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냄새 참 좋다
유승하 글.그림 / 창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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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42



엄마 냄새도 아빠 냄새도 다 좋아

― 엄마 냄새 참 좋다

 유승하 글·그림

 창비, 2014.8.25. 13000원



엄만 떠듬떠듬 읽어요.

책은 내가 더 잘 읽어요.

하지만  엄마한테는 비밀이에요.

왜냐면 난 엄마가

책 읽어 주는 게 좋거든요. (12쪽)



  우리 집 아이들은 책 읽어 주기를 몹시 좋아합니다. 이 아이들은 저희가 매우 어릴 무렵을 떠올릴까요? 이 아이들이 갓난쟁이였을 적에, 한두 살일 적에, 서너 살일 적에, 저나 곁님은 아이들한테 으레 그림책이나 이야기책을 읽어 주었습니다. 노래도 하루에 두어 시간씩 넉넉히 불러 주었어요.


  어버이한테서 목소리로 이야기랑 노래를 들으며 자란 아이들은 어느새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책을 읽어 줍니다. 게다가 한 시간쯤 아무렇지 않게 읽어 줍니다. 우와 놀라워라! 대단해라! 멋져라! 어버이한테 쉬잖고 책을 읽어 주는 아이를 지켜보면서 흐뭇하게 웃다가 묻습니다. “네 목소리로 들으니까 더 재미있네. 그런데 살짝 쉬고 감을 쪼개어 먹어 볼까?”



“동사무솝니다. 통장조사 합니다. 재산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혜택 받기 힘들어져요. 저, 말이죠, 다른 장애인들처럼 그냥 조용히 사세요. 벌써 위에서 전화 오고 난립니다. 이렇게 시끄럽게 하면 서로 피곤해요.” (39쪽)


‘국가가 추진하는 개발은 그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에게 싸움을 걸어 밖으로 밀어내는 거랬어. 우린 말없이 시키는 대로 비켜 주고 피해 주고 물러나 주는 거지. 다른 선택은 없는 거야. 하지만 그러기에 우리가 살아온 나날도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한데.’ (109쪽)



  유승하 님이 빚은 만화책 《엄마 냄새 참 좋다》(창비, 2014)를 읽습니다. 유승하 님은 엄마이면서 만화를 그리고, 가시내이면서 살림지기입니다. 한 사람이면서 한 목숨이요, 어머니를 그리는 아이이면서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입니다.


  만화책 《엄마 냄새 참 좋다》에는 여러 이야기가 흐릅니다. 뇌성마비 장애인 운동가 최옥란 님 이야기가 흐릅니다. 비혼모 청소년 이야기가 흐릅니다. 수수한 어머니가 흐르고, 용산 철거민 아버지 이야기가 흘러요. 어머니 이야기만 흐르지 않고, 아버지 이야기도 살며시 깃들어요.


  용산 신계동 강정희 님 이야기가 흐르고, 평원고무공장 여성 노동자 강주룡 님 이야기가 흐르다가는, 허초희 님 이야기하고 나혜석 님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 땅에서 힘겹거나 슬프거나 애틋하게 살아왔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한 올 두 올 흐릅니다.



“엄마 냄새 차암 좋다… 엄마 머리 냄새도 좋아.”

아이가 안기며 따라 눕는다.

엄마 냄새?

땀 냄새 가득한 머리털, 음식 냄새 밴 옷쪼가리에서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걸까.

그러고 보니

코끝 간질이는 향수보다 좋은 그 냄새

나도 어렴풋이 엄마 냄새가 기억난다. (79쪽)



  우리 집 아이들이 으레 “어머니 냄새”나 “아버지 냄새”를 맡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이야기로뿐 아니라, 참말 우리 집 아이들도 이와 같습니다. 땀내음을 놓고도 냄새가 좋다고 합니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는 몸이건만 아이들은 이 몸에서 나는 냄새가 좋다고 합니다.


  책을 읽다가 가만히 덮고서 생각에 잠깁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어릴 적에 어머니 품에 안기면서 “어머니 냄새 참 좋다” 하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니 으레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를 낳아 사랑으로 돌보는 어버이(어머니 아버지)이기에 어버이한테서 흐르는 냄새가 곱구나 싶습니다. 우리를 기쁨으로 낳아서 함께 살림을 짓는 어버이인 터라 우리 어버이 살내음이란 내 살내음이요 따사로운 숨결이로구나 싶어요.



내 안엔 너무나 많은

나혜석이 있다.

일과 작업 그리고 아이들.

인형의 집은 겉모습만 바뀔 뿐

그저 그렇게 또 반복되고 있다.(224쪽)



  만화를 그리는 아주머니는 만화를 그리는 동안 스스로 나혜석도 되고 강주룡도 되며 허초희 님도 됩니다. 함께 아프고 함께 눈물짓습니다. 같이 웃으며 나란히 어깨동무를 합니다. 이제 ‘인형집’이라는 사슬을 떨쳐내고픈 꿈을 만화로 빚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수렁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랑을 만화로 짓습니다.


  우리 어여쁜 가시내는 어여쁜 가시내이자 한 사람으로서 즐겁고 씩씩하게 이 땅에 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어여쁜 사내는 어여쁜 사내이자 한 사람으로서 기쁘고 야무지게 이 땅에 서면서 고운 짝꿍하고 손을 맞잡는 길을 걸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 함께 어여쁜 삶입니다. 서로서로 고운 사람입니다. 엄마 냄새가 참 좋지요. 아빠 냄새도 참 좋답니다. 아이 냄새도 참으로 좋아요. 우리는 서로 고운 내음과 마음과 숨결과 꿈으로 이어진 사랑이라고 느껴요. 아픈 사슬은 이제 되풀이하지 않기를 빕니다. 기쁜 노래를 부르며 구름 타고 훨훨 나는 살림길을 열 수 있기를 빌어요. 2017.12.23.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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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밥 통신 2 - 불량엄마일기
니노미야 토모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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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07


어머니는 네가 동생 괴롭히는 만화를 그린단다
― 주먹밥 통신 2
 니노미야 토모코 글·그림
 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1.15. 8500원


“어머님도 독감이신가요?” “아뇨.” ‘어젯밤에 과음해서 수면부족이라고는 죽어도 말 못해.’ (4쪽)

‘불어터져 국물이 실종된 라면을 본 순간 깨달았습니다. 애를 달고 온 주제에 금방 끓인 라면을 당연히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내가 잘못했네! 아이가 스스로 응가를 컨트롤할 수 있을 리 만무하건만.’ (15쪽)

‘왜 바다인가 하면, 코우가 물놀이를 좋아하기도 하고, 무겁지도 않고, 같이 떠 있으면 되니까 무릎과 허리에도 좋고, 장난감과 탈것이 없어도 아이가 좋아하고, 파도에 흔들려 금세 잠들고, 아무튼 고령의 부모에게는 더없이 좋은 곳입니다.’ (48쪽)

“엄마, 내 다리가 히로보다 길지? 히로는 숏다리야.” “엄마는 지금, 네가 동생을 괴롭히는 만화를 그리는 중이니까, 방해하면 안 돼요♡” “지워 줘.” (90쪽)

“눈이, 장난 아니에요, 선생님. 기록적 대설이 될 거래요.” “아무도, 집에 못 가겠네. 아버님도 어머님도, 후후후.” “뭐가 우스우세요?” ‘아무도 이 집에서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 기쁜 만화가.’ (122쪽)


  니노미야 토모코 님이 그린 만화는 한국말로 꽤 나왔습니다. 저는 이분이 그린 만화 가운데 《주식회사 천재 패밀리》를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매우 똑똑하면서 새롭게 생각하는 아이가 외곬 같으면서도 싱그러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윽고 《GREEN》을 만났어요. 시골로 시집을 가겠노라 밝히는 허둥쟁이 아가씨가 나오는 만화입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시골로 떠나는 사람이 드물 무렵에 이 만화가 나왔는데요, 시골을 만화감으로 그릴 뿐 아니라, 도시 아닌 시골이 좋다고 노래하는 아가씨가 나오는 만화여서 몹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런 뒤에 《노다메 칸타빌레》를 만났고 《음주가무 연구소》를 만나며 새삼스레 깜짝 놀랐어요. 아직 한국에 술 만화가 거의 안 나올 즈음, 만화를 그리다가 뭔가 막힌다 싶으면 신나게 술잔치를 벌이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았지요. 저하고 나이가 비슷한 만화가 아주머니가 그리는 만화에 깃든 너털웃음이나 익살을 차근차근 돌아보면서 한 가지가 궁금했어요. ‘이 아주머니는 아이하고 어떻게 지내려나?’

  마치 제 궁금함을 풀어 주기라도 하려는 듯, 《주먹밥 통신》(대원씨아이)이 2014년에 첫째 권, 2015년에 둘째 권이 나왔습니다. 다만 셋째 권은 아직 한국말로 안 나옵니다.

  만화책 《주먹밥 통신》은 여러 가지로 읽을 수 있어요. ‘주먹밥’처럼 수수한 밥살림이 좋다는 매무새로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살림도 그저 수수하게 나아가겠다는 뜻이 됩니다. 또는 주먹밥 아니고는 밥을 할 줄 몰라서 아이가 주먹밥 아니고는 도무지 어버이한테서 배울거리가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주먹밥 통신》을 읽으면 만화지기 아주머니가 얼마나 허술하며 허둥거리는 어버이인가 아주 잘 알 수 있습니다. 만화지기 아주머니는 허술하며 허둥거리는 이녁 모습을 숨기지 않습니다. 낱낱이 드러내면서 스스로 너털웃음을 짓고, 만화를 읽는 이웃도 배꼽을 쥐도록 이끕니다.

  만화 마감에 맞추느라 너무 바쁠 때면 시아버지하고 시어머니가 만화지기 아주머니네 집에 찾아와서 아이랑 놀고 밥도 짓고 청소에 빨래를 도맡아 준다는데, 만화지기 아주머니가 사는 고장은 겨울에 눈이 대단히 잦고 많대요. 시아버지하고 시어머니가 아이를 돌보고 집안을 건사하며 도움이(만화 어시스턴트)한테 한창 밥을 지어 주다가 슬슬 돌아가실 날이 다가오는데 함박눈이 쏟아지면 속으로 웃는다고 합니다. ‘아무도 이 집에서 달아날 수 없구나!’ 하고요.

  작은아이를 괴롭히는 큰아이를 굳이 나무라거나 꾸짖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화지기 아주머니는 슬그머니 웃으면서 “엄마는 지금, 네가 동생을 괴롭히는 만화를 그리는 중이니까, 방해하면 안 돼요♡” 하고 한 마디를 한답니다. 혼자 만화책을 읽을 수 있는 큰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제발 그 대목을 지워 달라 한대요. 그러면 이런 모습까지 더 신나게 만화로 담아냅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바깥일을 해내야 하는 살림은 얼마나 힘들거나 고될까요. 틀림없이 만만하지 않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저 스스로 집안일하고 집밖일을 모두 하는 어버이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꽤 힘에 부치기도 한다고 느껴요. 그러나 두 가지 일을 모두 하기 때문에 아이를 더 오래 마주합니다. 아이하고 늘 함께 지냅니다. 아이를 둘러싼 온모습을 지켜보고, 아이하고 온살림을 뚝딱뚝딱 가꾸면서 어버이로서 새롭게 배우곤 합니다. 어쩌면 힘들기 때문에 더 즐거울 수 있습니다. 어쩌면 바쁘기 때문에 더 재미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놀고서 어지르기만 한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놀이하듯 함께 치울 수 있습니다. 만화책 《주먹밥 통신》은 ‘아이 어버이’인 이웃한테 ‘다 좋아요. 어질러졌으면 어지러운 대로 아이랑 웃고, 치울 적에는 치우면서 콧노래를 불러요.’ 하고 넌지시 속삭이는 이야기꽃일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옛말에도 이런 얘기가 있어요. 웃으면 기쁨이 찾아온다고. 함께 웃으면서 아이하고 하루를 지어 봐요. 2017.12.16.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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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야샤 9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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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41



무엇을 얻겠니

― 이누야샤 9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2.5.25. 4500원



“부탁해, 딱 3일만. 예습도 해야 되고.” “카고메도 여러모로 고생이 많군요. 여기서 그냥 살면 편할 텐데.” (8쪽)


“이누야샤한테 무슨 짓 했으면 가만 안 둬!” “굉장하다, 카고메. 눈도 깜짝 않고 얘기하네.” (64쪽)


“강한 놈이 약한 놈을 먹는 게 뭐가 잘못이야? 개구리가 뱀을 먹는 거나 매한가지지.” (89쪽)


“사혼의 구슬에 깃든 요력을 써서 좋은 일을 하는 자를 본 적이 있습니까?” “없어.” “나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혼의 구슬의 요력을 얻는 자는 그 대신 마음을 잃는다는.” (125쪽)



  사람들은 흔히 ‘두 마리 토끼’를 말합니다.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없다고 말예요. 한 토끼를 잡으려면 다른 토끼를 못 잡는다고 해요. 두 토끼를 노리는 사람은 언제나 두 토끼를 몽땅 놓친다고 하지요.


  때로는 두 토끼를 다 잡는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요? 두 토끼를 다 잡는 사람이 있다면, 이녁은 온마음을 쏟거나 빼어난 슬기를 보여준 셈일까요? 어쩌면 깨끗하게 마음을 비운 채 한 가지에 제대로 마음을 쏟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다른 토끼 한 마리도 잡을 수 있지는 않을까요?


  만화책 《이누야샤》는 권수를 거듭하면서 ‘사혼 구슬’을 둘러싼 사람들 마음을 더 깊이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사혼 구슬을 손에 넣고서 엄청난 힘을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죽지 않을 수 있다는 대목까지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 사혼 구슬을 손에 넣는 이들은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착하거나 참답거나 좋은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요. 하나같이 마음이 찌들거나 망가져서 바보짓을 일삼는다고 합니다. 손에 쥐면 엄청난 힘을 얻는다지만, 이 엄청난 힘을 손에 쥐고서 바보스러운 마음이 되고 만다면, 사혼 구슬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왜 엄청난 힘을 손에 쥘 적마다 바보가 되어야 할까요? 우리는 엄청난 힘이 있든 없든 서로 아름다우면서 즐겁게 어우러지는 착하고 참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일까요? 2017.12.9.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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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2
아오노 슌주 글.그림, 송치민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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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40



걱정은 없으나 꿈도 아직 없어서

―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2

 아오노 슌주 글·그림/송치민 옮김

 세미콜론, 2014.7.7. 9000원



“넌 저 줄이 안 보이냐? 고민할 틈이 있으면 감자나 튀겨.” “냉정하네요. 점장도 고민 같은 거 있을 거 아니에요?” ‘고민? 그런 것 없어.’ (63쪽)


“슈이치는 장래를 너무 고민하고 있는 거 아냐? 그 탓에 현재를 소중히 할 수 없는 거 아닐까? 가만 있어도 나이는 먹으니까, 예정대로만 되면 고생은 안 하지. 고민해 봤자 소용없어.” (79쪽)


“슈이치는 말이야, 왜 그리 어두워? 머리는 번쩍번쩍하면서. 자기 자신이 싫어? 그렇게 슬픈 말이 어디 있어? 슈이치는 좀더 자신감을 가져도 돼.” (116∼117쪽)


‘나는 특별하다,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단지 주변의 인간들이 너무 시시할 뿐이다.’ (173쪽)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이 한국말로 처음 나왔을 적에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아직 온힘을 다하지 않았다는 줄거리가 뻔하게 드러나거든요. 다만 언젠가 이 만화책을 가볍게 읽을 날을 맞이하겠거니 하고 기다렸습니다. 가벼우면서도 무거울 수 있고, 거꾸로 무거우면서도 가벼울 수 있는 만화책일 텐데, 나이 마흔두 살에 햄버거집에서 알바를 하며 만화를 그리겠노라 꿈꾸는 아저씨가 나와요. 이 아저씨한테는 걱정이라는 낱말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저씨한테는 걱정이 없을 뿐 아니라 꿈도 제대로 없습니다.


  이러쿵저러쿵 투덜거리는 마음이 없다지만 이런저런 앞길을 새롭게 열고자 하는 마음까지 아직 없다고 할까요.


  잔걱정을 키우지 않으니 자잘한 곳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그마한 꿈조차 스스로 키우지 않기에 ‘애써 자잘한 곳에 안 빼앗긴 마음’을 어떻게 그러모아야 좋을는지를 아직 몰라요. 그래서 만화책에 나오는 아저씨는 아직 온힘을 다하지 못합니다. 무엇에 온힘을 다해야 하는가를 잘 모르거든요. 제대로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요.


  아저씨 한 사람을 둘러싼 사람들은 저마다 잔걱정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안 드러내지만 저마다 잔걱정에 어깨가 눌립니다. 우리는 잔걱정을 털고서 자그마한 씨앗 한 톨을 꿈으로 심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대로 잔걱정에 눌린 채 살아갈까요. 2017.11.24.쇠.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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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코와 술 2
신큐 치에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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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39



스스로 홀가분하니 즐거운 술그릇

― 와카코와 술 2

 신큐 치에 글·그림

 문기업 옮김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2015.3.20. 8000원



‘맛있어라.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다니. 일 때문에 지친 마음을 치유해 주는 바다의 선물.’ (26쪽)


‘그건 그렇고, 곱창전골이 이렇게 맛있는 가게라니. 전골은 그 가게의 맛을 대표하니 분명히 다른 메뉴도 맛있겠지?’ (76쪽)


‘한없이 짜디짠 버터의 풍미. 역시 맛있을 때는 단순한 감상 외엔 떠오르지 않는다.’ (133쪽)



  집에서는 늘 아이들이 먹을 밥을 차리니 혼밥이란 없다시피 합니다. 시골집을 떠나 바깥일을 보러 나올 적에는 때때로 혼자 끼니를 잇는데, 이때에는 아주 가볍게 먹습니다. 편의점 책상맡에서 세모김밥에 우유 한 잔이라든지, 길손집 침대맡에서 빵 한 조각에 맥주 한 모금을 누리지요. 때로는 시외버스에서 도시락을 먹고요.


  도시에서 바깥일을 보면서 혼자 밥집에 들어 한끼를 누릴 수 있습니다만, 길가에 놓은 편의점 책상맡에서 하늘바라기를 하며 세모김밥을 먹어도 즐겁습니다. 저녁에 길손집에 들어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는 느긋하게 빵 한 조각을 먹어도 좋아요. 너덧 시간을 달리는 시외버스에서 먹는 도시락도 맛납니다.


  혼밥이든 혼술이든 모두 마음에 따라 달라지지 싶어요. 스스로 홀가분하면 즐겁습니다. 스스로 매이면 안 즐겁습니다. 여럿이 둘러앉은 밥상맡이어도 안 홀가분하다면 안 즐겁지요. 어떤 밥을 누구하고 먹느냐도 대수롭지만, 이에 앞서 우리 몸에 밥을 넣으려 할 적에 어떤 몸짓이나 마음이 되느냐가 한결 대수롭지 싶어요.


  《와카코와 술》 둘째 권을 읽으면서 만화책 아가씨 와카코가 느긋하면서 넉넉하게 스스로 사랑하려는 몸짓인 모습을 지켜봅니다. 와카코 아가씨는 대단한 밥이나 술을 누리려고 하지 않아요. 스스로 달래고 스스로 사랑하며 스스로 기쁜 밥이나 술을 알맞게 누리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누구나 먼먼 옛날부터 혼밥이나 혼술을 누렸어요. 깊은 멧골에서 나무를 하다가,사래 긴 밭을 일구다가, 아기를 살살 얼러 재우고 나서, 가만가만 혼밥을 누렸지요. 작은 밥그릇 곁에 작은 술그릇을 놓으면서 빙그레 웃는 조촐한 삶입니다. 2017.11.18.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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