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만쥬의 숲 1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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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736


죽었으나 저승에 못 가는 안타까움
― 파란 만쥬의 숲 1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오경화 옮김
 미우, 2011.5.30. 8000원


‘내 모습이 변치 않았다면 계속 곁에 있을 수 있었을까?’ (24쪽)

“당신은 그냥 당신이니까, 무리해서 신이 될 필요는 없어요. 당신에겐 주인의 이름이 적혀 있잖아요?” (46쪽)

“서늘한 곳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우리를, 늘 지켜 주었죠. 어쩌면 당신은 단지 그 자리에 있었던 것뿐이고, 나도 그 발밑에 있었던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우린 분명당신 덕분에 살 수 있었던 거예요.” (134쪽)

“어떡해, 어떡해? 우리 마사히로, 벌써 1살이야. 무려 1살이라구. 1살!” “어머님, 아버님한테 죄송해서 어쩌지? 그렇게 맡겨 두고 와서?” “무슨? 괜찮아. 오히려 기뻐하고 계셔. 빨리 돌아가자, 기쁨을 선사해야지.” “너무 들뜬 거 아냐?” “어떻게 들뜨지 않을 수가 있어? 그 아일 뱃속에 있을 때부터 얼마나 귀여워했는데.” (188쪽)


  한국말에 ‘이승·저승’이 있어요. 산 사람이 사는 곳은 이승이요, 죽은 사람이 있는 곳은 저승이라고 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이쪽·저쪽’인 셈입니다. 이곳 너머가 저곳이요, 이 길을 떠나면 저 길을 가는 셈이고요.

  “이리 와”하고 “저리 가”를 생각해 봅니다. “이리 와” 하고 부를 적에는 이쪽에서 함께 살아가요. “저리 가” 하고 내칠 적에는 한곳에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곳에서 함께 있으면 싫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이곳에서 보면 이곳 너머가 저곳이지만, 저곳에서 보면 저곳 너머가 이곳이지요. 우리가 선 자리에서 보자면 우리 아닌 너희는 남이지만, 저쪽에 있는 저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바로 남이 되어요.

  만화책 《파란 만쥬의 숲》(미우, 2011)은 이승하고 저승 사이에 만나는 갈림길을 다룹니다. 다만 이승하고 저승 사이에 만나는 갈림길이 숲에 있어요. 이 숲은 사람들이 여느 때에 드나들지 않습니다. 더욱이 여느 때 숲 바깥에서는 숲에 무엇이 있는지 모를 뿐 아니라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지요. 그러나 막상 숲에 발을 들이고 보면, 그동안 느끼거나 보지 못한 숱한 ‘다른 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숲 바깥에서는 하찮은 돌멩이입니다만, 숲에서는 ‘스스로 걷고 움직이며 말하고 웃거나 찡그릴 줄 아는’ 목숨인 돌멩이가 되어요. 숲 바깥에서는 그저 흔한 길고양이나 들개라 하더라도 숲에서는 ‘사람하고 똑같이 말하고 웃고 울고 노래할 줄 아는’ 목숨으로 보입니다.

  《파란 만쥬의 숲》에서는 숲 안팎을 홀가분하게 드나드는 사내가 한 사람 나옵니다. 이 사내가 어릴 적에 겪은 이야기를 첫째 권 끝자락에 살며시 담아요. 숲 안팎을, 그러니까 이승저승을 홀가분하게 오가는 사내는 꼭 1살 적에 두 어버이를 교통사고로 잃었대요. 교통사고로 이승을 떠난 어버이가 교통사고로 그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지만 두 어버이가 저(1살 아기)한테 주려던 장난감 자동차는 멀쩡했다지요. 만화책 이야기를 이끄는 사내는 오랜 장난감 자동차를 가끔 들여다보면서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아버지가 예전에 어떤 모습이요 어떤 말을 나누었는가’를 가만히 되새기곤 합니다.

  그리고 이 사내는 길을 잃은 ‘돌멩이 정령’을 비롯해서 숱한 목숨붙이가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도록 이끄는 몫을 맡습니다. 숲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사회살이를 하느라 바빠서 쳐다보지 않거나 마음조차 안 쓰는 ‘작은 이웃(사람이 아닌 모든 목숨붙이)’한테 찬찬히 마음을 기울여요.

  어쩌면 사람 아닌 숱한 이웃을 바라보거나 느끼거나 말을 섞을 수 있는 눈이나 힘은 대단한 곳에 있지 않을 수 있어요. 엄청난 초능력이 있어야 돌이나 나무하고 말을 섞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어요. 바쁘게 몰아치지 않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걸음을 멈추고 살며시 쪼그려앉고, 따사로운 마음으로 지켜볼 줄 알 적에, 바람소리를 듣겠지요. 잎소리를 들을 테고요.

  죽었으나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맴도는 숱한 이웃들한테 마음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어린이 같은 마음이리라 생각해요. 사회에 물들지 않기에, 사회에 휩쓸리지 않기에, 사회에 끄달리지 않기에, 스스로 한 걸음씩 내딛으며 살아가려 하기에, 우리는 꽃 한 송이를 아끼고 이웃을 보듬는 넉넉한 삶을 가꾸리라 봅니다. 2017.11.1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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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 스피카 7
야기누마 고 지음, 김동욱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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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35



오직 하나는 둘이 아닙니다

― 트윈 스피카 7

 야기누마 고 글·그림

 김동욱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4.9.26. 13500원



“사쿠라 넌 다른 꿈 같은 거 없어?” “있어. 고고학자. 나 있지, 화석을 보거나 조사하는 게 좋아. 언젠가 유적 발굴 같은 것도 해 보고 싶어. 근데 그런 얘기 하면 아빠도 엄마도 표정이 별로 안 좋아져. 여자애답지 않대.” (30쪽)


“우주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런 건 난 몰라. 난 그저 어찌됐든 간에 우주를 꿈꾸는 친구들과 쭉 함께하고 싶은 것뿐인데, 당신이 진짜 내 아버지라면 제발 좀, 제발 좀 알아 달란 말이야!” (146∼147쪽)


“똑같은 사람 같은 건 있을 수 없어. 마리카는 우주를 꿈꾸며 노력 중인 평범한 세상에 하나뿐인 내 딸일세.” (200쪽)



  온누리에 오직 하나만 있습니다. 똑같은 것이란 없어요. 나비가 낳아서 깨어나는 애벌레도, 고양이가 낳은 새끼도, 사람이 낳은 쌍둥이도, 똑같을 수 없습니다.


  모두 다른 것은 모두 달라서 뜻있습니다. 모두 다른 목숨은 모두 다르기에 아름답습니다. 모두 다른 사람은 모두 다른 터라 저마다 다른 고장에서 저마다 다른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저마다 달리 꿈을 키웁니다.


  그런데 모두 다른 것이든 목숨이든 사람이든 한 자리에서 만나요. 서로 즐거이 어우러지는 넉넉한 마음으로 짓는 고운 사랑이라는 자리에서 만나지요.


  이래라 하고 시킬 수 없어요. 저래라 하고 맡길 수 없습니다. 스스로 움직여서 합니다. 때로는 바지런히 서둘러서 합니다. 때로는 미적거리면서 늦춥니다. 어느 때에 어떻게 하든 모두 제자리를 찾으면서 맞물려요.


  여름에는 해가 높고 겨울에는 해가 낮지요. 늘 높지 않고, 언제나 낮지 않습니다. 만화책 《트윈 스피카》 일곱째 권은 차츰 저무는 여린 아이들하고 천천히 무르익는 아이들이 서로 어우러집니다. 일찍 저물든 천천히 무르익든, 모두 동무가 되어 아낄 줄 아는 마음입니다. 2017.11.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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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곁에서 - 주말엔 숲으로, 두번째 이야기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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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34


병에 담은 바람이 체코 여행 선물
― 너의 곁에서
 마스다 미리 글·그림/박정임 옮김
 이봄, 2016.9.23. 12000원


  마스다 미리 님 만화책 《너의 곁에서》(이봄, 2016)는 《주말엔 숲으로》하고 이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너의 곁에서》를 펴면 첫머리에 어머니하고 아이가 주고받는 말이 나와요. 아이는 학교에서 ‘내가 태어난 날 이야기’를 집에 여쭙고서 학교에서 말하라는 숙제를 받습니다. 아이는 이 숙제를 어머니한테 들려주고, 어머니는 아이 말을 듣고서 가만히 생각에 잠기더니 한 마디를 해요.


“엄마, 내가 태어난 날 말인데, 어떤 날이었어?” “알고 싶어?” “응!!” “특별한 날 이야기니까 차 마시면서 천천히 할까.” (9쪽)

“엄마는 그래서 알았지. 타로가 오늘 태어나는구나. 왜 거기 병원 앞에 커다란 졸참나무가 있잖아.” “응.” “졸참나무 잎도 바람에 흔들리면서 ‘기뻐! 기뻐!’ 하고 말했어.” “나뭇잎이?” “응. 엄마에게는 그렇게 들렸어.” (12쪽)


  어머니하고 아이가 밥상맡에 나란히 앉아서 찻잔을 손에 쥡니다.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두르지 않으나 그렇다고 미적거리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낸 숙제이기 앞서 어머니하고 아이 사이에 흐르는 삶과 사랑이 얽힌 이야기인 터라, 느긋하게 나누려고 하지요.

  아이는 처음에 어머니가 왜 바로 이야기를 안 해 주나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시나브로 풀어놓는 이야기를 듣고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겠지요. 어머니하고 아이 사이에 오직 하루 있는 날일 뿐 아니라, 서로 두 눈으로 처음 마주한 날이거든요.

  아이는 제가 태어난 날을 어머니가 또렷이 떠올리는 모습에 놀라기 일쑤예요. 그러나 아이가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서 어버이 나이가 되면, 어버이가 된 아이로서 새롭게 아이를 낳으면 ‘새로 낳은 아이하고 얽힌 일’을 거의 모두, 때로는 송두리째, 낱낱이 떠올릴 만하지 싶어요.


“잎에 글씨를 쓸 수 있지. 자, 연필 대신 작은 나뭇가지로.” “옛날에는 이걸로 편지 썼던 거 아냐?” “그럴지도. 학교 교과서도 잎으로 되어 있으면 재밌겠다.” (25쪽)

“‘가르쳐 주고 싶은 사람’이 타로가 좋아하는 사람이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건 좋은 거지!” “엄마는 날 좋아해서 가르쳐 준 거야?” (35쪽)


  해질녘에 가랑잎을 모아서 불을 피우곤 합니다. 겨울을 앞두고 이제 잎이나 줄기가 그리 많이 돋지 않으니, 드문드문 모닥불을 피웁니다. 아이들한테 딱히 말하지 않고서 마당에서 불을 피우면, 두 아이는 어느새 알아채고는 슬금슬금 마당으로 나와 불가에 앉습니다.

  가을에 봄에 여름에 마당에서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시골집이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서 숲에 느긋하게 마실을 다닐 수 있는 시골집이란. 자전거를 조금 달리면 바다가 가까운 시골집이란.

  만화책 《너의 곁에서》에 나오는 아이는 날마다 숲을 가로질러서 학교를 다닌다고 해요. 일부러 숲길을 가고, 좋아서 숲길을 간다지요. 어머니하고도 곧잘 숲마실을 하면서 숲 이야기를 배워요. 만화책을 읽는 동안 저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숲 이야기를 들려주나 하고 헤아려 봅니다. 즐겁게 하루를 짓는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불을 피우면서 피어오르는 불꽃하고 연기가 무엇인가를 얼마나 차근차근 알려주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선생님, 저 밤나무는요, ‘친절한 나무’라고 엄마가 이름 붙여 줬어요. 친절한 나무는 친절하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든지 해도 된대요.” “어떤 거라도?” “네. 말하기 힘든 마음 같은 것도요.” (77∼78쪽)

“선물은 뭐야?” “오! 질문 잘하셨습니다. 봐 봐. 이 병에 체코의 공기를 담아 올게!!” (83쪽)


  만화책에 나오는 아주머니는 체코라는 나라로 여러 날 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아이한테 ‘체코 바람’을 선물로 줍니다. 그래요. 그렇지요. 우리가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마실을 가든, 부산을 떠나 광주로 마실을 가든, 우리는 새로운 고장에서 새로운 바람을 누리고 싶습니다. 한국을 떠나 일본이나 중국으로 마실을 갈 적에는 일본 바람이나 중국 바람을 쐬지요.

  새로운 바람을 쐬면서 새로운 마음이 됩니다. 숲에서도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새로운 마음으로 웃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새로운 기쁨을 지핍니다.

  돈으로 치르지 않고 작은 병에 담아 온 바람 한 줄기가 선물이 되어요. 작은 엽서에 적은 글월이 먼곳에 사는 이웃한테 선물이 되어요. 때때로 전화를 하는 목소리가 동무한테 선물이 됩니다. 어머니한테서 배운 ‘숲 나무 이야기’를 스스로 좋아하는 사람한테 선물처럼 들려줍니다.

  나는 네 곁에서 즐겁게 삶을 꾸립니다. 너는 내 곁에서 즐거이 살림을 가꿉니다. 우리 곁에 있는 바람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새로운 하루를 되새깁니다. 십일월에 만화책 한 권 곁에 두면서 싱그럽습니다. 다만, 이 만화책 이름 “너의 곁에서”는 “네 곁에서”로 손질해야지요. 한국말은 ‘너의’가 아닌 ‘네’입니다. 2017.11.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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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야샤 7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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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33



아직 드러내지 못하는 마음

― 이누야샤 7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2.4.25. 4500원



“철쇄아는 인간을 지키는 검이라 들었습니다. 본디 당신처럼 완벽한 요괴는 다룰 수 없는 검이라고.” “훗! 네놈은, 이누야샤를 미워한다 했지? 이누야샤를 죽이기 위해, 나를 이용하겠다는 말이냐?” “예.” (14쪽)


“이누야샤, 너는 철쇄아를 쓰는 법을 전혀 모르는구나.” (29쪽)


“뭘 하는 거야, 이누야샤!” “시끄러.” “우물울 부수면 카고메가 못 돌아오게 되잖아! 이누야샤는 카고메를 다시 못 만나도 좋아?” “쳇! 그 녀석이 있으니까 마음 놓고 싸울 수가 있어야지.” (119쪽)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면 서로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마음은 말로만 드러내지 않습니다. 눈빛이나 낯빛으로도 드러내요. 몸짓이나 손짓으로도 드러내지요. 말을 하지 않더라도 마음을 드러내면 서로 한넋으로 거듭납니다. 말을 하더라도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면 서로 겉돌아요.


  우리가 서로 겉으로만 바라본다면 서로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를테면 반요괴인 이누야샤는 사람인 카고메를 데리고 다니면서 싸움을 하기 어렵다고 여길 만해요. 카고메는 하늘도 못 날고 달리기가 빠르지 않은데다가 한 번 다치면 잘 안 나아요. 주먹힘이 세다거나 뭔가 대단한 솜씨도 없는 듯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누야샤가 저 스스로도 아직 모르는 힘을 끌어낼 수 있는 바탕을 생각할 수 있다면, 카고메가 곁에 있고 없고 하는 대목이 얼마나 큰가를 제대로 알 테지요. 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기에, 서로 마음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기에, 겉도는 몸짓으로 하루하루 지내기에, ‘이렇게 해야 너를 아끼는 길’이라고 여기는 대목이 자꾸 부딪히거나 엇갈립니다.


  말도 말이기에 말을 해야 합니다만, 아무 말이나 하지 말고 마음을 환하게 드러내는 말을 제대로 가리고 살펴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아이는 이리 부딪히고 저리 넘어지면서 차근차근 마음을 배우는 길을 나섭니다. 2017.10.2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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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부터 일하러 갑니다! - 15년 만의 재취업 코믹 에세이
노하라 히로코 지음, 조찬희 옮김 / 꼼지락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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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32


“어? 밥을 어떻게 하는 거지?”
― 엄마, 오늘부터 일하러 갑니다
 노하라 히로코 글·그림/조찬희 옮김
 꼼지락, 2017.4.10. 11000원


  만화책 《엄마, 오늘부터 일하러 갑니다》(꼼지락, 2017)를 읽으며 첫 대목부터 눈썹을 움찔합니다. 어쩜 일본이든 한국이든 ‘아저씨가 하는 말’은 비슷하고, 이런 아저씨 말을 듣다가 하소연을 하는 아주머니 말도 비슷하구나 싶어요.


“애들 어리광 부리는 것도 지금뿐이라구. 엄마가 가장 필요할 때가 지금이잖아.” “하지만, 나도 밖에서 일하고 싶단 말이야.” (7쪽)

“엄마는 왜 일을 안 해? 다른 엄마는 일하던데.” “엄마가 일하러 가면 너 외롭잖아.” “글쎄, 안 그럴걸. 나 가난하니까 엄마도 일하면 어때?” “무슨 소리니! 엄마가 하루 종일 뒹굴거리는 줄 알아? 빨래하지 청소하지 밥도 해야지 장도 보러 가야지, 얼마나 바쁘다구! 게다가 엄마가 밖에 일하려면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11쪽)


  만화책 《엄마, 오늘부터 일하러 갑니다》에 나오는 ‘엄마’는 두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열다섯 해 동안 집살림하고 집일을 도맡았다고 합니다. 아이를 낳고서도 바깥일을 하고 싶었으나, 아이 아버지인 아저씨가 “애들 어리광”을 어머니가 받아 주어야 하지 않느냐며 달랬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 아버지는 열다섯 해 동안 집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만 한 채, 집살림이나 집일은 하나도 모르면서 살았대요. 더욱이 두 아이도 열다섯 해에 걸쳐 자라는 동안 집살림이나 집일은 ‘그저 어머니가 맡아서 할 뿐’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내가 살림의 여왕이라고? 아이들을 계속 포기시킨 건 아니고?’ (18쪽)

“다녀왔어.” “어서 와.” “늦게 왔네.” “아, 배고파.” “엄마, 내 신발 좀 빨아 줘.” …… ‘오늘 저는 회사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음속 어딘가에서 꿈을 꾸었습니다. ① 알아서 적당히 먹고 있다. ② 남편이 밥을 하고 있다.’ (75쪽)

“밥 좀 해놓지 그랬어! 신발 같은 건 직접 빨아 신어!” “어? 밥을 어떻게 하는 거지?” “신발은 어떻게 빠는 거지?” “나, 부엌에 들어가도 돼?” (77쪽)


  가만히 돌아봅니다. 온누리에서 가시내가 집에서 집살림하고 집일을 도맡는 동안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어머니가 집일을 하든 아버지가 집일을 하든 대수롭지 않아요. 아이들은 집에서 무엇을 배우나요? 아이들은 집에서 함께 밥을 짓거나, 함께 빨래를 하거나, 함께 비질하고 걸레질을 하거나, 함께 집안을 치우는가요? 아이들은 앞으로 새로운 살림을 짓는 길을 집에서 저마다 슬기롭게 배우는가요?

  우리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시험 공부만 시킬 뿐, 정작 아이들이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는 아주 조그마하면서 마땅히 익혀 둘 일조차 못 가르치는 살림일는지 모릅니다. ‘어른인 어머니가 집일에 얽매이는 얼거리’가 평등이나 평화하고 어긋나는 줄은 알더라도, 정작 이 반평등이나 불평등 얼거리를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가를 아이들이 못 배울는지 몰라요.


“15년 만이란 게 어떤 건 줄 알아? 나만 빼고 다 바뀌었어! 전에는 여기에서 나오던 프린트가 저쪽에서 나오지를 않나, 젊은 애들 옷이 오렌지색인 건지 안 빨아서 그런지 알 수가 없다. 어린 직원한테 혼나야 하고, 못하는 나를 받아들여야 하고, 잠들어 있던 뇌를 억지로 깨워야 해. 15년 동안 집에 있던 주부가 15년 만에 밖에 나가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 건 줄 알앗! 다른 아내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 당장이 힘들단 말이야!” (80∼81쪽)


  만화책 《엄마, 오늘부터 일하러 갑니다》는 집에서만 일하고 살다가 열다섯 해 만에 집 바깥으로 나온 아주머니 이야기를 차분히 들려줍니다. 모두 새로 배워야 할 뿐 아니라, 몸이나 마음이 잘 따라 주지 않기에 꾸지람이나 지청구를 늘 바깥에서 들으며 녹초가 되는데, 집으로 돌아와 보면 식구들이 하나도 도와주지 않는, 이 엄청난 짐을 어깨에 짊어지면서 꽝 하고 터지는 모습까지 낱낱이 보여줍니다.

  이 만화를 함께 보는 이웃님이라면, 또는 마흔이나 쉰이나 예순이라는 나이에 ‘나(집일만 해 온 여자)도 바깥일을 해 보겠다’고 나서는 이웃님이라면, 이처럼 집 바깥으로 나오는 분을 아는 이웃님이라면, 우리는 가만히 헤아려 보아야지 싶어요. 이렇게 바깥일하고 집일을 함께 짊어지기 어렵다면 바깥일은 안 하면 그만일까요? 아니면 사회도 달라지고 집식구도 달라져야 할까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집살림하고 집일을 거뜬히 맡아서 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아이들도 나이랑 몸에 맞게 집살림하고 집일을 차근차근 물려받고 배울 수 있어야지 싶어요. 어느 날은 아이들끼리 밥을 지어서 차릴 수 있습니다. 어느 날은 아버지 혼자 집일을 도맡아서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느 날은 어머니 혼자 집일을 살뜰히 할 수 있을 테고요. 다만 온 집식구가 집살림하고 집일을 ‘우리 일’이나 ‘우리 살림’으로 여기는 마음이어야 하겠지요.


“죄, 죄송합니다. 바쁜 때에 하필.” “아이가 어리니 어쩔 수 없지. 우리도 모두 어린애 키워 봤잖아. 어서 가 봐. 애기가 엄마를 얼마나 찾겠어.” ‘인생 선배이기도 하고, 육아 선배이기도 하다.’ (139쪽)


  바람이 한 줄기 붑니다. 열다섯 해 만에 바깥바람을 쐬면서 ‘집에서 일하는 보람’을 곁님하고 아이들한테도 물려주는 아주머니가, 그동안 곁님만 느끼던 ‘바깥에서 일하는 보람’을 조용히 누립니다. 마흔 줄을 넘긴 아주머니는 청소하는 일을 맡았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해 보다가 이녁한테 가장 즐거우면서 홀가분하고 후련한 바깥일은 청소였다고 해요.

  청소 노동자로 일하는 마흔 줄 넘긴 아주머니는 함께 청소 노동자로 있는 분들이 하나같이 예순이나 일흔 줄을 훌쩍 넘긴 분들이라, 이분들, 그러니까 할머니 청소 노동자한테서 삶과 살림을 비롯한 여러 가지를 새롭게 지켜보고 배운다고 해요.

  우리는 집에서 살림하고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보면서 아이하고 얽힌 새로운 길을 배운다고 할 수 있어요. 집 바깥으로 나가서 바깥일을 할 적에는 마을이나 사회를 이루는 숱한 이웃을 마주하면서 이웃님이 오랜 나날에 걸쳐서 몸이랑 마음으로 익힌 슬기나 삶을 배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엄마, 오늘부터 일하러 갑니다” 하고 외치는 아주머니는 그저 돈을 벌려고 바깥일을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돈도 어느 만큼 벌려는 뜻이 있을 테지만, 이에 못지않게 새로운 이웃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 선배’를 만나면서 오늘 이 삶을 새롭게 즐기는 길을 찾고 싶은 뜻이 있지 싶어요. 한동안 아주머니네 식구들은 “어? 밥을 어떻게 하는 거지?” 하고 어쩔 줄 몰라 했다는데, 어느새 저마다 밥도 빨래도 청소도 이럭저럭 해내는 몸짓으로 거듭났다고 해요. 이 어여쁜 평화로움이 우리 사회 곳곳에 따사롭게 퍼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7.10.24.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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