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생각
― 사진 다섯 (4346.4.14.해.ㅎㄲㅅㄱ)

 


돈 많은 사람이
꽃을 더 잘 읽거나
풀을 더 잘 아끼거나
나무를 더 잘 보듬거나
숲을 더 잘 사랑한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이름 높은 사람이
오솔길 잘 알거나
골목길 잘 다니거나
시골길 잘 걷거나
구름길 잘 바라본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힘 센 사람이
어린이 따숩게 안거나
푸름이 곱게 돌보거나
이웃 살가이 아끼거나
어깨동무 길동무 사쉰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마음 넉넉한 사람이
꽃을 넉넉히 읽어요.

 

마음 착한 사람이
시골길 착하게 걸어요.

 

마음 고운 사람이
어깨동무 곱게 해요.

 

사진은 마음으로 찍지요.
글은 마음으로 쓰지요.
그림은 마음으로 그리지요.

 

마음을 가꾸는 사람이 가멸고,
마음을 보듬는 사람이 예쁘며,
마음을 지키는 사람이 빛나요.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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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쓰기
― 필름스캐너 바꾸기

 


  2001년부터 스캐너를 썼습니다. 처음에는 십오만 원 즈음 하는 아주 값싼 스캐너를 썼습니다. 처음 장만한 스캐너는 책 겉그림 긁는 데에도 품이 제법 들었습니다. 돈을 푼푼이 그러모아 2002년에 이십오만 원 즈음 하는 스캐너로 한 번 바꾸었고, 다시 돈을 푼푼이 그러모아 2003년에 사십오만 원 즈음 하는 스캐너로 다시 바꾸었으며, 이번에는 적금을 깨서 2004년에 칠십오만 원 즈음 하는 필름스캐너를 장만했습니다.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해상도와 성능 나은 스캐너를 장만해서 쓸 때마다 생각했어요. ‘아아아, 예전에 장만한 스캐너로 긁은 사진은 몽땅 다시 긁어야겠구나.’ 하고요. 2004년에 필름스캐너를 장만해서 필름으로 사진파일 만들 적에는 이런 생각이 더욱 짙었어요. 그런데 필름스캐너를 갓 쓰던 때에는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해상도를 얼마쯤 맞추어야 하는가를 옳게 가누지 못했어요. 2007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필름스캐너를 제법 잘 다루었고, 이때 다시금 ‘이런이런, 필름스캐너 처음 쓰던 때에 긁은 필름은 모두 다시 긁어야겠네.’ 하고 느꼈어요.


  그런데, 2004년을 끝으로 필름스캐너가 더는 새로 안 나옵니다. 이제 디지털사진이 차츰 자리를 잡고, 필름사진은 한풀 꺾이면서, 필름스캐너 만드는 회사는 애써 이런 물건 만들어야 팔기 힘들었겠지요. 이리하여 2004년에 장만한 필름스캐너를 2013년 4월 첫머리까지 써요. 자그마치 열 해나 같은 필름스캐너를 씁니다. 필름스캐너 만드는 회사에서 더는 새 물건 만들지 않다 보니, 또 필름스캐너를 더는 안 팔다 보니, 나도 어쩌는 수 없이 유리판 낡고 많이 긁힌 필름스캐너를 그대로 썼어요.


  어쩌는 수 없지 않느냐 하고 여기며 쓰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중고장터를 알아봅니다. 내가 쓰는 캐논9900F를 다시 살 수 있나 알아봅니다. 이 스캐너를 장만했다가 고이 묵힌 분이 매우 드뭅니다. 좀처럼 다시 사기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캐논9950F를 장만했다가 고이 묵힌 분을 만납니다. 내 스캐너보다 살짝 성능 나은 녀석입니다. 게다가, 이 필름스캐너를 고이 묵힌 분은 고작 이십만 원에 이 물건을 내놓습니다. 다만, 중고장터에 이 물건 올린 지 반해가 지났어요. 아무렴, 팔렸겠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그래도 궁금해서 쪽글을 보냈지요. 하루 지나서 답글이 와요. 아직 안 팔렸다고. 반가운 나머지 제가 그 물건 사고 싶다며 쪽글을 보냈고, 그분은 제가 필름스캐너 사겠다면 십삼만 원만 받겠다 얘기합니다. 2004년에 팔십만 원 가까이 하던 필름스캐너인데 2013년에 고작 이십만 원조차 아닌 십삼만 원이라니. 이렇게 값싸게, 게다가 포장조차 안 뜯은 필름스캐너라니.


  물건을 받고 이틀 지난 뒤, 옛 필름스캐너 떼고 새 필름스캐너 붙입니다. 물건 받자마자 새로 붙이고 싶었으나, 조금 두려운 마음 있어서 이틀 기다렸어요.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필름 한 장 처음으로 긁습니다. 깜짝 놀랍니다. 한 장 더 긁습니다. 더 깜짝 놀랍니다. 아주 큰일났다고 느낍니다. 내가 열 해 동안 쓰던 필름스캐너 캐논9900F가 낮은 사양이나 해상도가 아닙니다만, 게다가 나는 해상도를 가장 높여 필름을 긁었습니다만, 열 해 동안 쓰던 필름스캐너로 긁은 필름 가운데 요 몇 해 사이에 긁은 필름은 모조리 새로 긁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똑같은 필름을 긁은 사진이 너무 뚜렷하게 질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2001년부터 2004년 사이에 해마다 스캐너를 바꾼 까닭은 스캐너도 소모품이로구나 하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한 해 즈음 쓰면 ‘어쩐지 사진 느낌이 많이 바래는걸’ 하고 느꼈어요. 2005년부터 이제껏 새 필름스캐너 장만하지 못한 까닭은 2004년을 끝으로 더 높은 사양으로 새 필름스캐너 안 나온 까닭이고, 그나마 2004년에 만든 필름스캐너조차 장터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에요.


  엊그제 새로 장만한 필름스캐너 잘 아끼며 써야지요. 그리고 중고장터를 더 살펴, 이 필름스캐너 고이 묵힌 분 또 있다면, 한두 해에 한 번쯤 다시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필름스캐너 값이 얼마가 들든, 애써 필름으로 찍은 사진을 파일로 옳게 바꾸지 못한다면, 필름스캐너 있으나 마나요, 필름 한 장 긁느라 3분이라는 시간 들인 품이 모두 도루묵 되고 말아요(필름 한 장 긁는 데에 3분이니, 서른여섯 장 모두 긁자면 108분, 곧 한 시간 반입니다). 필름스캐너 하나 바꾸며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내가 필름사진을 엉터리로 찍어서 이런 사진 나오지는 않았구나. 내 필름사진을 믿자. 필름스캐너 한 대를 너무 오랫동안 쓰느라 이 기계가 매우 지친 탓에 필름을 옳게 못 긁었구나. 아무리 기계라지만 지나치게 오래 굴려서는 안 되는구나. 내가 쓰는 디지털사진기도 거울상자 많이 다치고 낡았으니, 이제 새 기종으로 바꿀 때가 한참 지나고도 한참 지났구나.’


  그나저나, 또 무슨 돈으로 디지털사진기를 새로 바꿀 수 있으려나요. 나는 값싼 캐논450D를 아직도 쓰는데(제가 쓰던 기계는 더는 쓸 수 없겠다 여겨 형이 쓰던 사진기를 빌려서 쓰지만, 이 사진기도 오랫동안 많이 써서 요즈음 여러모로 애먹습니다), 어떤 디지털사진기로 바꾸어야 할까요. 캐논450D보다 사양과 성능 나은 다른 디지털사진기를 고이 묵힌 채 무척 값싸게 나한테 팔아 줄 놀라운 분이 나타날 수 있을까요.


  글을 쓸 적에 연필과 공책을 틈틈이 새로 장만하듯, 사진을 찍을 적에는 사진기와 필름스캐너를 틈틈이 새로 장만할 노릇이겠지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연필과 공책 장만하는 데에 돈을 아끼지 말 노릇이요,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사진기와 필름스캐너 장만하는 데에 돈을 아끼지 말 노릇입니다. 다만, 사진장비는 돈이 퍽 많이 듭니다. 한참 망설입니다. 한참 망설이다가, 그만 애써 찍은 필름 제대로 못 건사하고, 애써 찍은 디지털파일에 티끌이 자꾸 깃듭니다.


  《뱅뱅클럽》이라는 책 떠올립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보도사진 찍은 분들은 총알 빗발치는 싸움터에서 살아남으며 사진을 찍는데, 이들은 셔터막에 구멍이 났어도 돈이 없어 새 기계로 바꾸지 못하고, 구멍난 데가 티나지 않게끔 사진구도를 잡으며 사진을 찍었다고 해요. 어쩌면 나도 이분들하고 똑같은 매무새로 ‘거울상자 생채기’ 티끌이 잘 안 드러나게끔 사진구도 잡아서 찍는다 할 수 있어요. 참 쉽지 않고, 참 만만하지 않습니다. 4346.4.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새 필름스캐너로 긁은 필름파일.

 

 

예전 필름스캐너로 긁은 필름파일. 아아아... 이게 뭡니까...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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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쓰기
― 어떤 사진을 보여주는가

 


  나는 필름사진을 찍을 적에 ‘한 가지 모습에 한 장 찍기’를 합니다. 필름사진 처음 찍던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필름사진을 찍습니다. 똑같은 자리에 서서 수없이 단추를 누르지 않아요.


  예전에는 필름값이 그다지 안 비싸다 했더라도, 필름은 쓰면 쓸수록 돈이 나가니, 섣불리 또 찍고 다시 찍지 못했다 할 수 있지만, 꼭 필름값 때문에 ‘한 가지 모습에 한 장 찍기’를 하지는 않았어요. 한 가지 모습은 꼭 한 장으로 보여주면 될 뿐, 굳이 두 장 석 장 열 장 스무 장 찍어대어서 이 가운데 하나 골라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어요. 처음 사진을 찍을 때부터 ‘가장 옹글며 아름답고 빛나는 한 장’이 되도록 마음을 가다듬고 눈썰미를 추스를 노릇이라고 여겼어요.


  필름사진 찍다가 ‘아차, 흔들렸구나’ 하고 느끼면 다시 찍기는 하지만, 다시 찍되, 앞서 찍은 틀(구도)로 다시 찍지 않습니다. 반 걸음이든 반반 걸음이든 반반반 걸음이든 살짝 옆으로 움직입니다. 또는 사진기를 조금 옆으로 움직입니다. 가로로 찍다 흔들렸으면 세로로 찍든, 세로로 찍다가 흔들렸으면 가로로 찍든 합니다.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틀로 사진을 찍는 일은 나로서는 하나도 안 내켜요.


  디지털사진을 함께 찍는 요즈음, 나는 디지털사진에서도 이런 매무새를 고스란히 잇습니다. 디지털사진으로도 잇달아 찍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잇달아 찍는 사진은 내 사진답지 못하구나 싶습니다. 여러 장 잇달아 찍고 보면, 이 가운데 가장 나은 사진 나올 수 있지만, 그만큼 사진기 부속품이 닳아요. 부속품이 닳기도 하지만, 찰칵찰칵찰칵 소리 너무 울리는 모습도 달갑지 않아요. 무엇보다, 사진을 찍는 맛과 즐거움이라 한다면, 내가 마음속으로 그리는 사랑스러운 모습이라면 무엇이든 곱다시 담아 나눌 수 있는 데에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 굳이 같은 자리에서 잇달아 찍어 ‘여러 장 가운데 가장 나은 한 장 뽑기’를 하지 않아요.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빛과 결과 무늬를 헤아리며 다 다른 사진을 여럿 얻을 때에 한결 즐거워요.


  깊은 밤 두 아이 토닥토닥 재우고 나서 기지개를 켭니다. 이제 아버지도 아버지 일을 좀 만질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러다가 문득 두 아이 많이 어릴 적 모습이 그립습니다. 작은아이 갓 태어나 처음으로 우리 집 방바닥에 눕혀 재우던 모습을 예전 사진파일 뒤적여 찾아봅니다. 이날 큰아이는 “동생은 왜 이리 작아요? 동생은 왜 이리 잠만 자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더니, 동생 누인 잠자리 곁에서 말끄러미 동생을 바라보다가 “보라야, 잘 자. 엄마젖 많이 먹어.” 하고 얘기해 주었어요. 곁에서 이 아이들 모습 바라보며 사진 몇 장 찍었어요. 큰아이가 동생 바라보는 모습, 문득 아버지 쳐다본 모습, 동생 토닥이는 모습, 동생 포대기 살며시 들춰 얼굴 들여다보는 모습, 다시 포대기 여미고 이 앞에 무릎 꿇고 앉은 모습, 이러다가 빙그레 웃는 모습, 아기 곁에 누운 어머니하고 함께 동생 바라보는 모습 들을 차곡차곡 찍었어요. 이때 나는 거의 같은 자리에서 조용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잇달아 찍지 않았어요. 두 아이 모습 새로운 이야기로 바뀔 때에 한 장씩 찍었습니다. 흔들리면? 흔들리면 할 수 없지요. 나중에 또 오늘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줄 테니, 그때 가서 또 찍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애써 ‘오늘 모든 사진 다 찍겠다’고 생각할 까닭은 없다고 느껴요. 오늘은 오늘 하루만큼 즐겁게 삶 누리며 사진 함께 곁에 두면 되리라 느껴요. 별밤 따사롭게 흐릅니다. 4346.4.1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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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생각
― 사진 넷 (4346.3.30.흙.ㅎㄲㅅㄱ)

 


사진은 눈물.
내 아픈 가시밭길 돌아보면서
내 슬픈 이웃과 동무 눈물밭
하나둘
마주하다가는
떨리는 손 다스려
찰칵
한 장 담는
사진은 눈물.

 

사진은 웃음.
내 기쁜 발자국 되짚으면서
내 반가운 이웃과 동무 웃음밭
하나하나
바라보면서
빙그레 웃음지어
찰칵
한 장 엮는
사진은 웃음.

 

슬프지만
슬프기에
슬픔 다스려
사진기
손에 쥔다.

 

기쁘니까
기쁜 나머지
기쁨 북돋우며
사진기
손에 잡는다.

 

눈물나무 자라 눈물꽃 피운다.
웃음나무 크며 웃음꽃 맺는다.
눈물꽃은 눈물씨앗 되고,
웃음꽃은 웃음열매 되지.
가만히, 살그마니, 곱게.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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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기
― 사진은 어떤 빛을 찍는가

 


  사진은 빛을 찍습니다. 다만, 스스로 느끼는 빛을 찍습니다.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빛까지 담는 사진이란 없습니다. 스스로 느끼지 못하던 빛을 아주 놀랍고 대단한 사진기가 담아 준다 하더라도, 사진 찍는 이 스스로 빛을 못 느끼면, 아무런 이야기 태어나지 못하고 어떠한 사진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빛을 느끼는 사람한테는 숱한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사진이요, 빛을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온갖 빛깔과 무늬와 결이 싱그러이 꿈틀거리도록 북돋우는 사진입니다.
  빛을 느껴요. 예쁜 빛이 아닌, 내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빛을 느껴요. 빛을 생각해요. 아리따운 빛이 아닌, 내 눈길을 맑게 틔우는 빛을 생각해요. 빛을 사랑해요. 사진기로 바라보는 빛이 아닌, 따사로운 꿈과 포근한 삶 바라면서 빛을 사랑해요.


  사진에는 등수가 없어요. 사진에는 1등이나 2등이 없을 뿐더러, 꼴등도 없어요. 왜냐하면, 사진은 고스란히 삶이거든요. 사람들마다 다 다르게 꾸리는 삶이 사람들마다 다 다르게 즐기는 사진이에요. 사람들마다 서로 다르게 누리는 사랑이 사람들마다 서로 다르게 빛내는 사진이에요.


  빛은 나예요. 빛은 남이 아닌 나예요. 내 가슴속에서 찬찬히 타오르는 빛이 고스란히 사진으로 태어나요. 빛은 바로 나이지요. 빛은 남한테서 나오지 않고 바로 나한테서 나와요. 내 마음속에서 시나브로 밝게 타오르는 빛이 곧 사진이 돼요.


  사진은 빛을 담는다고 말한다면, 사진은 내 가슴속 빛을 담는다는 뜻이에요. 사진은 빛으로 빚는 예술이나 문화라고 말한다면, 사진은 내 마음속에서 샘솟아 나 스스로 누리는 삶을 예술이나 문화로 일굴 때에 이루어진다는 뜻이에요.


  105만 원짜리 렌즈가 있으면 105만 원짜리 렌즈를 가장 잘 살리는 사진을 찍으면 돼요. 12만 원짜리 렌즈가 있으면 12만 원짜리 렌즈를 가장 잘 살리는 사진을 즐기면 돼요. 200만 원짜리 렌즈나 2000만 원짜리 렌즈가 있으면, 200만 원짜리 렌즈로 가장 잘 찍을 수 있는 사진을 찍거나 2000만 원짜리 렌즈로 가장 곱게 빛낼 만한 사진을 찍으면 돼요. 내 살림살이 가난해서 12만 원짜리 렌즈를 쓴대서 내 사진이 빛이 안 날 까닭 없어요. 내 살림살이 넉넉해서 2000만 원짜리 렌즈를 쓰니까 내 사진이 남다르게 빛이 날 까닭 없어요. 이런 글 쓰는 나는, 살림돈 없어 형한테서 얻은 사진기와 렌즈로 날마다 신나게 사진을 찍습니다. 내 ‘소유’라 할 사진기 하나 없지만, 나한테 사진기 빌려준 분들 넋을 헤아리면서, 눈빛 환하게 밝힐 삶 즐기며 사진을 찍습니다. 값싼 사진기와 렌즈로는 ‘접사’ 사진 못 찍는데, 외려 이런 값싼 사진기와 렌즈이기 때문에 우리 집 마당에서 아주 놀랍고 눈물 찡하면서 웃음나는 어여쁜 사진 하나 얻습니다. 다만, 내 눈에는 아주 놀랍고 눈물 찡하면서 웃음나는 어여쁜 사진이에요. 다른 사람한테는 어떻게 보일는지 모르고, 굳이 다른 사람 눈길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4346.3.2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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