하면 된다. 아이한테 책읽기 느낌글을 쓰라 시키지 말고, 꽃하고 말을 섞도록 가만히 보듬으면서 나무랑 풀벌레하고도 도란도란 수다꽃을 피우도록 북돋우면 된다. “임무 완수”나 “행사를 무사히 종료”하는 일이란 없다. 아니, 이렇게 하기를 바라면 언제까지나 쳇바퀴를 돌면 되겠지. 쳇바퀴 아닌 삶을 바라고 사랑을 꿈꾼다면, 모든 격식하고 예의를 오롯이 ‘꿈’하고 ‘사랑’으로 나아가도록 바꾸어 주면 된다. 격식은 격식일 뿐, 꿈이 아니다. 예의는 예의에서 맴돌 뿐, 사랑이 아니다. 아이가 꿈을 스스로 그리고 사랑을 스스로 펴기를 바라는가? 꿈이기에 비로소 ‘격식다운 격식’이 되고, 사랑이기에 바야흐로 ‘예의다운 예의’가 된다. ‘꿈·사랑’이라는 낱말은 모든 격식하고 예의가 밑바탕에 있다. 밑바탕에 다 있는 꿈하고 사랑을 등진 채, 겉껍데기인 졸업장과 자격증과 격식과 예의에 매달리는 오늘이라면, 이 오늘이 얼마나 따분할까. 따분한 오늘이 좋다면 따분하게 살면 되지. 새로우면서 싱그럽게 춤추고 노래하여 스스로 웃음꽃이 되기를 꿈꾼다면,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려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면 되지. 돈을 움켜쥔 이도 하늘나라 문턱에조차 못 가지만, 졸업장하고 자격증을 거머쥔 이는 하늘나라 문턱은커녕 문턱이 어디에 있는지마저 못 보고, 툭하면 아무 데에서나 걸려넘어진다. 2019.9.2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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