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하고 시골길 걷기
 [고흥살이 1] 볕살 따가운 한낮에



 아침을 먹고 나서 바깥마실을 하기로 합니다. 나는 새 보금자리 손질하랴 집일을 하랴 눈코 뜰 사이가 없지만, 아무리 집에서 할 일이 많더라도 아이들이 새 보금자리로 왔는데 바깥마실을 못하며 지낸다면 너무 갑갑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엊그제에는 둘째가 새근새근 잠든 동안 옆지기가 첫째 아이를 데리고 두 시간 즈음 바깥마실을 다녔습니다. 둘째가 깰까 조마조마하기도 했지만, 둘째는 고맙게 새근새근 잠을 잤고, 나중에 잠을 깰 무렵에는 집일하던 일손을 살짝 멈추고 아이하고 놀며 쉬었습니다.

 새 보금자리로 모든 짐을 옮기지 못했습니다. 아직 끝방을 다 못 치웠고, 책짐을 풀어놓을 옛 흥양초등학교 빈 교실 네 칸을 못 치웠어요. 책 놓을 자리는 책이 들어온 다음에 부랴부랴 치우며 책을 갈무리할 수 있다지만, 집살림을 마저 들일 끝방을 못 치우면 일이 안 되니까 마음만 바쁩니다.

 내 집이라는 곳을 얻었다는 느낌을 아직 제대로 모릅니다. 벽종이를 바르면서 벽종이를 어떻게 발라야 하는 줄 떠올리지 못합니다. 어설프고 어수룩하게 벽종이를 바르다가 뒤늦게 깨우칩니다. 뒤늦게 깨우친 대로 벽종이를 바르니 구김살이나 뜬 데가 없이 말끔합니다. 내 어린 날, 어머니랑 형이랑 벽종이를 바를 때에도 이렇게 했을 텐데, 왜 그때 일을 옳게 되새기지 못할까요. 마음이 바쁘대서 일이 잘 풀릴 수 없는데, 왜 이리 서두를까요.

 시월 삼십 날인데 볕살이 퍽 따갑습니다. 방온도는 25도이고 바깥은 더 따뜻하니까,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날씨는 27도는 넘으리라 생각합니다. 갓난쟁이 둘째를 안고 걷자니 땀이 솔솔 납니다. 지난 한 해를 머물던 충청북도 멧골자락을 헤아리니, 남녘이 참 따뜻하기는 따뜻하고, 멧자락에 깃든 시골집은 춥기는 춥구나 싶어요.

 옆지기는 멧등성이 타는 길을 못 찾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직 안 가 본 길을 가면 멧등성이 타는 데가 나올 수 있겠지요. 밭뙈기를 따라 멧길을 찾다 보면 으레 무덤만 나온답니다. 척 보기에도 멧기슭 따라 볕 잘 드는 자리에 무덤이 꽤 많습니다. 예부터 뿌리내린 이곳 사람들 무덤입니다. 흙을 일구며 흙하고 살아온 사람들 마지막 쉼터입니다.

 나는 반바지를 입고 옆지기랑 첫째 아이는 긴바지를 입습니다. 들풀 아직 우거진 멧길을 따라 걷자니 풀씨가 긴바지에 잔뜩 달라붙습니다. 따갑습니다. 이 멧길을 오르자면 낫을 들고 와서 풀을 베야 할까 싶어요. 한참 아이를 업고 멧길을 오르니, 끝자락에는 어김없이 무덤이 나타납니다. 이 무덤을 따라 더 올라가면 또다른 무덤이 나올까요. 낯모르는 분들 무덤가에 돗자리 깔고 앉아서 해바라기하며 쉬기에는 멋쩍을까 싶지만, 다리쉼을 하거나 그늘쉼을 하며 지나가는 일은 괜찮겠지요.

 오늘은 첫째 아이가 많이 졸려 하고, 둘째 아이도 업힌 채 잠들어 일찍 내려오기로 합니다. 다음에는 더 깊이 들어서며 다른 멧길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멧자락 따라 마련한 마을밭은 둑이 꽤 높습니다. 멧길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지나가는 밭둑은 어른 키보다 훨씬 높아 하나도 안 보입니다. 숨은 길 찾는 놀이를 할 만합니다.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밭둑을 높였을까요. 꼭 굴길을 낸 듯한 거님길이에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나무밭을 스칩니다. 짧은 대나무 조각 있어 살짝 줍습니다. 첫째 아이한테 좋은 놀잇감이 됩니다. 대나무 막대기 든 아이는 씩씩하게 앞장서서 걷습니다. 멧길을 업고 오르내렸더니 몸이 좀 나아졌나 봐요. (4344.10.3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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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많은 별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밤하늘 별을 얼마나 자주 느끼거나 올려다볼까.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하루일을 열지만 저녁에는 일찍 잠자리에 드는 시골사람이라 할 텐데, 시골자락 밤하늘 별빛을 얼마나 널리 받아들이면서 살아갈까.

 지난날 시골자락에는 정화조가 없었다. 시골집에는 정화조가 있을 까닭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시골집에 정화조를 묻지 않으면 건축법 위반이 되고, 땅을 파서 물을 길어 마시는 시골집에 수도물을 끌어들여 물값을 내도록 나라 얼거리가 바뀐다.

 뒷간이 바깥에 있는 시골집은 쉬를 누러 저녁이나 밤에 바깥으로 나가면서 밤하늘 별을 누릴 수 있다. 옆지기와 나는 바깥에서 쉬를 누면서 한동안 기지개를 켠다. 한동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두루 돌아본다.

 썩 높지 않아도 멧자락에 둘러싸여 하늘을 조금밖에 올려다볼 수 없던 충청북도 시골집에서는 별을 얼마 누리지 못했다. 자그마한 마을 뒤편에 멧등성이 둥그렇게 감싼 전라남도 시골집에서는 고개를 들고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 돌며 수많은 별을 한가득 누린다. 깊은 새벽에 쉬를 누고 나서 혼자 신을 내며 별밤 춤을 춘다. (4344.10.2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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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결 소리


 외할아버지가 모는 짐차를 타고 온 식구가 발포 바닷가로 간다. 저녁해가 기울며 날은 조금씩 어두워진다. 땅거미 내려앉는 바닷가에 내리니 비로소 물결 소리가 들린다. 자동차를 달릴 때에는 바다를 눈으로 보기만 할 뿐, 바다 내음이나 바다 소리를 맞이하지 못한다. 자동차에서 내려 바다를 바라보니 비로소 바다 내음과 바다 소리가 몰려든다.

 물결은 높게 일지 않는다. 여느 물결이다. 여느 물결이지만 모래밭으로 부딪는 소리가 쏴아쏴아 제법 크다. 바닷물은 그닥 차지 않고, 소금 내음은 얼마 나지 않는다. 갓난쟁이 둘째를 안고 모래밭을 맨발로 밟으며 바닷물 무릎까지 일렁이는 데까지 걷는다. 첫째는 바닷물에 몸을 담근 적이 있으나 물결 소리를 듣기는 처음이다. 둘째는 바닷물도 바다 소리도 처음이다. 두 아이는 나중에 크면 스스로 자전거를 몰아 바닷가로 헤엄치러 나올 수 있을까. 아니면 버스를 타고 바닷가를 다녀올 수 있을까.

 선선한 바람이 살랑이는 발포 바닷가를 우리 식구들이 마음껏 누린다. 시월 끝무렵 사람들 발길이 없는 발포 바닷가 높푸른 하늘과 맑은 물결과 싱그러운 바람을 실컷 얼싸안는다. (4344.10.2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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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날밤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신호리 동백마을 자그마한 집에서 첫날밤을 보냈고 이틀째 밤을 보낸다. 해야 할 일이 그득그득하기에 첫밤을 지새우면서도 첫밤인 줄을 느끼지 못하고 말았다. 툇마루에 낸 샤시문이 있어 방문을 열고 자도 괜찮다. 남녘 바닷가에 자리한 시골집은 시골이면서도 십일월이 코앞인데 그닥 춥지 않다. 밤하늘 별을 느끼고 이른새벽 동을 느낀다.

 풀밭에는 메뚜기와 여치가 아직 눈에 뜨인다. 길가에는 개구리가 펄떡펄떡 뛴다. 겨울이 추운 데에서는 풀벌레가 한해살이를 마치고 개구리는 땅속으로 파고든다지만, 겨울이 따스한 데에서는 풀벌레가 얼마나 오래 살아갈까. 돌이켜보니, 국민학교 자연 수업에서 ‘겨울 따스한 데에서 벌레와 개구리가 어떻게 지내는가’를 가르친 적이 없구나 싶다. 그저 겨울이면 다 죽거나 겨울잠을 잔다고만 가르쳤구나.

 시골 아이들은 교과서로 배울 때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남녘 바닷가 아이들은 자연 교과서를 배우면서 무슨 마음을 품었을까. 늘 곁에서 보는 자연하고는 동떨어질 뿐 아니라 언제나 둘레에 펼쳐진 자연을 제대로 담지 못한 교과서를 달달 외워야 더 커다란 학교로 들어갈 수 있는데, 시골마을 아이들은 학교교육을 어떻게 느꼈을까.

 고칠 곳과 손볼 것이 가득한 시골집에서 참 달콤하게 잠을 잔다. 이 빈집에서 할머니 한 분이 홀로 살다가 숨을 거두셨다는데, 할머니는 날마다 밤에 어떤 마음으로 잠이 들고 새벽에는 어떤 마음으로 잠을 깨셨을까. 할머니에 앞서 이 터에서 살던 숱한 사람들은 날마다 어떤 삶을 일구었을까. 날이 갈수록 쓰레기가 늘어 땅에 파묻거나 불을 놓아 태워야 하는 일이 잦은데,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자라고 이 아이들이 저희 아이를 낳아 이 터에서 살아간다 할 때에는 쓰레기를 어떡해야 할까. 아스라이 먼 예전 사람들은 쓰레기 걱정 교육 걱정 돈벌이 걱정 경제발전 걱정 대통령선거 걱정 교통 걱정 따위는 안 하고 살았을 텐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식구는 무슨 걱정을 해야 하나. 무슨 생각을 품으며 어떤 사랑을 꽃피워야 하나.

 옆지기 아버님과 어머님이 여러 날 함께 지내시는 커다란 사랑을 받아 이 조그마한 집에 온갖 사랑이 흐드러지게 넘친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서 저희끼리 제금을 난다 할 때에 아버지로서 이 아이들과 이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가를 곰곰이 돌아본다. (4344.10.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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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0-23 12:40   좋아요 0 | URL
전라남도 고흥. 멀리 가셨군요. 새로운 장소에서 고운 꿈 펼치시길 바래요.
새 보금자리도 그렇고, 두 아이도 그렇고, 한참 손길이 많이 필요한 시기일텐데, 잘 해나가시리라 믿습니다. 그 시기가 영원히 계속되진 않으니까요.

숲노래 2011-10-24 07:16   좋아요 0 | URL
얼른 집 손질을 마치고
아이들하고 따순 손길을 나눌 수 있어야 할 텐데
오래 빈 집이고
비기 앞서 할머니 혼자 지내시느라
이래저래 다치거나 헌 자리가 많아서
품이 많이 들어요.

그렇지만 이 좋은 터를
예쁘게 잘 사랑하고 싶어요~ ^^
 

 


 서숙


 서숙을 바라본다. 고흥군 군내버스를 타고 이 마을과 저 마을 사이로 달리면서 서숙을 바라본다. 달리는 버스에서는 눈짓으로 스친다. 나한테 땅이 있어 흙을 일군다면 서숙을 심어 이 어여쁜 곡식을 날마다 들여다보면서 좋아할 수 있겠지. 나한테 땅이 없지만 이렇게 흙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웃이 있는 만큼, 시골버스로 달리며 서숙밭을 즐기다가는, 천천히 시골길을 두 다리로 걷는 동안 노오란 들판을 멀리까지 내다보면서 기쁘게 사진 한 장으로 담는다. (4344.10.1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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